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빚 폭증 막자"…은행권, 초유의 '대출회피 전쟁'

입력 2024-08-22 17:48   수정 2024-08-29 16:16

관치(官治) 금리 후폭풍에 은행들이 전례 없는 ‘대출 회피 경쟁’에 나섰다. 뒤늦은 가계대출 억제 정책에도 대출 수요가 줄어들지 않으면서 금리가 낮은 은행에 신규 대출이 쏠리는 ‘풍선 효과’가 극심해지고 있어서다. 평소 같으면 대출 유치 경쟁에 나서야 할 은행들이 금융당국의 ‘가계부채 관리’ 지침에 맞춰 고금리를 내걸고 사실상 ‘대출 사절’에 나서는 촌극이 벌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달에만 금리 1%포인트 ‘껑충’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 신한 하나 우리 농협 등 5대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이달 들어 5조5408억원 급증했다. 지난달부터 은행들이 앞다퉈 금리 인상에 나섰지만 수도권을 중심으로 달아오른 부동산 매수세가 꺾이지 않으면서다.

낮은 금리를 찾아 나선 대출 수요자들의 쏠림 현상도 심해지고 있다. 신한은행(2조3588억원) 우리은행(2조1035억원)은 이달 들어서만 주담대 잔액이 2조원 넘게 불어났다. 주담대 수요가 몰리자 이들 은행은 이달에만 네 차례나 금리를 끌어올렸다.

우리은행은 한 달 새 주담대 금리를 1%포인트 넘게 올리는 ‘초강수’를 택했다. 주담대(아파트 담보대출) 최저 금리(아파트론 5년 주기형 기준)를 지난 1일 연 3.26%에서 오는 26일 연 4.34%로 1.08%포인트 인상하기로 하면서다. 우리은행은 이날 가계대출 억제를 위해 재차 주담대와 전세자금대출 금리를 각각 0.4%포인트, 0.3%포인트 올린다고 발표했다.
○국책은행마저 ‘강제 인상’
다른 은행도 상황은 비슷하다. 지난달부터 국민은행은 5회, 하나은행과 농협은행은 2회 연속 금리를 높였다. 대출 차단을 위해 자고 일어나면 금리가 오르는 기현상이 반복되는 이유다. 한 시중은행 여신담당 부행장은 “금리 인상 시점이 잠시라도 늦으면 순식간에 조 단위로 신규 대출이 폭증하는 상황”이라며 “다른 은행보다 금리를 0.01%포인트라도 높게 유지하지 않으면 금융당국에 보고한 가계 대출 한도를 맞추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시중은행들의 금리 인상 행진에 국책은행인 기업은행마저 ‘강제 인상’에 들어갔다. 기업은행은 이달 27일부터 주담대와 전세자금 대출 금리를 각각 0.45%포인트, 0.4%포인트 올릴 예정이다. 기업은행이 주택 관련 대출 금리를 올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금리를 올린 시중은행을 대신해 기업은행에서 대출을 받겠다는 문의가 늘면서 어쩔 수 없이 인상 계획을 발표했다”고 귀띔했다. 찾아오는 손님을 막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금리 인상 카드를 빼든 셈이다.
○“정책 실패로 실수요마저 차단”
주담대를 받으려는 수요자들은 발품을 팔고 있다. 이날 30대 신혼부부 김모씨는 대출 서류를 급히 챙겨 서울 여의도의 한 은행 영업점을 찾았다. 추가 금리 인상 소식을 듣고 인상 전 금리로 대출받기 위해서다. 해당 영업점 직원은 “대출 금리 인상 계획이 발표되면 시행 전 막차를 타려는 고객으로 창구가 붐볐다가 금리가 오르면 고객들이 다른 은행으로 떠나 한산해지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고 했다.

은행들은 가계대출 총량 한도를 맞추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고 항변했다. 은행들은 매년 금융당국에 연간 가계대출 한도를 보고한다. 올해는 ‘전년 대비 4~5% 증가’를 상한선으로 뒀다. 하지만 수도권 부동산 가격 급등에 신생아특례대출 등 정책대출이 쏟아져 대다수 은행이 대출 한도를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권 관계자는 “가계대출을 제때 통제하지 못한 정책 실패가 주택 실수요자의 대출 기회마저 빼앗는 부작용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재원 기자 wonderfu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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