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총지출 증가율은 정부의 재정 기조를 가늠할 수 있는 핵심 숫자다. 집안 살림 규모가 커지는 만큼 씀씀이도 커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들어오는 수입이 늘어난다면 이에 맞춰 지출을 늘려도 큰 타격은 없다. 나라살림도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긴축재정이냐 확장재정이냐를 가늠할 때는 총수입과 총지출 증가율 간 차이를 따져봐야 한다.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과 물가상승률을 합친 경상성장률과 총지출 증가율 간 차이도 보조 잣대가 될 수 있다.
박근혜 정부가 2015년도 예산안에서 총지출 증가율을 5.5%로 제시했을 때는 확장재정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총수입 증가율이 3.5%였기 때문이다. 다만 박근혜 정부 전체(2014~2017년)를 놓고 보면 연평균 총수입 증가율은 3.9%, 총지출은 4.0%로 비슷한 수준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주도해 예산을 처음으로 짠 2018년부터 2022년까지 본예산 기준 국세 등 총수입 연평균 증가율은 5.5%였다. 반면 총지출 증가율은 9.1%였다. 총수입을 크게 웃도는 ‘초(超)팽창 예산’이란 평가를 받은 이유다. 당시 재정 전문가들이 5%대까지 증가율을 낮춰 건전재정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총수입 규모를 감안한 지적이었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는 집권 5년간 추가경정예산만 10차례 편성했다. 이를 위해 국고채 순발행을 크게 늘렸다. 2019년 44조5000억원이던 순발행 규모는 2020년 115조3000억원, 2021년 120조6000억원으로 크게 증가했다. 무분별하게 빚을 내 돈을 쓴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어떨까. 작년 8월 말 2024년도 예산안이 공개됐을 때 세간의 이목은 2.8%라는 낮은 지출 증가율에만 쏠렸다. 하지만 간과한 숫자가 있었다. 총수입이 625조6000억원에서 612조2000억원으로 2.1% 감소한 것이다. 경제가 성장하면 재정수입도 늘어나야 하지만 기업 실적 악화에 따른 법인세 급감으로 이례적 현상이 빚어졌다. 국가 재정수입이 줄어든 건 2014년 이후 10년 만이었다. 이렇다 보니 예산 지출 증가율을 역대 최저치까지 낮췄는데도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GDP 대비 2.6%에서 3.9%로 악화했다. 세입이 전년 대비 감소하는 상황에서 긴축재정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내년도 총수입 증가율은 예상치에 크게 못 미치는 4~5%대에 그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올 상반기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103조4000억원으로, 코로나19 시기인 2020년을 제외하고 역대 최고 적자폭을 기록했다. 국가채무가 2018년 680조5000억원에서 지난해 1134조4000억원까지 불어난 상황에서 적자국채를 무작정 찍어내는 것도 불가능하다.
다만 일각에선 정부가 총지출 증가율 숫자를 과도하게 의식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기재부 안팎에서도 4%대 증가율을 제시했을 때 건전재정 기조가 약화한다는 여론을 의식한 것으로 알려졌다. 내수 회복이 좀처럼 가시화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내년도 경상성장률 전망치(4.5%)를 훨씬 밑도는 수준의 지출 증가율은 건전재정을 넘어 ‘초(超)긴축재정’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여당에서도 202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 투입을 원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강경민 기자/그래픽=허라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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