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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춘욱 프리즘투자자문 대표
최근 경기선행지수와 경제성장률의 관계가 무너진 것처럼 보이는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장단기 금리 차에서 찾을 수 있다. 컨퍼런스보드가 제공하는 경기선행지수는 3개의 금융지표와 7개의 실물지표로 구성되는데, 장단기금리차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래 [그림]은 미국 경기순환과 장단기금리차(10년-2년)의 관계를 보여주는데, 장단기 금리의 역전 현상이 벌어질 때마다 경기 침체가 발생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1990년과 2000년 그리고 2008년 등 1970년대 후반 이후 발생한 6번의 경기침체를 모두 예측한 셈이다.
이처럼 미국 장단기 금리 차의 경기 예측력이 높은 이유는 바로 은행들의 대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출금리는 장기국채 금리에 연동되는 경향이 큰 데, 이는 정부가 발행한 채권이 가장 안정적인 탓이다. 따라서, 부동산이나 오토론 등 다양한 대출 금리는 국채금리에 가산금리를 부과하는 식으로 결정된다. 반면 예금금리는 정부의 정책금리 범위를 벗어날 수 없다. 정책금리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 정부는 은행들끼리 돈을 빌리는 단기 금융시장을 장악하고 있기에 예금금리도 이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장단기금리가 마이너스 레벨에 도달하면 은행들의 경영여건이 악화되며, 대출도 예전보다 더 보수적으로 집행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물론 이런 일이 한 번에 나타나지는 않는다. 장단기금리 차가 좁혀지고 또 역전되는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대출이 하루아침에 줄어들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단 대출을 조이기 시작하는 순간, 연쇄적으로 악순환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대출이 회수되는 가운데 이자를 제 때 갚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또 은행의 심사부터는 더욱 대출을 조이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2021년 말부터 시작된 장단기금리의 역전 현상은 불황의 징후로 충분한 타당성을 지니고 있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왜 지금껏 미국 은행들의 대출이 줄어들지 않고, 미국 경제성장률은 유지되는 것일까?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은행들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매우 보수적으로 대출한 데에서 찾을 수 있다. 시티와 뱅크오브아메리카 등 경제를 주도하던 수많은 은행들이 파산허가나 공적자금을 받는 지경에 이르자, 미국 은행들은 대출을 이전에 볼 수 없는 정도로 강화했다. 이 결과, 대출심사를 깐깐하게 진행하더라도 연체율이 높아지지 않고 있다. 더 나아가 미국 가계 재정 여건이 튼튼해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 주식시장이 강세를 보이는 가운데 퇴직연금 계좌가 두둑해진 데다, 주택가격이 꾸준히 오르면서 가계의 보유 순자산 규모도 역사상 최고치를 연일 경신하는 중이다.
결국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의 체질 개선이 장단기금리의 경기 예측력을 떨어뜨린 셈이다. 물론 미국 주택가격이 폭락하는 등의 충격이 벌어진다면 얼마든지 불황이 출현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은 미국 가계 곳간이 두둑하니, 급박한 경기 하강의 위험은 아직 수면아래 잠복한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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