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탈도 많던 노조법 개정안 ‘소동’이 지난 16일 윤석열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사실상 종결됐다. 2014년 법원이 쌍용자동차 옥쇄파업에 참여한 노조원들에 대해 47억원의 손해배상을 판결한 이후 10년을 이어온 이슈였다. 공을 넘겨받은 국회에서 재표결을 해도다시 통과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이른바 노란봉투법 또는 불법파업조장법으로 불리는 노조법 개정안은 2014년 쌍용차 사태 판결 이후 노동계의 숙원이었다. 쟁의행위 중에 벌어진 손해를 파업 참여 근로자에게 물어내라고 하니 헌법상 기본권인 단체행동권이 제약된다는 주장이었다. 반면에 안 그래도 파업에 속수무책인 상황에서 손해배상 청구는 유일한 파업 예방주사라는 게 경영계의 반대 논리였다.
거부권 전제로 한 황당 개정안
그렇다면 노동계의 바람대로 파업 참여 근로자 개인이 수십억원, 수백억원의 손해배상을 감당해야 하는 일을 막고, 경영계에는 손해배상 청구가 아니라 사업장 점거 금지 등 다른 파업 대응수단을 주는 식의 절충은 불가능했을까. 그렇지 않다. 해법은 거부권 행사를 알리며 대통령실이 밝힌 이유에 답이 있다. 대통령실 대변인은 16일 노조법 개정안에 대해 “21대 국회에서 이미 폐기된 법안에 독소조항을 더해 합의 없이 야당이 일방적으로 통과시킨 법안”이라고 비판했다. 지난 국회에서도 여야, 노사 간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했다가 개정안이 폐기됐는데 더한 법을 만들어 대통령 앞에 던졌다는 얘기다. 대통령실이 “재의요구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개탄스럽다”고 한 이유다.
거두절미하고 이번 노조법 개정안은 한 편의 연극에 다름 아니었다. 개정안대로라면 사용자 개념이 계약 유무와 관계없이 무한 확대돼 원청 사용자는 어느 하청노조와 무엇을 교섭해야 하는지도 불분명해지고, 혹여 불법파업으로 손해를 입어도 연대책임을 묻지 못하고 사용자가 일일이 손해를 계산해 개별적으로 청구해야 한다. 현실화했을 경우 산업현장은 카오스 상태가, 법원 앞은 장사진을 이뤘을 것이다.
노사·여야 적대적 공생 재확인
더불어민주당도 모르지 않았다. 자신들이 집권여당이었을 때는 국정과제였는데도 추진하지 않았고, 이번에는 어차피 거부권으로 폐기될 것을 전제하고 밀어붙인 것이다. 민주당으로서는 입법 모양새를 취하면서 노동계와 연을 유지하고, 거부권 행사 기록을 또 하나 늘려 ‘불통 대통령’ 이미지를 만드는 훌륭한 카드였던 셈이다. 노동계 내부에서조차 ‘노조법 개정 사기극’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어차피 안 될 일이었기에 개정안을 밀어붙이는 야당이나 그걸 막겠다고 필리버스터에 나선 여당 의원들에게 법안의 내용이나 그에 대한 이해는 중요치 않았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에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의원 중에 법안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없더라”는 전문가들의 냉소와 “필리버스터 원고 써주고 교육한다고 공무원들이 고생했다더라”는 씁쓸한 후일담만 남았다.
언제부터인가 대한민국 노동판에는 적대적 공생이란 말이 있다. 노사가 현재의 갈등을 이용해 각자의 밥그릇만 지키고 산다는 얘기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양보나 절충은커녕 대화도 없다. 정치판도 다르지 않다. 연극이 끝나고 난 텅 빈 객석에는 어둠만이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