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패배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첫째로 예측 가능한 패배라는 점이다. “불가사의한 승리는 있어도 불가사의한 패배는 없다”는 말처럼 총선 전망이 밝지 않은 상황에서 마크롱이 위험한 승부수를 던졌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다. 경제난과 반이민정서가 심화하는 가운데 조기 총선을 결정한 것은 정치적 오판이 아닐 수 없다. 물가 상승과 이민 급증에 따른 사회 불안에 유권자들의 불만이 증폭됐다.
둘째로 마크롱의 엘리트주의에 대한 국민의 거부감이 상당하다는 점이다. 오만한 엘리트주의자라는 인상이 유권자들에게 깊이 각인됐다. 일련의 개혁 조치에도 불구하고 지지율이 30%대에 머무르는 이유다. 본인은 국민과의 소통을 위해 노력한다고 말하지만, 일방통행식 의사소통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프랑스에 옳은 일을 하겠다는 그의 신념은 군림하는 지도자라는 인상을 심어줬다.
셋째로 국민들이 느끼는 개혁 피로감이다. 프랑스 국민은 혁명을 좋아하고 개혁에는 선뜻 나서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마크롱은 2017년 집권 이래 연금 개혁, 노동법 개정, 공무원 감축, 공기업 개혁을 밀어붙였다. 사회통합과 공동체 의식이 강한 프랑스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줬다. 2022년 총선에서 집권 여당이 과반수 의석 확보에 실패하자 국무회의를 통과한 법안을 총리 책임하에 입법할 수 있도록 규정한 헌법 제49조3항을 이용해 정부 입법을 밀어붙였다. 이에 대한 반감이 정부의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다.
마크롱은 총선 결과에 대해 “아무도 승리하지 못했다. 충분한 과반수를 확보한 정치 세력은 없었다”고 평가했다. 정부 구성에 관해서는 마린 르펜의 국민연합과 장뤼크 멜랑숑의 좌파 정당인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LFI)를 배제한 중도 대연정을 제안했다. 좌파연합은 루시 카스테트 파리시 재무국장을 총리 후보자로 결정해 총리 지명을 요구하고 있지만 마크롱은 서두르지 않고 있다.
좌파연합과의 연정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좌파연합은 연금 수령 연령을 64세로 늦춘 마크롱의 연금 개혁을 폐지할 방침이다. 친기업 정책 또한 거센 도전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마크롱 정부가 폐지한 고소득층에 대한 부자세를 재도입할 계획이다. 부자 증세가 실현될 경우 투자 위축과 부유층 해외 탈출이 가속화될 가능성이 크다. 복지, 의료 등 재정지출 확대 정책도 마크롱의 건전 재정 기조와 상충한다. 프랑스의 정부부채 비율은 2022년 기준 117.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78.6%를 상회한다.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재정적자가 확대될 경우 국가신용등급이 하락할 수 있음을 경고했다.
최저임금 인상을 둘러싸고 견해차가 크다. 좌파연합의 최저임금 인상 방안은 중소기업과 영세상인에게 타격을 주고 청년층 고용을 위축시킨다는 반론이 만만치 않다. 생필품 가격 인상 금지 공약도 시장경제 원칙과 상충한다. 무상 의료, 무상 급식 같은 포퓰리즘 정책이 추진될 경우 재정적자가 늘어나 국채 금리 상승을 초래해 프랑스발 금융 불안이 유럽 전역으로 확산될 수 있다.
프랑스는 독일과 함께 유럽연합(EU)의 중심축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서는 친우크라이나 입장을 보이지만 향후 프랑스가 계속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지는 미지수다. 유럽연합 조약 재협상,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탈퇴 공약은 연정 합의에 걸림돌이 된다.
프랑스는 연정에 익숙한 국가가 아니다. 제5공화국 출범 이후 세 번의 동거정부가 구성됐다. 외치는 대통령이, 내정은 총리가 책임지는 이원집정제 국정 운영이 이뤄졌다. 마크롱의 강한 개성이 총리와 충돌할 경우 정치적 불확실성이 심화할 수 있다. 마크롱이 정치적 타협을 통해 위기를 돌파할 수 있을지 지구촌의 관심이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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