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샤워기 틀면 된다?…'부천 화재 생존법' 위험한 이유 [이슈+]

입력 2024-08-27 13:51   수정 2024-08-27 14:08


7명이 숨지는 등 19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부천 호텔 화재의 생존자가 "화장실로 대피해 문틈을 막고 샤워기로 물을 틀고 버텼다"고 밝혀 해당 대처법에 대한 관심이 쏠렸다. 전문가들은 이 방법이 무조건 안전하다고 일반화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27일 소방 당국 등에 따르면 지난 22일 화재 당시 이 호텔 806호에 머물렀던 투숙객 A씨는 객실 화장실에 대피해 있다가 출동한 소방대원에 의해 극적으로 구조됐다.

강원 강릉의 모 대학 간호학과 학생인 A씨는 인근 병원 실습을 위해 이곳에 투숙했다고 전해졌다. 그가 머문 객실은 불이 시작된 객실로 추정되는 810호와 인접한 곳이었다.

A씨는 대피 당시를 회상하며 "출입문을 열었는데 복도 전체가 연기로 뒤덮여 있었다"며 객실 화장실로 향한 이유를 밝혔다.

그는 119에 전화를 걸어 소방대원의 안내에 따라 연기가 들어오지 않도록 화장실 문을 수건으로 막고, 샤워기를 틀었다.

샤워기에서 뿜어나온 물이 수막을 형성해 일시적으로 유독가스 차단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정보가 떠오른 것이다. 기지를 발휘해 수건으로 입과 코를 막고 샤워기에서 흐르는 물을 맞고 있던 A씨는 인명 수색 작업 끝에 무사히 구조됐다.

사연이 전해지자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위급한 상황에서 현명한 선택이었다", "침착하게 대처를 잘했다" 등 놀라움과 안도 섞인 반응이 잇따랐다.

당시 사망자들이 피난 계단에서 발견된 점이 A씨의 대처법과 대비되면서 "앞으로 불나면 일단 화장실로 대피해야겠다" 등의 댓글도 쏟아졌다.


그러나 화재 발생 시 상황에 따라서는 화장실 대피가 더 위험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제언도 연이어 나왔다. 화장실에서 대기하는 방법이 반드시 옳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설명이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한경닷컴에 "수막현상으로 인해 일부 유독가스가 번지는 것을 막을 수는 있으나 화장실이 안전한 장소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며 "숙박업소 화장실의 경우 창가 쪽에 있지 않고 안쪽에 있기 때문에 공기가 부족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고, 환풍구를 통해 유독가스가 유입될 가능성도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이번 부천 호텔 화재의 사망자 중 한 명은 803호 객실 화장실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물론 화장실 대피가 무조건 잘못된 방법은 아니다. 실제 소방안전교육에서 화재 시 구조 대기 방법의 하나로 알려지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 방법과 관련 출입구나 베란다가 막혀 있어 야외로 대피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 때 시행하는 최후의 수단이라고 입을 모았다.
완강기 사용법 숙지해야

이에 전문가들은 화재 발생 시 상황별 대피 요령을 정확히 숙지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특히 이번 화재처럼 5층 이상 건물에서 대피해야 하는 경우 에어매트로 뛰어내리는 것은 위험성이 크다. 이에 공식 피난 기구로 분류되는 완강기 사용법을 숙지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실제로 완강기는 높은 층에서 지상으로 천천히 내려올 수 있게 만들어진 비상용 장비로 제대로 활용한다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현행법상 완강기는 모든 건축물의 3∼10층에 층마다 설치해야 한다. 숙박시설은 객실마다 일반 완강기나 2개 이상의 간이완강기를 설치해야 한다.

먼저 지지대 고리에 완강기 고리를 걸어 잠근 뒤 줄이 감긴 릴을 창밖으로 던지고 가슴 부위에 벨트를 착용하면 된다. 이후 창밖으로 이동해 벽을 짚으며 내려가면 된다.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완강기라면 사용자의 몸무게에 따라 자동으로 속도 조절이 되므로 추락 위험 없이 천천히 지상으로 대피할 수 있다.


반면 에어매트의 경우 5층형부터 20층형까지 여러 형태의 에어매트 중 '높이 15m의 5층형' 에어매트만 한국소방산업기술원(KFI)으로부터 소방 장비로 인증받고 있다. 이 높이를 넘어가면 에어매트가 피난 기구로서 제 기능을 발휘하기 쉽지 않아서다.

부천 호텔 화재 사고 당시에는 7층 높이에서 10층형 에어매트로 뛰어내린 807호 투숙객 2명이 숨졌다. 먼저 뛰어내린 여성이 모서리 쪽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목숨을 잃었고, 앞선 충격으로 에어매트가 뒤집히면서 연이어 뛰어내린 남성도 목숨을 잃었다. 이에 에어매트 사용에 대한 안정성 논란이 불거졌으며 소방청은 사고 이후 에어매트 설치·훈련 등에 관한 통합 매뉴얼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영리 한경닷컴 기자 smart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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