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실리콘밸리의 탈기업이 주는 교훈

입력 2024-08-26 17:42   수정 2024-08-27 01:04

미국 실리콘밸리 마운틴뷰에 있는 구글 본사의 남자 화장실에는 여성용 생리대가 쌓여 있다. 자신을 남성이라고 규정하는 생물학적 여성을 위해서다. 이들이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해 남성용 소변기도 없다. 소수자나 약자에 대한 차별에 ‘깨어(woke)’ 있어야 한다는 진보주의 움직임 ‘워키즘(wokism)’이 바꾼 사회의 한 단면이다.

실리콘밸리가 최근 ‘우회전’하고 있다. 민주당 지지자였던 테크업계 거물들이 공개적으로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 선언을 하는가 하면, 조 바이든 행정부 정책을 대놓고 비판하기도 한다. 기저에는 민주당이 장기 집권하고 있는 캘리포니아의 높은 세율과 민주당 행정부의 규제 일변도 정책이 깔려 있다. 이게 다는 아니다. 가장 두드러지는 건 워키즘에 대한 거부감이 민주당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워키즘'이 불러온 반감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민주당 소속의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성소수자 학생 관련 법(AB1955)’을 시행하자 “캘리포니아에서는 주 정부가 당신의 자녀를 빼앗아 갈 것”이라며 스페이스X와 X(옛 트위터)의 본사를 텍사스로 이전한다고 발표했다. 머스크는 교사가 학생의 성 정체성을 자신의 허락 없이 부모에게도 알리는 것을 금지하는 이 법에 대해 “가족과 회사 모두를 공격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같은 목소리를 내는 건 미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주인 캘리포니아에선 매우 이례적이다. 자칫 차별주의자로 몰릴 수 있다는 우려에 소수자 이슈엔 사람들이 말을 아끼던 건 과거의 일이 됐다. 사람들은 성중립 화장실 의무화로 남녀가 같은 화장실 앞에 줄을 서고, 흑인 청소년들이 가게를 약탈해도 경찰들이 아무런 제재를 하지 않는 모습을 보며 워키즘이 자신의 일상을 침범한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한국도 남의 일 아냐
이들은 워키즘이 ‘우리는 약자를 위하는 것’이라는 도덕적 우월성에 사로잡혀 기존 관습을 악마화하는 데 거부감을 느낀다. 전통적인 보수층은 물론 스스로를 진보적이라고 칭했던 캘리포니아 젊은 층에서도 마찬가지다. 로스앤젤레스(LA)에서 만난 우버 기사 앙헬 씨(26)는 “나도 이민자 가정 출신이고 성소수자 권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서도 “바이든 대통령과 뉴섬 주지사의 정책은 소수자 보호가 아니라 일반 시민에 대한 역차별”이라고 말했다.

캘리포니아 밑바닥의 정치 지형 변화는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 대선의 20·30대 투표 결과가 이를 보여준다. ‘도덕적 우월주의’에 빠진 586 운동권에 대한 2030세대의 반감은 ‘젊은 층은 진보적’이라는 그동안의 사회 통념을 깨뜨렸다.

작용은 반드시 반작용을 낳는다. 작용이 클수록 반작용도 크기 마련이다. 물리학의 이 같은 명제는 사회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정부와 정치권의 책임은 사회 통합을 위해 작용과 반작용의 진폭을 줄여 나가는 것이다. 갈등 조정에 실패한 캘리포니아가 세계 유수 기업의 ‘엑소더스(대탈출)’라는 값비싼 청구서를 받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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