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당 정부의 성장 전략은 기존 영국 보수당이 집권 당시 친환경 정책의 ‘속도 조절’을 주장한 것과는 대조되는 움직임이라 시선을 끈다. 이에 한동안 주춤하던 영국의 친환경 정책이 다시금 활기를 찾고 있다.
“저탄소 에너지 기술 개발로 영국 성장 브레이크 해제”
영국에 노동당 정부가 들어선 지 한 달 남짓 지났다. 최근 몇 년간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영국 경제의 부활을 준비하는 새 정부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영국 정부는 지난 7월 17일 런던 웨스트민스터궁에서 열린 의회 공식 개원식에서 찰스 3세 국왕의 ‘킹스 스피치(영국 국왕 연설)’를 통해 장기적 국정 계획을 밝혔다. 이 자리에서 찰스 3세는 “선도적 산업국가로서 영국의 입지를 강화할 것”이라며 “강력한 인프라 건설과 투자 촉진을 위한 국부펀드 조성 등을 통해 영국 경제의 새로운 기반을 마련하는 데 중점을 둘 것이다”라고 밝혔다. 키어 스타머 총리 또한 첫 의회 토론을 통해 “성장의 잠금을 풀고, 영국의 브레이크를 해제할 것이다”라고 말하며 영국 경제성장을 위한 정책이 새 정부의 최우선이 될 것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영국 노동당은 경제성장을 위한 정책으로 ‘청정에너지 강국’을 만들겠다는 청사진을 밝혔다. 특히 저탄소 기술 개발에 중점을 둔다는 방침이다. 실제 영국 정부의 2023년 금융시장 성장 전략에 따르면, 저탄소와 재생에너지 분야의 수출이 2021년부터 2022년 사이 무려 6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는 전체 수출 증가 6%와 비교되는 대목이다. 영국의 주력 산업으로서 저탄소 산업 분야와 신재생에너지 분야의 성장 가능성을 고려한 선택인 셈이다.
노동당의 청정에너지 공약 중 가장 눈에 띄는 건 2030년까지 전력 생산으로 인한 탄소배출을 없애겠다는 목표다. 현재 영국 전력 에너지 공급원 중 화석연료는 33% 정도다. 이를 저탄소 재생에너지로 대체하기 위해서는 태양광이나 해상풍력 등을 이용한 전력 생산량을 대폭 늘려야 한다.
영국의 독립 자문기구인 기후변화위원회에 따르면, 영국이 2030년까지 전력 생산의 대부분을 탈탄소화하고 2035년까지 완전한 탈탄소화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향후 10년간 신재생 청정에너지 분야에만 연간 약 150억 파운드(약 27조 원)이 투입돼야 한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영국 정부는 2030년까지 육상풍력을 현재의 2배, 태양광 3배, 해상풍력을 4배로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영국은 특히 북해의 해상풍력을 개발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영국 북해에 위치한 세계 최대 해상풍력단지인 도거 뱅크에서 첫 전력 생산에 성공하며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영국 정부는 해상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발전소 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복잡한 승인 절차를 간소화하는 등 조치를 취할 계획이다. 최근 이와 관련해 주민들의 프로젝트 반대가 높아지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에도 관심이 모이고 있다.
주택 에너지 효율화, 그린 일자리 창출 등에 대규모 투자
영국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전환 정책을 지원하기 위해 지난 7월 29일 유럽의 국영 에너지 회사를 모델로 한 공기업 ‘GB 에너지’ 설립을 공식 발표했다. 이를 통해 민간 자금을 유치함으로써 대규모 프로젝트를 통해 첨단 에너지 기술에 대한 투자를 활성화한다는 방침이다.
영국 정부는 국부펀드를 통해 철강 같은 에너지 집약적 산업을 전환하고 재생 가능한 전력을 위해 항구를 개조하는 등 대규모 투자 프로젝트 계획도 함께 구상 중이다. 국부펀드는 공적 자금 1파운드를 투자할 때마다 민간 자금에서 3파운드의 투자금을 유치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데, 영국 정부는 이미 약 100억 파운드(약 17조 원)의 예산을 배정했다.
GB 에너지와 국부펀드를 통한 투자자금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부분은 60억 파운드(약 10조 원)가량의 ‘따뜻한 주택’ 계획이다. 단열 및 기타 에너지 효율 같은 변화를 추진함으로써 1900만 채의 주택을 업그레이드한다는 계획이다. 노동당은 현재 60억 파운드를 포함해 영국의 주택 에너지 효율 개선을 위해 총 132억 파운드(약 23조 원) 규모를 투자하겠다는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이는 이전 보수당 정부 공약의 2배에 달하는 액수다.
주택 에너지 효율화만큼 영국 정부가 힘을 쏟는 또 다른 분야는 ‘친환경 일자리’ 만들기다. 영국의 새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전환에 기반한 친환경 산업 분야의 투자와 육성을 통해 2030년까지 전국적으로 65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영국 정부는 2026년부터 연간 최대 5억 파운드(약 8900억 원)가 할당되는 ‘영국 일자리 보너스’를 통해 청정에너지 개발업체의 일자리 창출에 보조금을 지급할 계획이다.
이 외에 보수당의 수낙 전 총리가 2035년으로 연기한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 금지 계획도 다시 복원할 방침이다. 이 계획이 복원될 경우 2030년부터 영국에서 내연기관 자동차는 판매가 금지된다. 스티머 총리는 영국을 전기차 개발 및 제조의 허브로 만들겠다는 구상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영국 새 정부의 이 같은 친환경 성장 전략 구상에 대한 비판도 뒤따른다. 영국의 BBC는 “새로운 노동당 정부의 핵심 정책인 주택 건설은 지역사회의 강력한 반대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며 “친환경과 경제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모두 놓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
런던=이정흔 객원기자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