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원 받겠다고…" 일회용컵 쓰레기통 버려지는 이유 [현장+]

입력 2024-08-21 21:00  


"오가며 보긴 했는데, 뭔지 잘 모르겠네요. 사용하는 사람 본 적도 없어요."

21일 정오께 서울 중구 광화문역 인근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만난 40대 직장인 박모 씨는 일회용 컵 회수기를 가리키며 이같이 말했다. 컵을 반납하면 애플리케이션(앱)으로 100원씩 적립된다는 사실에 박 씨는 "사무실에 모인 컵이 꽤 있을 텐데 한 번 해보겠다"면서도 "100원 준다고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 같진 않다"고 말했다.

일회용 컵 대신 텀블러를 이용해 음료를 받아 가던 30대 정모 씨도 "차라리 텀블러 할인을 100원씩 더 해주는 게 좋겠다"며 "일회용품을 안 쓰게끔 유도해야지 일회용품 반납시키려고 돈도 주고 매장마다 기계까지 설치하는 건 세금 낭비 같다"며 비판했다.

지난 6일부터 서울 광화문과 숭례문 일대 '에코존'에서는 일회용 컵 회수 시범사업이 시행됐다. 사용한 일회용 컵을 사업 참여 매장이나 전용 회수기에 반납하면 100원씩 돌려받을 수 있다. 일회용 컵을 따로 모으면 화장지나 섬유 등으로 '고품질 재활용'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시행된 사업이다. 다만 캠페인 지역 내 시민들과 참여 매장 관계자들은 대부분 이 사업에 회의적이었다.
참여 매장 소수, 관리 고충도

이날 점심께부터 약 2시간가량 에코존 구역 내 일회용 컵 회수 참여 매장 5곳을 둘러봤으나 회수기를 사용하는 시민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회수기가 있는 시청역 인근 대형 카페에 상주해 지켜봐도, 컵을 반납하는 시민은 없었다.

사업에 참여하는 한 개인 카페 매장 직원은 "아직 시민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며 "그래도 월초보다는 늘어 하루 10개가량 모인다"고 전했다.

사업에 참여하는 대형 프랜차이즈 매장 직원들도 하루 평균 15~20개가 모인다고 밝혔다. 해당 사업은 1인당 하루 20개의 컵만 반납할 수 있게 제한을 뒀는데, 시민 1명의 최대 반납치에도 못 미치는 컵이 거둬지고 있는 셈이다.

경복궁역에서부터 숭례문까지 이르는 에코존 자체가 한정적인 데다, 이 구역 내에서도 회수 사업에 참여하는 매장이 극히 적다는 점이 문제로 꼽힌다.

자원순환보증금관리센터에 따르면 에코존 내 카페와 패스트푸드점은 총 330곳이다. 회수용 전용 컵 무상 제공, 회수기 무상 대여, 컵 1개당 30원 인센티브 지급에도 불구하고 300여곳 중 실제로 회수 사업에 참여한 매장은 12.7% 수준인 42곳에 불과하다.

회수기 관리 등 운영상 번거로움이 매장 참여율 부진의 원인이다. 시민들이 회수기에 컵을 반납하면, 매장 직원들이 컵을 정리해 모아둬야 한다. 이를 주3회 수거 업체가 가져간다. 직원 입장에서는 업무가 더해지는 격이다.

실제로 이날 회수기가 있는 매장의 일부 직원들은 고충을 호소하기도 했다. 시청역 인근 한 카페 직원은 "음료가 남아있는 상태에서 반납하시는 분들이 종종 있어서 영업 마감 전에 꺼내서 정리해야 한다"고 털어놨다. 다른 매장의 회수기 앞에도 '쓰레기통 아닙니다', '빨대 버리고 컵만 반납해주세요' 등의 공지가 붙어 있었다.

한 매장은 아예 반납구가 판으로 덮여 있었는데, 직원에게 문의하니 "판을 밀어두고 회수기를 사용하시면 된다. 손님들이 매장 컵 반납대로 오해하셔서 판을 올려뒀다"며 양해를 구하기도 했다.
회수기 옆 쓰레기통도 일회용 컵 '수북'

에코존 내에 100원 적립이 가능한 무인 회수기는 2곳으로, 서울시청 서소문청사와 종로구청에 있다. 이날 서소문청사 무인회수기에 방문해보니, 코앞에 회수기가 있는 데도 바로 옆 쓰레기통에 일회용 컵들이 수북이 버려져 있는 모습이 포착됐다.

이는 일회용 컵 중에서도 버릴 수 있는 컵이 따로 있어 벌어진 일이다. 사업에 참여한 매장에서 받은 컵에는 QR코드와 자원순환보증금관리센터의 표식인 'COSMO'가 새겨져 있다. 이 컵만 회수기 반납과 100원 적립이 가능하다.

이에 환경부 관계자는 "에코존에 있는 버스정류장 30곳에 일반 일회용 컵도 반납할 수 있는 회수함이 있다"고 설명했으나 이 회수함에 일회용 컵을 반납하면 100원은 돌려받을 수 없어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에만 기대야 하는 상황이다.
정부·지자체 노력에도 회수율은 '뒷걸음질'
정부와 지자체에서 도입하는 여러 자원순환 사업에도 일회용품 발생량과 회수율은 퇴보하고 있는 실정이다. 5월 환경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스타벅스·맥도날드 등 국내 주요 프랜차이즈 카페와 패스트푸드점 17개 브랜드에서 쓰인 일회용 컵은 총 9억 4000만개였다. 이는 2019년 집계치인 7억7311만개보다 21.6% 많은 집계치다.

사용량은 늘었는데 회수율은 줄었다. 2019년 19.4%였던 회수율은 지난해 4.7% 수준으로 크게 떨어졌다. 2019년 회수된 일회용컵은 1억5000만개 수준이었으나 지난해에는 4403만개로 급감했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전국에서 쓰이는 일회용 컵 총량은 환경부 최신 자료인 2022년을 기준으로 연간 231억개 수준이다.

일회용 컵 회수 시범 사업은 올 연말까지 진행된다. 환경부 측은 "일회용 컵 배출량이 많은 업무 지구에 시범적으로 제도를 도입해 불가피하게 사용한 일회용 컵을 잘 모아달라는 취지에서 진행하는 캠페인 성격의 사업"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시업 기간과 비용 문제 등을 고려해 사업 참여 매장을 추가 모집할 계획은 하지 않고 있다"며 "현시점에서 내년에 사업을 이어갈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비용만 허비한 단발성 행사로 전락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은 "일회용 컵 회수 사업은 에코존 내 '일회용 컵 보증금 제도' 시행이 무산되고 차선책으로 도입된 사업"이라며 "사업 목표가 불분명해 관계자들의 대처가 미온적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시범 사업 이후 어떤 시스템을 만들 건지, 일회용 컵을 얼마나 줄일 건지 등 청사진이 있어야하는데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일회용품 반납에 현금을 지원하는 방식은 지속성이 없다"며 "전국적으로 일회용 컵 사용자에게 비용을 부과해 모인 금액을 다회용기 사업에 투자하는 식의 강제성이 있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어 "강제성을 납득시킬만한 일관된 목표가 있어야 시민들도 수긍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김영리 한경닷컴 기자 smart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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