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돌리는 곳마다 보물…미인도까지 나왔다

입력 2024-08-27 17:10   수정 2024-09-02 15:59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서울 성북동에서는 1년에 두 번 진풍경을 볼 수 있었다. 간송미술관 전시가 열릴 때마다 관람객의 긴 줄이 성북동 큰길까지 늘어섰기 때문이다. 한국 최초 사립미술관인 간송미술관은 1971년부터 2014년까지 봄·가을 무료 전시를 열었다. 전시 기간은 각각 보름. 그 귀중한 국보와 보물들을 불과 2주 동안만 볼 수 있으니, 문화재 애호가와 연구자들이 기꺼이 2~3시간씩 줄을 선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전시 건물인 보화각의 노후화가 갈수록 심해져 어려움이 컸다. 보화각은 간송 전형필 선생(1906~1962)이 1938년 미술품 소장과 전시를 위해 건립한 건물. 건물을 지은 지 70년이 넘어가면서 전시 관람은 물론 항온·항습 등 유물 보존조차 힘들어졌다. 간송미술관이 2015년부터 신관 설립을 추진하고, 오는 9월 3일 대구 삼덕동 대구시립미술관 옆에 대구관을 개관하는 이유다.




훈민정음 해례본·미인도 나왔다

27일 찾은 간송미술관 대구관 전시실에서는 고개를 돌릴 때마다 국보와 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개관 기념 전시인 ‘여세동보(與世同寶)-세상 함께 보배 삼아’에 나온 작품은 총 66점. 이 중 국보와 보물이 40점으로 절반을 넘는다. 전인건 대구간송미술관 관장은 “간송미술관 역사상 최대 규모의 국보와 보물이 나온 전시”라고 소개했다.

유물들의 이름값은 그야말로 압도적이다. 일단 국보 제70호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훈민정음 해례본이 나왔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한글 창제 원리와 그 과정을 담은 문서로, 간송이 6·25전쟁 당시 피난길에 잠을 잘 때도 베개 밑에 넣어둘 정도로 애지중지하며 지킨 유물로 전해진다. 이 유물이 서울 바깥에서 전시되는 건 50여 년 만이다.





회화 전시실에서는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를 필두로 단원 김홍도의 고사인물화, 겸재 정선의 산수화 등 한국인이라면 한 번쯤 접한 적 있는 ‘국가대표 회화 유물’을 만날 수 있다. 불교미술과 도자기, 서예 작품들도 그 하나하나가 주요 미술관 고미술 전시의 ‘간판 작품’이 될 만하다. 고려청자인 청자상감운학문매병, 삼국시대 불상인 계미명금동삼존불입상, 고려시대 불교미술품인 금동삼존불감 등 국보가 곳곳에서 관람객을 맞는다.

한국 고미술 역사상 최고 수준의 전시품에 비해 전시 구성은 다소 아쉽다. 훈민정음 해례본과 함께 배치된 현대미술 작품은 유물과의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지 못하고 겉돈다. 전시 전반을 관통하는 주제와 메시지가 없어 다소 산만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만 이에 대해 백인산 대구간송미술관 부관장은 “이번 전시는 개관을 맞아 간송미술관의 주요 미술품을 보여주는 일종의 올림픽 출정식과 같은 전시”라며 “다음 전시부터는 여러 주제로 전시를 이어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시 보기 어려운 전시”

앞으로 간송미술관은 주로 대구관을 통해 대중과 만날 예정이다. 전 관장은 “대구 간송에서는 상설 전시와 대중친화적 전시, 행사와 교육 프로그램 등을 주로 진행할 예정”이라며 “성북동 간송미술관은 연구와 전시 활동을 중심으로 하되 봄·가을 정기 전시는 다시 열 것”이라고 말했다.

미술관은 이번 전시를 12월 1일까지 연 뒤 내년 1월부터 상설전을 시작할 예정이다. 다만 상설전에서는 문화재 보존을 위해 이번에 나온 작품 중 상당수가 빠질 가능성이 크다. 백인산 부관장은 “예컨대 서화(書畵)는 3~4개월을 전시한 뒤 보존 및 관리 과정을 거쳐야 손상을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런 면에서 이번 개관전은 문화재 애호가라면 반드시 찾아가 볼 만한 전시다. 대구 시내에서도 외따로 떨어진 입지, 다소 불편한 대중교통편 등을 감안해도 그렇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이 전시에서 유물을 딱 하나 집으로 가져갈 수 있다면 무엇을 가져갈까’를 생각하며 전시를 보면 더욱 재미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입장료는 성인 1만원, 어린이·청소년 5000원.

대구=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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