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되면 '몸 속 정수기'로 불리는 신장(콩팥)이 망가져 병원을 찾는 사람이 늘어난다. 땀을 지나치게 많이 흘려 탈수 증상이 생기면 갑자기 신장이 망가질 수 있어서다. 최근엔 무리하게 운동을 하다가 신장이 망가져 병원을 찾는 사람도 늘고 있다.
신석준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신장내과 교수는 19일 "기온이 일정 온도 이상으로 올라가면 급성 신장손상 환자가 급격히 증가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고 했다.
그는 "원인을 빨리 찾아 치료하면 원래 기능을 회복할 수 있지만 시간이 지체되거나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면 신장 세포가 망가져 기능을 잃고 심하면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다"고 했다.
신장은 몸 속에서 단위 면적당 혈액이 가장 많이 공급되는 장기다. 혈관에 문제가 생겨 혈액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심장보다 빨리 손상을 입는다.
신장은 몸속 노폐물과 수분을 제거한다. 나트륨, 칼륨, 칼슘, 인처럼 신체 기능에 꼭 필요한 물질의 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고 뼈를 튼튼하게 하는 비타민D를 만든다.
신장이 나쁘면 활성형 비타민D가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아 뼈가 약해지고 빈혈이 생길 수 있다. 적혈구를 만드는 호르몬을 분비하는 역할도 한다.
급성 신장손상은 신장 기능이 수 시간에서 수일 내에 갑자기 나빠지는 것을 말한다. 몸 속에 질소 노폐물이 축적돼 혈액 속에 고질소혈증이 생기고 체액과 전해질 균형에 이상이 생긴다. 급성 신장손상은 병원에 입원하는 환자의 5%, 중환자실 환자의 30% 정도에게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급성 신장손상 원인은 다양하다. 신장으로 가는 혈류량이 줄면 발생할 수 있다. 심한 설사나 구토, 출혈, 고열 등으로 갑자기 수분이 많이 빠져나가면 몸속 혈액량도 줄어든다. 이렇게 혈액량이 줄면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받지 못해 신장 기능이 갑자기 떨어지게 된다.
신 교수는 "무더위에 땀을 많이 흘려 탈수 증상이 나타나면 요산이 증가해 혈액순환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이는 급성 신장손상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고 했다.
운동을 많이 했을 때도 급성 신장손상이 올 수 있다. 인체 근육은 미오글로빈으로 불리는 단백질로 구성됐다. 마라톤이나 사이클 등 장시간 과도한 근육운동을 하면 세포가 파괴될 수 있다. 이때 근육의 여러 성분이 혈액 속으로 들어와 신장 기능을 떨어뜨린다. 최근엔 운동 중독자가 늘면서 급성 신장손상으로 병원을 찾는 사례도 늘고 있다.
약을 많이 복용할 때도 주의해야 한다. 신장은 약물의 배설기관으로 약물에 민감하다. 진통소염제나 항생제, 성분이 불분명한 전통 약재, 영양제, 보약 등은 신장에 부담을 줄 수 있다. 또 당뇨병·고혈압·심혈관계 질환자는 합병증으로 많은 약을 동시에 복용하는 경우가 많아 조심해야 한다.
컴퓨터단층촬영(CT)을 할 때 사용하는 조영제도 문제가 될 수 있다. 고령 환자나 이미 신장 기능이 떨어진 환자, 당뇨병 환자에게 조영제를 쓴 뒤에 신부전이 잘 생긴다. 자기공명영상(MRI)을 찍을 때 쓰는 가돌리늄 조영제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신장 기능이 떨어진 환자는 이 조영제를 쓰면 피부와 장기가 굳어지는 합병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산부인과, 비뇨기질환이 있을 때도 주의해야 한다. 소변이 통과하는 요로나 방광 주변에 문제가 생기거나 방광 자궁 비뇨기계에 암이 있을 때, 염증 요로결석 전립선비대증이 있으면 소변 배출이 힘들어진다. 소변 흐름이 막히면 신장 압력이 증가해 신장 기능이 나빠질 수 있다.
급성 콩팥손상이 발생하면 소변색이 변하거나 소변에 거품이 섞여 나올 수 있다. 심하면 소변량이 줄면서 다리와 발등이 붓는다. 쉽게 피로하고 지치면서 구토나 경련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런 증상이 있으면 질환을 의심해봐야 한다.
급성 신장손상은 임상 경과 평가와 혈액검사로 진단한다. 혈액 속 크레아티닌과 요소질소 수치를 측정해 신장 기능을 평가할 수 있다. 혈액검사에서 크레아티닌 수치가 갑자기 증가하거나 소변량이 급격히 감소하면 의심해볼 수 있다.
치료법은 원인에 따라 다르다. 구토 등 수분 손실이 문제일 땐 수액을 넣어주는 방법으로 치료한다. 요로가 막혔다면 막힌 요로를 복원해 주고 염증이 생기면 항생제를 투여한다. 면역 이상이 생기면 면역억제제 등을 사용한다. 신장 손상 정도가 심하면 투석으로 독성물질, 전해질, 각종 대사물 등을 제거해야 한다. 감염증 등 합병증 치료도 중요하다.
신 교수는 "급성 신장손상은 일반적으로 사망률이 40%, 수술 후나 외상 후 발생하면 사망률이 60~70%까지 보고될 정도로 위험한 질환"이라며 "의심 증상이 있다면 방치하지 말고 병원을 찾아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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