오늘날 기업은 많은 노동법적인 쟁점들에 있어서 생산직과 사무직을 달리 취급하고 있는데, 이러한 경향은 특히 근로시간과 임금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현행 노동법상 임금은 근로의 양(근로시간)에 연동되도록 설계되어 있고, 근로시간의 기본적인 체계는 근로자가 소정근로시간동안 실질적으로 근로를 제공한다는 전제를 가지고 설계되어 있다. 즉, 근로자들이 소정근로시간 내내 휴게시간을 제외하고는 일에 몰두한다는 것을 전제로 해당 근로시간에 대해 임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설계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접근방식은 생산직 근로자들에 대해서는 유효한 경우가 많지만 사무직 근로자들에게 있어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생산직 근로자들의 경우 업무를 소홀히 하는 경우 금방 눈에 띄는 경우가 많고, 컨베이어 벨트처럼 연속공정을 갖춘 경우에는 일부 근로자들이 업무를 소홀히 하는 경우 다른 근로자들까지 영향을 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근로제공을 해태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반면 사무직 근로자들은 1일 소정근로시간 8시간 내내 집중하여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뿐더러, 소정근로시간 도중에 실제로는 근로를 제공하지 않더라도 사용자가 이를 일일이 감독하여 근로제공을 명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기업들은 사무직 근로자들의 근로시간에 대해 현실적인 타협을 시도한다. 즉, 업무시간 내내 근로를 제공하는지 여부에 대한 감시를 포기하고 근로시간에 대해 일정 정도 자율을 허용하는 대신, 소정근로시간 이후에 잔무처리 등을 하는 시간에 대해서는 별도로 임금(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하기로 한 것이다. 포괄임금제는 이러한 배경 하에 탄생한 것이다. 포괄임금제가 생산직 근로자에게는 좀처럼 보이지 않고 주로 사무직 근로자 임금체계에서 발견되는 것도 근로시간 측정의 어려움이 포괄임금제의 배경에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판례는 포괄임금제의 유효성을 매우 엄격하게 인정하고 있고, 정부는 포괄임금제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국회에서는 포괄임금제를 금지하는 법안이 발의되기도 한다. 포괄임금제를 대하는 이러한 태도는 포괄임금제는 근로자들의 노동을 착취하고 사용자들이 공짜노동의 혜택을 누릴 수 있게 하는 나쁜 제도라는 인식에 기인한다.
포괄임금제를 둘러싼 환경의 변화를 맞이하여 기업은 두가지 조치 중 하나를 취할 수밖에 없다. 하나는 소정근로시간 중에 최대한 밀도 있게 업무를 진행하도록 하여 연장근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연장근로를 허용하고 연장근로가 발생하는 경우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하는 것이다. 그런데 근로시간에 대한 현행법의 미비점과 해석상의 문제 때문에, 실제로 근로시간을 관리하는 것은 그리 만만치가 않다.
먼저, 전자와 같이 대응하려는 기업은 업무시간 중 근무상황을 타이트하게 관리·감독하여야 하는데, 소수의 관리자가 다수의 하위직급 직원들의 근무상황을 일일이 체크하는 것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에 기계적인 감독이 필요하게 된다.
그러나 대법원 2023. 6. 29. 선고 2018도1917 판결은 기업의 사업장은 불특정 다수인이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는 전제로 사업장을 영상정보처리기기인 CCTV 카메라를 설치하여 영상을 통하여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정보를 수집하는 경우에는 개인정보보호법 제15조 제1항에서 장한 일반적인 개인정보 수집 요건(정보주체인 근로자의 동의)를 갖추어야 한다고 판시하여, 사실상 CCTV를 통한 근로자의 근태감시를 불가능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사용종속관계의 핵심표지가 지휘·감독이라는 점, 감독을 위해서는 근태감시가 필수적이라는 점, 근로자 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에서 사업장 내 근로자 감시 설비의 설치를 노사협희회의 협의사항으로 정하고 있다는 점에서(제14조 제1항 14호), 대법원 판례의 태도는 근로관계의 본질에 반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근로시간에 대한 대법원의 판단기준을 살펴보면, 기업이 근로시간을 타이트하게 관리하려고 해도 어디까지가 근로시간인지를 정확히 알기가 어렵다. 대법원은 근로시간이란 근로자가 사용자의 지휘·감독을 받으면서 근로계약에 따른 근로를 제공하는 시간이라고 하면서, 근로자가 작업시간 도중에 실제로 작업에 종사하지 않은 휴식시간이나 대기시간이라 하더라도 근로자에게 자유로운 이용이 보장된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사용자의 지휘·감독을 받고 있는 시간이라면 근로시간에 포함된다고 보고 있다(대법원 2018. 7. 12. 선고 2013다60807 핀결 등).
이러한 판결의 취지는 사용자의 추상적·일반적인 지휘·감독 하에 있는 시간이면 모두 근로시간이라는 의미이므로, 근로자가 실제로 근로를 제공하고 있지 않은 시간이라고 하더라도 근로시간으로 평가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기업에서 직원들이 자리를 이탈한 시간을 근로시간에서 제외하도록 타이트하게 근로시간을 관리하더라도 해당 이석시간이 근로시간이 아니라고 단정하기 어렵게 된다. 즉, 근로자들이 일을 하는 것처럼 앉아 있거나 자리를 이석해도 상사들의 지시가 있으면 언제든지 복귀하여야 하는 상황이라면 해당 시간을 근로시간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근로자들이 밀도있게 업무를 수행하지 않는 경우에도 해당 시간을 근로시간이 아니라고 관리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이러한 혼란은 근로기준법이 근로시간이 무엇인지에 대해 침묵하면서 그 판단기준을 해석에만 맡겨 놓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근로시간의 타이트한 관리를 포기하고 업무시간에 근로가 다소 방만하게 수행되더라도 연장근로를 허용하고 그에 대한 수당을 지급하려는 기업들도 고민은 있다. 근로시간의 개념이 애매하기 때문에, 연장근로시간의 정확한 측정이 어렵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고용노동부도 근로시간에 대한 감독에 있어서는 출근시간과 퇴근시간을 기준으로 근로시간을 측정하고 있으나, 사업장 내에 체류하고 있는 시간이 모두 근로시간은 아니라는 점에서 이러한 접근방법이 법적으로 타당하지 않은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이렇듯 기업이 근로시간 관리에 있어 어려움을 겪는 것은 상당 부분 근로시간이 무엇인지에 대해 우리 근로기준법이 침묵하다는 점에 기인한다. 근로기준법은 근로자, 평균임금 등 여러 개념에 대해 정의를 내리고 있으나, 가장 중요한 개념인 근로시간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입법자가 근로시간이 무엇인지에 대해 선언해 줄 필요가 있다. 이는 근로시간 단축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근로시간 단축의 수단으로 계속적으로 언급되는 것이 근로시간 의무기록제이다. 현행법에서는 사용자가 근로시간을 기록할 의무가 없어, 장시간 근로가 만연하고 정부의 근로시간 단속에 어려움이 발생하니 사용자에게 근로시간을 기록할 의무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근로시간 의무 기록제를 도입하려면 근로시간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근로시간 개념 자체가 모호한 상황에서 기업들에게 근로시간 기록의 의무만 부담시키면, 개별 기업들의 입장에서는 근로시간을 어떻게 측정할지를 놓고 대혼란을 겪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근로시간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근로시간 개념의 입법화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시기가 됐다.
김동욱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노동그룹장/중대재해대응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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