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지중해 폭풍우가 삼킨 '영국의 빌 게이츠'

입력 2024-08-20 17:44   수정 2024-08-21 01:20

2011년 미국의 휴렛팩커드(HP)는 컴퓨터 제조 부문 분리·매각과 소프트웨어 중심 기업으로 전환 방침을 밝혀 정보기술(IT)업계를 놀라게 했다. 영국의 데이터 분석 소프트웨어 기업인 오토노미를 111억달러에 인수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오토노미는 영국의 몇 안 되는 글로벌 기술 기업을 일군 마이크 린치가 1996년 창업한 회사다. ‘영국의 빌 게이츠’로 불리는 그는 회사 매각으로 돈방석에 앉았지만 긴 법정 싸움의 시작이기도 했다.

HP는 인수 1년 만에 오토노미의 기업 가치가 부풀려졌다며 88억달러의 감가상각을 발표하고 린치를 회계부정 혐의로 고소했다. 미국에서 15건의 사기 혐의로 송사에 시달린 그는 올해 6월에서야 무죄 판결을 얻어냈다. 그가 기나긴 소송에서 벗어난 뒤 꺼낸 말은 “내가 좋아하는 일, 혁신으로 돌아가고 싶다”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희망을 이룰 수 있을지 불투명해졌다. 무죄 판결을 축하하기 위해 가족, 동료들과 함께 탄 요트가 이탈리아 시칠리아섬 앞바다에서 폭풍우로 침몰했기 때문이다. 부인 안제라 바카레스 등 15명이 구조됐지만 린치와 딸을 포함한 6명은 실종됐다.

지난해에는 대서양 해저 3800m에 잠든 타이태닉호를 보기 위해 심해 잠수정을 탄 영국의 억만장자 해미시 하딩과 파키스탄 재벌 샤자다 다우드와 그의 아들이 수중 폭발로 목숨을 잃었다. 이들이 모험가였다면 린치의 취미는 모형 철도 만들기와 잉어 키우기다. 아웃도어 취미는 없지만 미국에서 1년이나 가택연금 상태로 재판을 받았던 만큼 지중해를 누비며 자유를 만끽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최근 기록적으로 높아진 지중해의 수온이 요트를 삼킨 폭풍우를 만들어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중해는 이미 ‘죽음의 바다’가 된 지 오래다. 아프리카 등지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수많은 난민과 불법 이민자들이 바다에서 목숨을 잃고 있다. 2014년 이후 3만 명 이상이 죽거나 실종됐다. 초호화 요트도 순식간에 침몰시킨 기상이변이니 난민들의 허술한 뗏목은 말할 것도 없다. 우리도 역대급 폭염을 겪고 있는 만큼 자연의 경고에 좀 더 귀를 기울일 때가 됐다.

김정태 논설위원 inu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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