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원과 현금청산자의 갈림길에서 법적 분쟁이 벌어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인천 남구의 한 정비사업 시행구역 토지와 건물을 소유해 재개발조합의 조합원 지위를 보유한 K씨의 사례도 마찬가지다. 그는 조합원 분양신청 공고에 따른 분양신청 기간 내 분양신청을 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분양신청 기간 종료일 다음 날 조합원의 지위를 상실했고 이후 현금청산 대상자가 됐다.
그런데 재개발조합이 K씨를 상대로 조합 사업비 지급 청구 소송을 걸었다. 조합의 주장은 현금청산자라고 하더라도 조합 정관 조항에 따라 조합원 지위 상실일까지의 사업비용과 이자·연체이자 등 금융비용 총액을 분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갑작스러운 청구에 K씨는 적지 않은 사업비용을 내야 하는지 고민에 빠졌다.
최근 인천지방법원이 이 소송에 대해 판결했다. 재개발사업에서 조합원이 현금청산 대상자가 된 경우에는 조합원 지위를 상실하므로, 사업시행자인 조합은 현금청산 대상자에게 부과금을 부과하거나 징수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물론 조합 정관이나 조합원총회의 결의 또는 조합과 조합원 사이의 약정 등으로 미리 일정 부분을 부담하겠다고 정한 때는 예외다. 이럴 경우 조합은 청산 절차 등에서 이를 청산하거나 별도로 그 반환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이 대법원 판례다.
하지만 조합 정관에 관련 문구가 있더라도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단순히 ‘현금청산 대상자가 받을 현금청산금에서 사업비용 등을 공제하고 청산할 수 있다’는 추상적인 정관의 조항만으로는 조합에서 탈퇴할 때까지 발생한 사업비용을 부담하도록 할 수 없다는 게 대법원 판례이기 때문이다. 현금청산 대상자에게 정비사업비 중 일부를 부담하도록 하기 위해선 정관 또는 정관에서 지정하는 방식으로 현금청산 대상자가 부담하게 될 비용의 발생 근거, 분담 기준과 내역, 범위 등을 구체적으로 규정해야 한다.
인천지방법원은 재개발 조합의 정관 조항은 구체적으로 계산 또는 예측할 수 있는 정비사업비 항목과 분담 기준 등을 특정했다고 볼 수 없으므로, 조합이 정관 조항에 근거해 K씨에게 정비사업비 분담액의 지급을 청구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정관 조항이 현금청산 대상자가 부담할 사업비용에 관해 구체적인 비용 항목이나 기준 등을 정하지 않은 채 ‘사업비용’이라고만 규정하고, 금융비용에 관해서도 ‘이자 및 연체이자 등 금융비용’이라고만 규정하고 있어서다. 위 조항만으로는 현금청산 대상자가 자신이 분담하게 될 총비용의 기준 또는 구체적 부담 항목과 비용 금액 등 분담내역을 예상하기 어렵다는 판단이었다. 도시정비법은 원칙적으로 사업시행자인 조합이 정비사업비를 부담하되 수입금이 부족한 경우만 조합원에게 그 차액 한도 내에서 정비사업비를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그러나 조합이 현금청산 대상자에게 주택재개발사업으로 인한 수입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당시까지 발생한 정비사업비를 개별자산 비율대로 부과한다면 개발이익을 향유하지 못하는 현금청산 대상자들이 조합원보다 오히려 불리한 지위에 놓인다. 조합이 정관 조항에 근거해 K씨에게 정비사업비 분담액의 지급을 청구할 수는 없다고 본 법원의 판결은 타당하다고 본다.
고형석 법률사무소 아이콘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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