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동화같았던 '리디아 연대기'

입력 2024-08-26 18:28   수정 2024-08-27 01:13


26일 영국 스코틀랜드 파이프의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파72.6784야드) 연습 그린. 뉴질랜드 동포 리디아 고(27)는 남편 정준 씨와 따뜻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시즌 마지막 메이저 골프 대회인 AIG 여자오픈(총상금 950만달러) 최종라운드를 1타 차 클럽하우스 선두로 끝냈지만 릴리아 부(27·미국)가 18번홀(파4)에서 버디를 잡으면 연장전으로 가는 상황. 하지만 부가 이 홀에서 보기를 범하며 리디아 고의 우승이 확정됐다. 리디아 고는 울먹이는 얼굴로 남편과 포옹하며 동화 같은 순간을 만끽했다.

리디아 고는 2024 파리올림픽 금메달에 이어 메이저 우승까지 거머쥐었다. 이날 대회 최종라운드에서 버디 4개와 보기 1개로 3타를 줄이며 최종 합계 7언더파 281타를 친 리디아 고는 2타 차로 우승했다. 파리올림픽 금메달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명예의 전당 가입을 확정 지은 지 3주 만에 세 번째 메이저 우승이자 투어 21번째 우승을 이뤄 냈다. 우승 뒤 리디아 고는 “최근 몇 주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미친 것 같다”면서 “동화 같은 이야기”라며 활짝 웃었다.
한 달간 금메달·메이저 우승 싹쓸이
리디아 고는 이날 선두 신지애(36)에게 3타 뒤진 공동 4위로 경기를 시작했다. 경기 초반 신지애가 타수를 잃으며 넬리 코르다(26·미국), 부까지 4파전 양상이 이어졌다. 리디아 고는 18번홀(파4)에서 두 번째 샷을 핀 한 발짝 거리에 붙이며 버디를 잡아 가장 먼저 7언더파로 경기를 끝냈다. 이어 신지애는 15번홀(파4) 보기로, 코르다는 17번홀(파4) 보기로 선두와 멀어졌다. 마지막까지 우승을 노리던 부는 18번홀에서 두 번째 샷을 핀 4m 옆에 붙이며 버디 찬스를 맞았다. 하지만 긴장한 탓인지 퍼트가 다소 짧았고, 파 퍼트마저 홀을 돌아 나오는 바람에 보기로 경기를 마쳤다.

올림픽 금메달을 따낸 지 3주 만에 ‘골프의 성지’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에서 메이저 우승까지 한 리디아 고는 “가족과 함께 역사적인 장소에서 우승해 한 편의 동화처럼 느껴진다”고 감격했다. 리디아 고는 “열여섯 살이던 2013년 이곳에서 처음 경기했다”고 했다. 그가 ‘골프 천재 소녀’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시기다. 그는 “그때보다 현명해졌기를 바란다”며 웃었다.
정준 “아내의 치열한 노력 존경”
올림픽 금메달 현장에서 함께하지 못한 남편 정씨에게도 평소 메이저 우승 부담을 덜어주는 말을 해줬다며 감사를 전했다. 정씨는 이번 대회 기간 스코틀랜드에서 리디아 고와 함께했다.

명예의 전당은 리디아 고가 골프 커리어 종착지로 언급해 온 목표다. 지난 10일 파리올림픽 금메달로 명예의 전당 입성 자격을 완성한 그를 두고 곧 은퇴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그럼에도 리디아 고는 시즌 마지막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하며 당분간 골프 커리어를 이어가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는 “올림픽 전에 누군가로부터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는 것은 최종 목적지가 아니라 최종 목적지로 가는 길에 있는 주유소와 같다’는 말을 들었다”며 “그 말을 듣고 명예의 전당에 오른 뒤 바로 골프를 그만두기는 어렵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3라운드까지 단독 1위였던 신지애는 이날 2타를 잃고 최종 합계 5언더파 283타로 부, 코르다, 인뤄닝(중국)과 공동 2위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17번홀(파4) 보기로 한때 5위까지 밀렸지만 18번홀에서 버디를 잡아내며 타수를 만회했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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