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최근 부산 중구 대청로에 있는 부산 근현대역사관을 방문한 자리에서 이런 말을 꺼냈다고 한다. 옛 한은 부산본부를 리모델링해 올해 초 개관한 곳이다. 이 총재는 1층 카페에서 디저트 메뉴 중 하나인 ‘골드바 케이크’를 구매하면서 “(금을) 여기서 드디어 사게 됐다. 이제 금을 구매하라는 주변 권유에서 벗어날 수 있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총재의 발언은 농담조로 건넨 것으로 알려졌다. 주변에선 작년 초부터 “금 매입이 필요하다”고 시달린 이 총재의 속내가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은의 금 매입 요구는 작년 초 금값이 크게 뛰면서 본격화됐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은 “금 가격이 오르는데, 외환보유액 중 금 비중은 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금거래소에 따르면 금 가격은 2022년 11월 트로이온스당 1600달러대에서 작년 5월 2000달러대까지 수직 상승했다.
한은의 금 보유량은 11년째 104.45t에 머물고 있다. 2014년 이후 한 차례도 매입하지 않았다. 한은은 금을 사지 않는 이유를 여러 차례 설명했다. 이 총재는 송 의원의 질의에 “금은 변동성이 큰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2014년 이후 금을 매입하지 않은 시기 금값은 큰 폭으로 하락했다. 이자가 없는 자산이라는 점도 금 매입을 꺼리는 이유다.
한은은 작년 6월과 올해 4월 각각 보도자료와 블로그 게시글을 통해 금을 사지 않는 이유를 밝혔다. 한은은 금의 장기 수익률이 다른 자산에 비해 높지 않다고 설명했다. 한은에 따르면 1973년 이후 금의 연평균 수익률은 6.93%로 미국 국채(6.39%), 미국 주식(7.21%)과 비슷하다. 변동성을 감안한 위험 조정 수익률 기준으로는 금 수익률(0.26%)이 미국 국채(0.96%)나 주식(0.44%)에 미치지 못한다.
금을 적극적으로 매입하는 중앙은행들의 상황이 한은과 다르다는 설명도 있다. 최근 금을 대규모로 사들여 가격 상승을 주도한 중국, 러시아, 인도 등은 미국 달러화 의존도를 낮추려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은은 “금을 사기보다는 달러 유동성을 확보하는 게 낫다”는 입장이다. 금 매입은 “중장기 시각에서 검토하겠다”고 했다.
이런 설명에도 금값이 계속 오르면서 금을 매입하라는 요구가 잇따르고 있다. 금값은 최근 역사상 최고 수준인 트로이온스당 2500달러를 넘었다. 단순히 2022년 11월에 금을 사서 최근에 팔았다면 50%가 넘는 수익률을 거둘 수 있었다.
금을 사지 않는 이유는 명확하지만, 금을 사야 한다는 주요 근거는 ‘가격이 계속 올랐기 때문에’ 정도다. 물론 쌀 때 사서 비쌀 때 파는 투자의 ‘정석’을 따를 수 있으면 좋다. 하지만 외환 안전판을 강화해야 할 책무가 있는 한은은 금값이 떨어질 가능성에도, 비쌀 때 금을 팔 수 없는 상황에도 대비해야 한다.
한은도 역사를 다시 쓰고 있는 금값의 향방을 좀 더 분석하고, 자신들이 밝힌 대로 ‘중장기적 관점’에서 금 보유량을 어떻게 조정할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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