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마르크스 경제학 강좌

입력 2024-08-25 17:23   수정 2024-08-26 00:12

서울대 경제학부가 마르크스 경제학 강좌를 올 2학기에 개설하지 않기로 했다. 1980년대 말엽 마르크스주의가 우리 사회를 뒤덮었을 때 학생들의 거센 요구에 따라 학부에 강좌가 개설되었는데, 강의를 듣는 학생들이 너무 적어졌다는 얘기다.

마르크스의 경제 이론은 애덤 스미스에서 연유했다. 스미스는 경제적 자유주의에 바탕을 둔 정책들을 추천했다. 그는 그런 정책들이 조화를 이루어 사회의 안정과 번영을 불러오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비유로 설명했다.

그러나 그는 그 멋진 비유를 떠받칠 경제학 이론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다만 재화의 가치는 그것을 만드는 데 들어간 노동의 가치라고 설명했다. 이런 노동가치설은 데이비드 리카도를 거쳐 마르크스에게로 전해졌다.

마르크스의 경제 이론을 담은 저작이 완간되었을 때는 이미 레옹 발라가 ‘일반균형이론’을 발표한 터였다. 발라의 이론은 경제 체제가 가격 기구 작동을 통해 균형을 이루고 자원을 효율적으로 분배하는 모습을 잘 그렸다. 워낙 뛰어나고 웅장한 이론이었으므로 조지프 슘페터는 그것을 ‘경제 이론의 대헌장’이라고 불렀다. 그 뒤로 주류 경제학은 발라가 낸 길을 따라 발전했다.

즉 마르크스의 경제 이론은 세상에 나왔을 때 이미 낡은 이론이었다. 따라서 그의 이론을 학부에서 가르치는 것은 적절치 않았다. 학부에서 배워야 할 지식은 그 분야의 정설들이다. 마르크스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사정을 감안해 경제학사 강좌에서 서너 시간 비판적으로 가르칠 수는 있다. 마르크스 이념에 대한 면역력을 길러준다는 뜻에서 마르크스의 비논리적이거나 독선적인 주장들을 상세히 가르칠 수도 있다. 그러나 학부에서 독자적 강좌를 개설한 것은 어느 모로 보나 온당치 못했다.

그런 조치로 직접적 피해를 본 사람은 수강한 학생들이다. 젊은 시절에 잘못되거나 쓸모없는 지식을 얻는 것은 기회비용이 무척 크다. 빨리 정설들을 익혀서 취업하거나 지식의 전선으로 나가서 새로운 지식을 창조할 시절에 낡은 지식을 배우는 것은 얼마나 허망한가. 한때 마르크스주의에 심취했던 젊은이들의 요청을 받고 경제적 자유주의와 시장경제에 관해 설명할 때면 그들의 황폐해진 젊은 날이 떠올라 필자는 가슴이 시려왔다.

불행하게도 마르크스주의에서 벗어나는 일은 쉽지 않다. 마음에 자리 잡은 마르크스주의의 이념적 틀을 대신할 지적 모형을 혼자 찾아내는 것은 보통 사람에겐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

마르크스는 인류 사회가 원시 사회에서 공산주의 사회로 단계적으로 이행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종말론’(eschatology)은 인류 역사의 방향과 목적지를 제시해 추종자들에게 확신과 안정을 준다. 많은 학자가 지적한 것처럼 마르크스주의는 본질적으로 종교 체계다. 그리고 종교의 핵심은 종말론이다. 마르크스주의는 지금까지 나온 종교들 가운데 가장 매혹적인 종말론을 제시했다. 바로 그 점이 마르크스주의가 그리도 큰 영향력을 지닐 수 있었고 앞으로도 그러할 비결이다.

시장에선 경쟁을 통해 소비자의 선택을 받은 것들이 살아남는다. 그래서 시장은 진화가 상시적으로 가장 격심하게 이루어지는 곳이다. 그처럼 비정한 과정을 거쳐 가장 나은 것을 찾아낼 뿐 시장은 방향도 목적지도 제시하지 않는다. 유전생물학자들이 늘 강조하는 것처럼 진화엔 목적지가 없다. 환경에 대한 적응이 있을 따름이다.

사정이 그러하므로 마르크스 이론에서 어렵사리 벗어난 사람들도 선뜻 시장을 믿지 못한다. 방향도 목적지도 모른 채 끊임없는 경쟁이 벌어지는 시장이 가장 나은 결과를 낳으리라고 믿으려면, 상당한 지적 투자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제 진화론은 ‘보편적 다윈주의’(Universal Darwinism)의 모습으로 모든 학문의 기본 이론이 되었다. 생물과학뿐만 아니라 물리과학도 진화를 가장 근본적 이론으로 삼는다. 이해하기 가장 어렵다는 양자물리학에서도 진화는 이론적 토대의 한 부분이 되었다. 대학 교과과정을 짤 때 진화를 다루는 강좌들을 마련하는 일은 지난 한 세대 동안 마르크스주의로 황폐해진 우리 지적 풍토를 개선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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