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민간 금융지주…M&A로 ‘성장 신화’ 쓰다

입력 2024-09-02 06:03   수정 2024-09-02 08:47

[스페셜] 대한민국 금융그룹 대해부-신한금융


신한금융그룹은 1982년 지점 3개의 작은 은행을 시작으로 2001년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 현재 14개 자회사로 이뤄진 우리나라 대표 종합금융그룹으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위기를 극복하며 후발 은행에서 선도 은행으로 드라마틱한 성장사를 써내려 왔다.

당시 빅5 은행으로 불리던 조흥·상업·제일·한일·서울은행이 모두 사라진 가운데, 지주회사 방식의 구조조정을 통해 신한금융그룹은 국내 금융 시장의 겸업화·대형화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얻는다.

‘새 DNA를 지닌 은행’으로 출발

신한은행의 탄생은 당시 금융 시장에 신선한 변화였다. 재일동포들이 출자해 세운 신한은행은 다른 은행과는 분위기부터 달랐다. 당시 은행들은 엘리트주의가 팽배했지만, 주인 정신, 서비스 정신, 파이팅 정신을 바탕으로 설립된 신한은행은 일선 영업점 창구에서 친절을 무기로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시작했다. 기존 대형 은행에 비해 모든 게 열악한 환경에서, 직원들은 배수의 진 정신으로 끈끈하게 뭉치며 더 많은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했다. ‘새 DNA 가진 은행’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취약한 영업 기반을 극복하기 위해 신한은행이 선택한 방식은 고객 조직화와 불특정 다수의 고객을 직접 찾아가는 섭외 활동이었다. 다양한 고객 모임을 만들고 정기적인 교육 및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하고, 전 직원 가두 캠페인으로 고객 발굴에 나서기도 했다. 일부 금융기관에서는 은행의 품위를 떨어뜨린다는 비판도 나왔지만, 적극적인 홍보 및 서비스 활동의 결과, 설립 2년 만에 26개 영업망을 구축하며 국내 우량 은행으로 빠르게 부상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신한 문화는 연수 제도를 통해 계승·확산됐다. 신한은행은 이러한 문화를 내재화하기 위해 기업 문화 연수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신한 문화의 산실이자 정수로 연수가 꼽힌다.


국내 최초로 무인점포·PC뱅킹 도입

1990년대 신한은행은 금융 자율화라는 변화에 대응해 제2창업과 ‘리테일 혁명’을 선언했다. 당시 은행에서는 고객들이 긴 줄을 서는 게 당연하게 여겨지는 풍경이었지만, 신한은행은 리테일에서 고객 만족을 실현한다는 데 전략 방향을 맞추고 국내 최초의 시도들을 이어 갔다. ‘고객 속으로 파고드는 대중화 전략’을 통해 국내 최초로 ‘고객 만족(CS)’개념을 도입했으며, ‘365일 바로바로코너’라는 무인점포를 도심 곳곳에 설치하며 고객 가까이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했다.

또한 같은 맥락에서 부족한 영업망을 보충하기 위해 텔레뱅킹, PC뱅킹, 인터넷뱅킹 등도 국내 최초로 도입했다. 1991년부터 1995년까지 추진된 리테일 혁명을 통해 신한은행은 1996년 총수신 20조 원을 돌파할 수 있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리테일 영업 5년 만에 이룩한 경이로운 실적이었다”고 말했다.



외환위기를 극복한 작지만 강한 힘

신한은행의 ‘작지만 강한 힘’은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외환위기 이후 국내 은행권은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 8%를 달성하지 못하면 구조조정의 칼바람을 맞았다. 대동·동남·동화·경기·충청은행 등 5개 은행이 퇴출됐으며, 굴지의 은행들이 합병 또는 해외 매각이 됐다. 구조조정의 태풍 속에서 신한은행은 리테일 혁명의 결실에 힘입어 위기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상대적으로 기업여신이 적었던 만큼 부실여신이 적었고, 반면 리테일 성과가 누적되면서 위기에서 빛을 발할 수 있었다. 정부로부터 우량 은행으로 평가받아 당시 퇴출된 5개 은행 중 동화은행을 인수했다.

신한은행은 영업 정상화를 이루기 위해 임금 동결 및 삭감, 희망퇴직 시행 등 여러 수단을 동원해 가까스로 적자를 면했다. 이 과정에서 421명의 직원이 정든 회사를 떠나갔다. 또한 제일종금 폐쇄와 미국 현지법인인 MNB 매각 등으로 자구책을 마련했다. 이와 함께 질적 성장을 위한 기반 마련에 힘쓰며 기업금융과 소매금융 창구를 원스톱 뱅킹 체제로 개편하고, 국내 은행 최초로 인터넷 대출 서비스인 ‘신한 사이버론’을 선보였다.

특히 국내 은행 최초로 사업부제를 도입해 사업부별로 독립적인 수익 관리를 하며 고비용 구조를 개선했다. 사업부제는 말 그대로 임원의 책임 경영 체제로, 이는 신한은행이 국제적인 신인도를 높이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제도로 꼽힌다.

지주회사 시대 개막…
국내 첫 민간 금융지주회사 출범


신한은행 출범 이후 현재까지 신한금융그룹은 ‘기복 없는 성장’을 해 왔다는 평가를 얻는다. 그중에서도 전성기를 꼽자면, 지주회사 시대를 연 2000년 전후부터 2010년 무렵까지를 꼽을 수 있다. 인수·합병(M&A)으로 비은행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면서 드라마틱한 성장을 보여준 시기다.

2002년 2월, 2차 구조조정의 시작으로 금융권은 또 한 번 소용돌이에 빠졌다. 1999년 대우그룹의 부도에 따라 금융권에 대한 추가 공적자금 투입이 불가피해지자 금융기관 재무 구조 개선이 시작됐다.

그 일환으로 진행된 것이 은행 대형화·겸업화 정책이다. 2000년 말 주택은행과 국민은행이 합병해 초대형 은행이 탄생하고, 한빛은행을 비롯해 광주·경남·평화은행, 한아름종금 등이 합쳐진 우리금융지주도 부상했다. 당시 신한은행은 자산과 인력 규모가 적당하고 알짜 은행으로 평가받아 대형 시중은행들의 합병 우선순위에 있었다. 당시 국민은행도 신한은행과의 합병을 원했다.

합병 대상이 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신한은행의 선택은 구조조정의 흐름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었다. 바로 금융지주회사를 설립해 지주회사 방식으로 대형화·겸업화를 추진하는 것이었다. 신한금융 관계자는 “신한은행은 합병 방식이 아닌 지주회사 방식으로 구조조정을 하겠다고 선언했다”며 “이 과정에서 국내에 지주회사 제도가 도입되는 데 기여했다”고 말했다.

신한은행은 이미 신한종합연구소를 통해 1997년부터 세계 금융계의 동향을 면밀히 주시하며 금융지주회사에 대한 연구를 해 왔다. 이를 바탕으로 2000년 1월 정부에 ‘금융지주회사 제도 도입 타당성 분석 및 추진 방안’에 대한 용역보고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당시 시장 반응은 미온적이었지만, 신한은행은 지주회사 방식을 통해 주주 가치를 높일 수 있다고 확신했다. 은행은 BIS 자본비율이 있기 때문에 M&A에 자본 제약이 있는 반면, 지주회사는 자본 제약이 적기 때문에 레버리지를 일으켜 더 효율적으로 대형화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신한은행은 2000년 5월 24일 정기이사회를 통해 ‘신한금융지주회사 설립을 통한 종합금융그룹화 계획’을 공표했다. ‘금융지주회사법’이 2000년 10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던 것을 보면 선제적인 발표였다. 이어 1년 3개월이 지난 2001년 9월 1일, 신한금융지주회사 창립기념식을 가지며 6개의 자회사로 국내 최초의 민간 금융지주회사가 출발했다. 국내에선 우리은행에 이어 두 번째로 국내 금융지주회사를 설립했지만, 신한금융지주로서는 순수 민간 자본으로서 출범한 첫 번째 금융지주회사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조흥은행, LG카드 인수가 ‘빅 히트’…단숨에 ‘리딩뱅크’로

신한금융지주는 금융지주회사 설립 이후 본격적으로 겸업화·대형화를 추진해 나가기 시작했다. 신한은행을 자회사로 둔 신한금융지주는 높은 신용도를 바탕으로 상환전환우선주 증자 등의 차입을 통해 제주은행(2002년), 굿모닝증권(2002년)을 인수했다. 이어 M&A의 ‘백미’는 국내 최고(最古)의 조흥은행 인수(2003년) 및 성공적인 통합이었다. 조흥은행은 외환위기 이전까지 은행권 부동의 1위였다.

신한은행보다 자산 규모나 지분 등 덩치가 훨씬 컸으며, 요지에 핵심 점포들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신한은행은 후발 은행으로서는 가질 수 없었던 사거리 중앙의 알짜 지점들을 비롯해 조흥은행이 관리해 온 법원공탁금 등 자산을 확보하며 단숨에 국내 2위(총자산 기준)로 올라섰다.




이후 또 한 차례의 ‘점프 업’을 가능케 한 M&A가 있다. 이른바 ‘카드사태’로 부도위기에 몰린 카드사들 가운데 당시 카드 업계 1위 LG카드 인수(2006년)에 성공하며 비은행 대형화의 정점을 찍었다. 당시로서는 국내 M&A사에 전례가 없던 6조7000억 원에 이르는 가격으로 한국 금융 산업의 판도를 재편하는 계기가 됐다.

LG카드 인수는 신한금융그룹의 체질을 바꾼 역사적인 M&A로 평가된다. 비은행 부문이 취약했던 신한금융지주로서는 새로운 성장 엔진을 달게 됐다. 먼저 고객 기반이 크게 늘어났다. 특히 LG카드 고객들의 결제 계좌를 신한은행으로 유도하고, 이를 바탕으로 상품 교차판매 기회를 확대하면서 그룹 차원의 경쟁력이 한층 강화됐다. 신한금융지주의 비은행 부문 수익은 지난해 상반기 40.3%, 올해 상반기 기준 30.7%를 차지하고 있다.

신한금융지주의 글로벌 사업은 외환위기 이후 다소 주춤했지만, 해외 거점들을 확대하면서 다시 성장세를 타기 시작했다. 특히 일본과 베트남에서 현지법인을 세우며 아시아권 교두보를 확보해 나갔다. 신한은행은 1992년 베트남 현지에 대표사무소를 설립하고 1995년 호찌민 지점을 개점한 후 2009년 기존 호찌민 지점을 현지법인인 ‘신한베트남은행’으로 전환했다.

또한 2011년 신한베트남은행과 신한비나은행 합병을 완료하고, 2017년 ANZ 뱅크 베트남 리테일 부문을 인수하며 베트남 내 외국계 리딩뱅크로 도약했다. 이와 함께 다른 나라에 비해 폐쇄적인 일본 금융 산업에서, 신한금융은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일본 현지법인인 SBJ은행을 설립(2009년)해, 글로벌 핵심 기지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디지털·글로벌·ESG’로 지속 가능한 미래 연다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통해 국내를 대표하는 종합금융그룹으로 우뚝 선 신한금융지주는 현재 안팎으로 다양한 도전을 맞이하고 있다. 경쟁사들이 두각을 나타내면서 견고했던 리딩뱅크의 지위가 흔들리는 한편, 비은행 부문을 키우기 위해 추진했던 해외 금융기관과의 제휴가 리스크로 돌아오면서다. 신한금융지주의 제4대 회장으로 그룹을 이끌고 있는 진옥동 회장은 ‘디지털, 글로벌, ESG(환경·사회·지배구조)’의 키워드를 통해 성장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현재 주주 가치 제고 노력에 사활을 걸고 있는 신한금융지주는 M&A 성장 신화를 쓰던 1995~2010년 무렵의 주가순자산비율(PBR) 1.2배 이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당시에는 금융권 모두가 PBR 1배를 자랑하던 호시절로 지금과는 다른 환경에서 외형 성장이 가능했다. 신한금융그룹이 리딩뱅크로 성장하는 과정에는 전략이 있었고, 전략이 계획적으로 착착 진행되면서 실적으로 이어졌다.

이 때문에 현재 성장 전략의 부재를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단적으로 신한금융지주가 2020년 무렵부터 중요 전략으로 추진해 온 ESG의 경우 현재 ‘상생’이 핵심 키워드지만, ESG의 핵심은 ‘전환 금융’에 있다. 다시 새로운 도약의 변곡점에 선 신한금융지주가 향후 10년 어떠한 혁신을 만들어 나갈지, ‘진옥동 호(號)’의 내일에 귀추가 주목된다.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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