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금수저 잔칫상 된 강남 아파트 '로또 특별공급'

입력 2024-08-23 17:34   수정 2024-08-26 08:11

“본인 월급이 적은데 어떻게 서울 강남에서 아파트 특별공급을 받을 수 있습니까. 특별공급 소득 조건을 이렇게 까다롭게 한 건 사실상 부모가 수십억원을 지원해주는 ‘금수저’에게 혜택을 몰아주는 겁니다.”

회사원 정모씨(30)는 최근 입주자 모집공고문을 보다가 분통을 터트렸다. 작년에 결혼한 그는 신혼부부 특별공급 대상이라고 생각했는데, 소득 요건이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신혼부부 특별공급은 가구당 월평균 소득의 140%(맞벌이 시 160%) 이하인 가구만 청약할 수 있다. 올해 기준 월평균 소득이 758만원(맞벌이 기준 866만원) 이하인 부부만 대상이다.

최근 청약시장에선 특별공급 제도를 둘러싼 수요자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무주택자의 내 집 마련을 도와주기 위한 특별공급이 오히려 집 마련을 방해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공사비 상승으로 아파트 분양가가 치솟고 있는데, 특별공급 대상 요건은 현실과 동떨어졌기 때문이다.

이른바 ‘로또 분양’으로 불리는 강남 지역 새 아파트 단지가 특별공급 제도의 실효성 논란에 불을 지피고 있다.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돼 시세보다 저렴하게 공급되는 강남권 아파트 특별공급이 사실상 금수저만 쓸 수 있는 불합리한 제도로 전락했다는 지적이다. 올해 들어 공급된 강남 지역 아파트의 전용면적 84㎡ 분양가는 20억원을 훌쩍 넘는다. 청약 당첨 후 한 달 이내 치러야 하는 계약금만 수억원에 이른다. 만만치 않은 가격인 만큼 일반적인 직장인에게는 ‘그림에 떡’에 불과하다. 증여받거나 일확천금 기회를 얻은 사람이 아니라면 30대가 강남권 청약으로 집을 장만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돈이 있는 사람만 강남 아파트에 당첨돼 시세차익을 거둘 수 있다는 의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내 집 마련의 부푼 꿈을 안고 청약 통장을 개설한 젊은 세대가 청약 무용론에 빠져 통장을 해지하고 있다. 지난달 말 기준 주택청약종합저축 가입자는 2548만9863명으로, 1년 전과 비교해 34만7430명 줄었다. 주택 청약은 물량이 한정된 아파트라는 재화를 국민에게 공평하게 분배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다. 주택은 사람에게 필수적인 ‘의식주’ 중 하나인 만큼 공공성을 강하게 요구받는다. 정부가 나서 공정하게 주택을 배분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시장 원리에 맞지 않는 방식으로 공급되는 특별공급이 용인된 것이다.

하지만 최근 금수저 특공 논란은 청약 제도의 근간인 공정성에 의문을 던지게 한다. 구성원이 청약 제도의 기초가 되는 공정성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주택시장의 불안도 커질 수밖에 없다. 공정성에 기반한 청약 제도 개편을 논의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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