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배당 ETF’에 빠진 MZ세대…올해만 8조 원 급증

입력 2024-09-02 06:02   수정 2024-09-03 13:00

[커버스토리]



서울 대기업에 다니는 서 모(37) 씨의 꿈은 ‘월세를 통한 경제적 자유’다. 오피스텔, 상가 등을 매입해 은퇴 후 꼬박꼬박 월세를 받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상가에 투자했다가 큰 손해를 본 선배를 보고 마음이 바뀌었다. 아파트를 여러 채 보유하자니 종합부동산세, 취득세, 양도소득세 등 세금 폭탄이 부담스럽다.

그는 올해 초 월 배당 상장지수펀드(ETF)로 눈을 돌렸다. ‘KODEX 테슬라 인컴 프리미엄 채권혼합 액티브 ETF’에 1억 원을 투자해 매달 약 100만 원의 배당금을 받고 있다. 투자금을 계속 늘려 월급 수준의 돈을 받는 게 목표다. 그는 “넉넉한 현금흐름을 만들어 회사에 얽매인 삶에서 벗어나는 게 목표”라고 했다.




배당형 ETF 광풍…투자자 71%가 40대 이하

매월 또박또박 분배금을 받는 월 배당형 ETF에 국내 투자자들이 몰리고 있다. 암호화폐나 테마주 등 단타 매매에 매달리던 2040세대까지 뛰어들면서 관련 상품 판매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양상이다.

8월 20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국내 월 배당형 ETF의 순자산 규모는 약 12조 원으로 집계됐다. 2022년 말 1조1692억 원이었던 게 1년 8개월 새 10배 이상 불어났다. 올해만 약 8조 원 급증했다. 상품 수도 2022년 말 19개에서 현재 67개로 늘었다.

월 배당 ETF는 당초 연금생활자 등 안정적인 현금흐름이 필요한 중장년 투자자를 위해 설계된 상품이다. 하지만 최근 통념을 깨고 젊은 층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경제적 자유를 얻어 조기 은퇴한다’는 이른바 파이어족 바람이 불면서 생긴 현상이다. 월 분배금을 통한 용돈 벌이 사례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공유하는 투자자가 급증했다.

미래에셋증권, NH투자증권, 삼성증권, 하나증권, 신한투자증권 등 국내 주요 증권사 5곳의 월 배당 ETF(시가총액 상위 10개 종목) 투자자 현황에 따르면, 지난 7월 말 기준 국내 상장 월 배당 ETF를 보유한 60만5575명 중 40대 이하의 비중이 71.7%(43만4132명)로 나타났다.



최근 유튜브 주식투자카페 등 젊은 투자자가 많이 모이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커버드콜 ETF 등 월 배당형 상품이 화제다. 한 20대 투자자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2차전지주처럼 단기 급등하는 주식에 관심이 갔는데 최근엔 꾸준한 현금흐름을 만들 수 있는 배당주와 배당 ETF에 관심이 커졌다”고 말했다.

올해 국내에 출시된 ETF 중 개인 순매수 상위 10개 종목을 보면 절반이 배당형 ETF다. 미국 증시가 활황을 보이고, 기준금리 인하 기대가 커지는 동안에도 개인들은 나스닥 지수 등을 추종하는 ETF나 채권 ETF보다 배당형 상품을 더 많이 매수했다.

“현금흐름이 단기 수익률보다 중요”

증권가에선 젊은 층의 월 배당 ETF 투자 열기가 높아진 배경을 안정적인 현금흐름 선호에서 찾는다. 조기 은퇴나 파이어족 등의 키워드가 떠오르고, 투자 수입으로 생활비를 충당하며 삶의 질을 높이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시대적 트렌드가 투자에 반영됐다는 것이다.

임태혁 삼성자산운용 ETF운용본부장은 “중장년층은 회사의 월급을 전부로 믿고 살아왔지만 요즘 젊은 층은 회사에 자기 삶을 모두 맡기지 않는다”며 “제2의 월급을 적극 마련하고자 하는 성향이 월 배당 상품 투자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김정현 신한자산운용 ETF사업본부장은 “매달 일정하고 예측 가능한 현금이 들어온다는 것은 투자자에게 심리적인 안정감을 준다”며 “해당 ETF의 시장 가격이 떨어져도 버틸 수 있는 힘이 된다”고 설명했다.

월 배당 ETF의 기초자산과 전략이 다양하고 정교해진 점도 젊은 층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올해 출시된 미국 나스닥 시장이나 빅테크 인공지능(AI) 관련 기업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커버드콜 ETF는 대부분 ‘조기 완판’됐다. 지난 1월 출시된 ‘TIGER 미국테크TOP10+10%프리미엄’ ETF는 6개월 수익률이 30.54%에 달한다. 김남기 미래에셋자산운용 ETF부문 대표는 “매달 배당금을 받고 시세 차익까지 노릴 수 있는 ETF가 늘어나면서 성장주 위주로 투자하는 젊은 층이 배당형 ETF 시장에 빠른 속도로 유입되고 있다”고 말했다.



월 배당 ETF에 대한 젊은 층의 관심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는 중이다. 구글 트렌드에 따르면 국내 구글 이용자의 ‘월 배당’ 키워드 관심도(기간 내 최고치를 100으로 뒀을 때 특정 기간의 상대 수치)는 지난해 52주 중 37주 동안 50 이하였다. 하지만 올해는 지난 7월 말까지 29주 중 23주 동안 50을 넘었다. 직전 20주간 평균 수치를 보면 관심도가 5월 14~20일 27.2에서 8월 14~20일 76.4로 뛰어 상승 추세가 뚜렷하다.

SCHD·TLT 등으로 매달 배당

서학개미(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개인) 사이에선 배당형 ETF 투자가 일찌감치 포트폴리오의 기본 전략으로 자리 잡았다.

서학개미는 올해 들어 지난 8월 19일까지 미국 배당성장주에 투자하는 ‘슈와브 US 디비던드 에쿼티(SCHD)’ ETF를 무려 3억5226만 달러(약 4711억 원)어치 순매수했다. 레버리지 ETF를 제외하면 뉴욕 증시에 상장된 ETF 중 국내 투자자 순매수 규모가 가장 크다.

이 ETF는 10년 넘게 배당금을 지급해 온 기업 중 시가총액 5억 달러 이상, 일 거래대금 200만 달러 이상인 곳을 선별해 투자하고 분기별로 배당금을 지급한다. 지난 7월 말 기준 12개월 배당수익률은 약 3.6%다. 1000만 원어치를 매수했다면 매 분기 9만 원씩 연간 36만 원(세전 기준)의 배당금을 수령했다는 얘기다. 같은 기간 ETF 가격이 12.1% 올라 121만 원의 평가 차익도 누렸다.



채권 이자를 다달이 분배하는 ‘아이셰어즈 만기 20년 이상 미 국채(TLT)’ ETF는 올 들어 개인투자자 순매수액이 3억4917만 달러다. 금리가 높은 시기엔 고율 이자를 받고 금리가 낮아지면 채권에 대한 자본 차익을 낼 수 있는 ETF다.

기술주 투자도 배당형 ETF로 하는 이가 많다. ‘JP모간 나스닥 주식 프리미엄 인컴(JEPQ)’에는 올 들어 국내 투자자 자금이 8537만 달러 몰렸다. 이 ETF는 나스닥100 지수 중 고배당주에 투자하고 커버드콜 전략을 통해 편입 종목의 주가 하락 영향을 방어하는 구조로 설계됐다. 커버드콜 형식으로 엔비디아와 미국 국채 등에 투자하는 ‘일드맥스 엔비디아 옵션 인컴 스트래티지(NVDY)’ ETF도 7498만 달러로 순매수 상위권에 올랐다.

배당형 ETF를 중심으로 코카콜라, 모건스탠리, 스타벅스, 디지털리얼티 등을 편입해 매달 현금을 받는 포트폴리오를 짜는 전략도 유행이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상장사 중 약 80%는 3개월 단위로 1년에 네 번 배당금을 준다. 예를 들어 1·4·7·10월에 배당하는 기업, 2·5·8·11월에 배당하는 기업, 3·6·9·12월에 배당하는 기업을 매수하고, 배당 지급일이 서로 다른 월 배당 ETF 세 가지를 섞어 포트폴리오를 짜면 이론적으로 거의 매달 배당금을 받을 수 있다. 이 배당금을 재투자하면 복리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미국에는 이런 배당 투자자를 위한 ‘배당계급표’도 마련돼 있다. 50년 이상 꾸준히 배당한 기업인 ‘배당 킹’에는 워런 버핏이 투자한 것으로 유명한 코카콜라를 비롯해 3M, 존슨앤존슨, P&G 등이 있다. 25년 이상 배당한 ‘배당 귀족’은 AT&T, 엑슨모빌, 시스코 등이 꼽힌다. 10년 이상 배당한 ‘배당 챔피언’으로는 스타벅스, 베스트바이, 프랭클린리소시스 등이 포진했다.



미국은 50년 넘게 배당금을 인상해 온 회사가 49곳에 달한다. 같은 기간 배당을 꾸준히 늘려 온 국내 기업은 없다. 미래에셋자산운용에 따르면 미국의 지난 10년 평균 주주환원율은 92%로 전 세계에서 가장 높았다. 한국(29%)의 3배 이상이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배당형 투자는 배당금과 기초자산 가치가 꾸준히 상승하는 게 최적의 시나리오”라며 “국내 상장사들이 투자자에게 배당과 주가 성장에 대한 신뢰를 주지 않는다면 미국으로의 투자 이민 현상이 더 심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자가 될 수 있어

배당형 ETF에 투자할 때는 세금 문제를 먼저 따져볼 필요가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내 배당 ETF에서 나오는 분배금은 배당소득세(15.4%)로 원천징수된다. 문제는 배당소득과 이자소득 합계가 연 2000만 원을 넘으면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자가 된다는 점이다. 금융소득종합과세는 2000만 원 초과분에 대해 다른 소득과 합산해 누진세율(6.6∼49.5%)로 소득세를 매긴다. 노후생활비로 월 200만 원씩만 받도록 설계해도 세금 폭탄 대상자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건강보험료도 추가로 부과될 수 있다. 은퇴한 지역가입자는 이자와 배당소득이 연간 1000만 원을 넘으면 전체 이자와 배당소득에 대해 약 8%의 건강보험료가 매겨진다. 이자와 배당소득이 2000만 원이 넘으면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도 탈락된다. 직장인이라면 2000만 원 초과 금액의 8%를 건강보험료로 추가로 내야 한다.

자산운용사들은 배당 투자 문화가 정착하려면 연금 선진국처럼 분리과세 체계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미국에서는 배당소득세가 15%로 분리과세가 된다. 일본과 대만은 다른 소득과 합산한 종합과세나 분리과세 중에서 본인에게 유리한 쪽을 선택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현행 과세 체계에서 절세하려면 중개형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와 연금계좌를 적극 활용하라고 조언했다. 두 계좌에서 나오는 배당금은 금융소득종합과세에 포함되지 않고 각각 9.9%, 3.3∼5.5%로 분리과세가 된다. 단, ISA 납부 한도는 1억 원에 그치고, 연금계좌는 1년에 1800만 원까지만 저축할 수 있어 노후생활비를 월 배당으로 충당하려면 오랜 기간 금액을 넣어야 한다.

‘손실 무한대’ 커버드콜 투자 주의해야

월 배당 ETF는 부동산과 비교할 때 언제든 환매할 수 있어 현금화가 쉽고, 세입자라는 변수 없이 매달 현금흐름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게 강점으로 꼽힌다. ETF, 기초지수 가격 변동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도 빠른 투자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전문가들은 하지만 월 배당 ETF를 성장과 배당을 모두 노릴 수 있는 ‘만능형 상품’처럼 받아들여선 안 된다고 지적한다.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는 만큼 본인의 투자 성향과 상품 특성을 꼼꼼히 살펴보고 투자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월 배당 ETF는 배당금을 재투자하는 ‘토털리턴(TR)’형을 제외하면 매달 배당하도록 구조가 설계돼 있다. 해당 상품을 분배락일 전날까지 보유하면 분배금이 입금되는 식이다. 주식의 배당락처럼 분배금을 지급할 투자자가 확정된 뒤 분배금 규모만큼 기준가가 전체적으로 하향 조정된다. 투자자들은 ETF 주가 등락률만 확인할 게 아니라 분배금까지 반영한 수익률과 누적 성과를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월 배당형 ETF의 대세로 자리 잡은 커버드콜 ETF는 기초자산의 가격 변동이 작은 ‘횡보장’에서 추가 수익을 낼 수 있지만 변동성이 커질 경우 수익은 제한되고 손실만 무한대로 커질 위험이 있다. 한 자산운용사 사장은 “세상 어디에든 공짜 점심은 없다는 격언을 새겨야 한다”며 “커버드콜 상품은 급락장이 오면 원래 주가 수준을 되찾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김승현 한국투자신탁운용 ETF컨설팅담당은 “특정 상품에 자산을 집중하기보다 월 배당 ETF 중에서도 주식, 채권, 리츠 등 다양한 기초자산에 적절히 분산투자를 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최만수 한국경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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