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소현 프로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니 제가 기분이 좋습니다. 사람마다 피어나는 시기가 있다고 생각해요. 배 프로의 시기는 지금인 것 같습니다."
31살 배소현은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의 대표적인 '늦깎이 스타'다. 2011년 프로로 전향한 그는 2·3부 투어를 뛰다가 2017년에야 정규투어에 입성했다. 생애 첫승을 잡는데도 8년이나 걸렸다. 지난 5월 E1 채리티오픈에서 생애 첫 승을 거둔 그에게 한 팬은 "2부투어 시절부터 팬이었다"며 위의 말을 건넸다. 남들은 쉽게 하는 듯한 우승을 잡기까지 8년, 154개 대회를 치러야 했던 그에게 그 어떤 말보다 큰 힘이 되어줬다.
18일, 3개월만에 두번째 트로피를 들어올린 뒤 배소현은 그 때 그 팬의 말을 떠올렸다. 경기도 안산 대부도 더헤븐CC(파72)에서 열린 KLPGA투어 더헤븐 마스터즈 최종라운드에서 배소현은 서어진(23), 황유민(21)과 연장 3차전까지 이어진 접전 끝에 우승을 차지했다. 첫 승까지 8년이 걸렸던 그가 3개월만에 2승을 달성하며 KLPGA투어 강자로 자리매김한 순간이다.
1993년생인 배소현은 KLPGA투어에서 보기 드문 30대 선수다. 커리어도 조금 남다르다. 한국 골프선수의 엘리트코스로 꼽히는 국가대표는 커녕 국가대표 상비군도 거치지 않았다. 그는 "주니어 시절부터 잘하는 선수는 아니었다"고 빙그레 웃었다.
KLPGA투어는 유독 선수생명이 짧은 것으로 악명이 높다. 서른살을 전후하면 은퇴를 고민하고, 실제 은퇴하는 선수도 적지 않다.
그런데 배소현은 31살에 첫 승을 이뤘고, 2승까지 이뤄내면서 '커리어 하이'를 맞고 있다. 그는 "여자 선수의 생명이 특히나 짧은 것이 안타깝다"며 "저는 선수 생활하는 것을 좋아하고 오랫동안 활동하고 싶은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이어 "그를 위해 필요한 것을 고민하며 체력, 비거리등 아쉬운 부분을 조금씩 채워나가다보니 다른 선수들보다 늦은 시기에도 활동을 꾸준히 할 수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배소현의 평균 드라이브샷 비거리는 2018년 238.03야드(투어 66위)에 불과했다. 하지만 배소현은 진화했다. 2022년 243.11야드(24위)로 늘어나더니 올해는 255.53야드(6위)로 대표 장타자로 거듭났다. 30대의 나이에 최정상급 장타자가 된 그에게는 '회춘 샷'이라는 별명도 붙었다.
이날 배소현은 정규라운드 마지막 홀이었던 18번홀(파5)에서 승부를 투온에 성공하고도 3퍼트로 연장전까지 끌려갔다. 10살 어린 황유민, 8살 어린 서어진과 맞붙었지만 결코 밀리지 않았다. 폭염속에 진행된 대회였지만 2라운드에서 10언더파 62타로 코스레코드를 새로 썼다. 연장 1차전에서는 세 선수 가운데 티샷을 가장 멀리 보내기도 했다.
경기를 마친 뒤 배소현은 "처음 치러본 연장에서는 도전한다는 마음으로 자신있게 치려고 했다"고 우승 비결을 소개했다. 이어 "30대 선수가 롱런하려면 비거리가 나가야 한다는 이시우 코치님 말씀으로 장타 연습을 신경쓰고 있고, 지난 겨울 전지훈련 때 부족했던 쇼트게임과 퍼트를 많이 보완한게 2승의 원동력이 된 것 같다"고 밝혔다.
31살에 '커리어 하이'를 맞은 배소현의 행보는 그 자체로 투어에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그는 "김해림, 안선주, 박주영 언니 등 오랫동안 투어활동을 하는 언니들을 보며 저도 따라가고 있다"며 "지금 당장 성적이 나오지 않더라도 저를 보고 따라오는 후배들이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투어를 뛰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처음부터 두각을 나타내진 않아도 꾸준히 열심히 해서 조금씩 과정을 얻어나가는 저를 보시고, 골프 뿐 아니라 힘든 시기를 보내는 분들이 힘을 내시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안산=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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