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소비재 기업들이 사업 재편에 분주해졌다. 비핵심 자산은 팔고 소비 둔화에 영향을 덜 받는 사업부를 강화하는 등 성장 전략 모색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미국의 소매 판매가 견조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경제 침체 우려는 잦아들었지만 소비자들이 필수재가 아닌 곳에 지출을 최소화하고 있어서다.
소비 친화적인 사업을 핵심으로 하고 있는 기업들은 올 2분기 악화된 실적에 애를 먹으면서 하루빨리 사업 구조를 바꾸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올 하반기 이후에도 경기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어 하루빨리 사업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생존 여부조차 불투명해질 수 있다는 위기 의식이 깔려 있다.
미국 최대 약국 체인 월그린은 1차 진료소를 운영하는 빌리지MD 사업 매각을 고려 중이다. 악화하는 실적을 개선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123년 역사를 지닌 월그린은 미국의 대표적 약국 체인이지만 최근 실적이 저조한 매장을 대거 정리하고 있다. 처방약 등 주요 매출 동력이 힘을 잃으면서 사업 재편 없이는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는 판단을 내렸다.
세계 3대 골프 브랜드 중 하나인 캘러웨이는 골프 연습장 브랜드 탑골프 분사를 검토하고 있다. 실내 연습장과 술집을 결합한 탑골프는 지난해 매출만 17억6000만달러에 달했다. 캘러웨이 관계자는 “기대를 밑도는 방문객 수와 저조한 매출 때문에 수익을 정상화할 필요성이 생겼다”며 “탑골프 분사를 포함해 다양한 대안을 외부 전문가와 함께 고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백화점 체인 메이시스는 최근 내부적인 자구안 마련에 분주하다. 앞으로 3년간 150개 매장을 폐쇄하고 나머지 350개 매장을 탈바꿈하는 게 핵심이다. 피팅룸과 신발 매장에 더 많은 직원을 배치하고 고급화에 집중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부동산 자산 부문을 분사하거나 온·오프라인 매장을 분리하는 방안도 염두에 두고 있다.
하지만 분석가들은 마냥 안심할 수는 없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하위계층의 저축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데다 신용카드 연체율은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소비자들의 구매력이 언제든지 약화될 위험성이 있다는 얘기다.
실제 꼭 필요하지 않은 곳에 소비자들이 씀씀이를 줄이면서 당장 타격을 입고 있는 곳은 여행·레저·소비재 업체들이다. 디즈니는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3% 감소한 올 2분기 실적을 내놓으면서 플로리다의 디즈니월드와 캘리포니아의 디즈니랜드를 포함한 테마파크 사업이 수요 둔화의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디즈니 인형이나 장난감 등 굿즈 판매 역시 1년 새 5% 줄었다고 설명했다. 휴 존스턴 디즈니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소비자들이 전보다 오른 식료품 비용 등을 감당하고 있다”며 “이 때문에 다른 지출을 줄이면서 방문객 수 증가에 영향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힐튼의 최고경영자(CEO)인 크리스 나세타도 비슷한 맥락의 발언을 내놨다. 그는 “시장이 확실히 약해지고 있다”면서 “소비자들이 코로나19 기간 동안 저축한 돈을 소진한 후 가처분소득이 크게 감소했기 때문에 여행을 포함해 다른 여가 활동을 할 수 있는 여력이 줄었다”고 했다. 숙박 공유 업체 에어비앤비 역시 “성수기인 여름철에도 미국인 투숙객 수요가 둔화하고 있다는 징후가 보인다”며 연간 매출 성장이 둔화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블룸버그통신은 “고금리와 인플레이션 환경에서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자 소매 영역 기업들이 실적 압박을 받았다”며 “이 때문에 기업들의 구조조정 활동이 많아지고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M&A가 늘어나는 구조”라고 내다봤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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