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1일 오전 10시. 경남 김해, 경기 화성, 평택 등 중국계가 다수 포함된 전국 7개 구리 스크랩(금속 조각) 수집상에 부산본부세관 조사국 직원 40여 명이 들이닥쳤다. 사전 답사차 전날부터 잠복한 수사관과 포렌식 요원들은 컴퓨터와 휴대폰, 장부 등 핵심 증거를 확보했다. 고철 스크랩으로 위장해 중국 등으로 밀수출하려던 구리 스크랩 49t도 압수했다.
이날 압수수색은 한국경제신문의 ‘銅맥경화…中 수집상, 고물상 돌며 구리 스크랩 싹쓸이’(3월 22일자) 보도 이후 실태 파악에 나선 부산본부세관이 주도해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이동현 부산본부세관 조사국장은 20일 “서류 증거 인멸 등을 방지하기 위해 한날한시 전국적인 압수수색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조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형사소송법에 따른 관세법 위반 공소시효 기준을 고려해 7개 업체의 5년간 거래 기록을 분석한 결과 구리 스크랩 가격의 15% 안팎인 고철 스크랩으로 품명을 속여 밀수출한 구리 스크랩은 총 1만2970t(998억원어치)으로 나타났다. 다운계약서를 쓰듯 수출 시 단가를 낮게 신고한 가격 조작 물량도 5만5078t(3743억원어치)에 달했다. 이들은 등급에 따라 ㎏당 7.61~8.69달러인 구리 스크랩 가격을 ㎏당 0.3~1.2달러로 신고했다. 저가 조작으로 누락한 매출(수출) 3743억원에 법인세율 최저 구간 19%(2억원 초과분)를 적용하면 법인세를 711억원 넘게 탈루한 것으로 추정된다.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를 통한 환치기 목적의 자금 세탁 규모도 1392억원에 달했다. 서울과 인천, 광주 등 6개 본부세관은 수출 검사체계를 바꿔 통관 우범성 기준에 따라 선적을 앞둔 고철이나 구리 스크랩의 불시 검사 비율을 높이고 있다. 부산본부세관은 7개 업체의 피의자 수사 결과를 지난달 검찰에 송치했다.
때마침 글로벌 수요 감소세도 영향을 미쳤다. 런던금속거래소(LME) 기준 구리 시세는 3월 t당 8500달러 안팎에서 5월 20일 t당 1만1104달러로 정점을 찍은 뒤 하향세가 이어지고 있다.
국내 구리 스크랩 거래 가격도 안정세다. 연초 LME 기준 약 96%까지 치솟은 상동 스크랩 가격은 최근 90~93% 구간에 형성돼 있다. 황동을 제조하는 S사 관계자는 “구리 수요가 늘 것이라고 베팅한 글로벌 펀드가 발을 뺀 데다 중국의 건설 경기 부진 등이 겹쳐 수급과 가격 안정세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동 제조업계는 정부의 지속적인 단속과 함께 무자료 거래가 불가피한 스크랩 시장의 특수성을 고려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 구리 스크랩업계 관계자는 “이번 압수수색 여파로 중국계 수집상들이 휴대폰을 모두 비밀번호 추적이 어려운 아이폰으로 바꿨다”며 “정부 감시가 느슨해지면 또다시 불법 매입과 밀수출이 반복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부산=이정선 중기선임기자 leewa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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