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한국은행이 내놓은 ‘금융·경제 이슈 분석’ 보고서에는 관광객과 관련해 눈에 띄는 통계수치가 담겨 있었다.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 수가 “4월 중 90만 명으로 2019년 4월 대비 55%의 회복률을 나타냈다”는 것이었다. 3년여에 걸친 ‘코로나 시기’를 이겨내고 한국에 다시 외국인 관광객이 찾아오기 시작했음을 수치로 보여주는 낭보였다.
K-팝, K-푸드, K-패션, K-뷰티, K-드라마, K-배터리, K-엔터, K-게임, K-의료, K-원전 K-조선, K-문화, K-중기, K-방산…. 가히 ‘K합성어’ 전성시대라 할 만하다. 이들은 K 뒤에 외래어 또는 한자어가 더해져 합성어를 이룬다. K합성어 형태는 우리말에서 특이한 결합 사례로 주목할 만하다. 우리말의 여러 합성어 중 독특한 형태로 ‘빅3’나 ‘톱10, 3D(3차원), 5G(5세대), G7(주요 7개국)’같이 외래어나 영문자를 숫자와 어울려 쓰던 사례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K드라마’처럼 영문자와 한글이 어울려 말을 이루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우리말 합성어가 되기 위해서는 한글로 바꾸어야 하는데, ‘케이팝’이니 ‘케이푸드’니 하는 표기가 쉽지 않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UN이 유엔으로, UNESCO가 유네스코로 바뀐 것처럼 K-팝이나 K-푸드 등이 한글 표기로 바뀔지는 현재로선 회의적이다.
갑질이나 폭력, 사기, 투기, 조폭 같은 것은 범죄 영역의 말이다. 거창하게 ‘OO문화’라고 포장할 말이 아니다. 대부분 문맥에 따라 ‘풍조’나 ‘풍토, 심리, 행태’를 붙여쓰기함으로써 의미를 충분히 살릴 수 있다. 그런 점에서 K-바가지도 그저 ‘바가지 행태’일 뿐이다. K합성어의 무분별한 남발이 자칫 K-폭력이나 K-사기, K-투기 같은 말을 만들어내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더구나 ‘K-바가지’에는 규정하는 효과가 있다. 이른바 ‘낙인효과’다. ‘명명하기’를 통해 규정하거나 정의를 내림으로써 그 기능을 수행한다. ‘K-바가지’가 걱정되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이 표현이 한국의 관광지 판매상을 호도하고 잘못 규정하는 말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K와 결합해 ‘한국형, 한국산, 한류의, 한국적인’ 같은, ‘한국 고유의 특색을 갖춘 것’이라는 의미를 띨 수 있는 말이라야 한다. 그런 까닭에 이미 한국 고유의 것에는 K가 붙지 않는다. 가령 ‘K-한글’이니 ‘K-김치, K-불고기, K-태권도’ 같은 말은 적절치 않다.
“특히 K-산업화로 초고속 경제성장을 이루고, 여성의 사회 진출이 눈에 띄게 증가했지만 가정에서 여성이 감당하는 가사 노동과 돌봄의 짐이 여전히 과거 시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은 출산을 꺼리게 하는 대표적 요인이다.” 한국은 1960~1970년대 산업화로 초고속 경제성장을 이뤘다. 그런데 왜 굳이 K를 붙였을까? 이는 K 유행을 지나치게 의식해 붙인 과한 표현이다. 마찬가지로 “‘K-직장인’의 하소연” 같은 표현도 자연스럽지 않다. 한국적 변별성이 없기 때문이다. K-직장인은 잘못 읽으면 김씨나 고씨 등 성씨의 영문 이니셜로 착각하기 십상이다.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