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국운을 좌우하는 것은 기업

입력 2024-08-27 17:48   수정 2024-08-28 00:10

한국은행이 지난 6월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GNI)이 처음으로 일본을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하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에서도 한국이 일본을 추월했다. 식민지가 본국의 소득 수준을 넘어선 예는 미국을 제외하면 우리가 유일할 정도로 드문 일이다. 이처럼 놀라운 일이 일어난 원인을 부가가치 생산의 주체인 기업에서 찾는 것이 자연스럽다. 1953년 찰스 윌슨 제너럴모터스(GM) 최고경영자가 한 “GM에 좋은 것은 미국에도 좋다”는 말은 경제 전체에서 차지하는 기업의 위상을 제대로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의 경제 성장을 상징하는 기업은 1946년 설립된 소니다. 1955년에 트랜지스터라디오를 발매한 이후 트리니트론 브라운관 TV,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 워크맨, 베타 방식 VCR, 캠코더,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 등 혁신적인 제품을 연속적으로 출시하면서 일본 경제 성장을 견인했다. 세계적으로도 새로운 일본을 상징하는 기업으로 인식됐다. 애플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도 소니 제품의 디자인과 혁신성에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할 정도로 소니는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제품 이미지로 세계시장을 석권했다.

소니가 등장한 지 23년이 지난 1969년 삼성전자가 설립됐다. 1969년 한국과 일본의 실질 1인당 GDP 차이는 5.7배로 격차가 컸다. 사업보국의 기치를 든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이 전기·전자산업에 뛰어들었고, 현재 한국을 먹여 살리는 반도체산업에 1974년 한국반도체를 인수하며 진출했다. 매몰 비용이 될 위험성이 큰 막대한 설비투자가 필요하고 호황과 불황이 반복되는 반도체 경기 사이클 탓에 수익을 압박하는 리스크가 높은 산업인데도 삼성그룹 전체의 이익을 쏟아부었다. 그렇게 지킨 메모리 반도체 덕분에 삼성전자는 세계적인 기업으로 도약할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사실 2010년께까지 삼성전자의 최대 고객이 소니였을 정도로 삼성전자는 소니에 부품을 공급하며 성장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삼성전자가 2007년 매출과 이익 규모에서 소니를 완전히 넘어서고, 격차를 확대한 덕분에 한국 경제도 일본 경제를 빠르게 추격해 추월할 수 있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런데 이병철 회장의 사업보국 꿈이 이뤄지는 시점에 대만에서 TSMC가 부상하면서 대만의 국민소득이 한·일을 추월하려고 하고 있다.

세계 최초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기업인 TSMC는 삼성전자가 출범한 지 18년 뒤인 1987년 대만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세워졌다. 대만 경제가 한국과 달리 중소기업 중심의 경제인 까닭에 1995년 이후 상당 기간 정체기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 대만 경제를 주도하는 기업은 더 이상 중소기업이 아니라 TSMC와 같은 대기업이다. 톰슨로이터가 2023년 발표한 ‘100개 글로벌 테크 리더’에 들어간 한국 기업은 삼성전자, LG전자, SK하이닉스뿐이지만 대만 기업은 13개다.

한국 대기업의 경쟁자는 일본과 대만에만 있지 않다. 미국에도, 중국에도, 유럽에도 많이 있다. 모든 나라에서 자국 기업을 살리고, 해외 우량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막대한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아낌없이 주고 있다. 그런데 한국 정부의 기업 지원은 경쟁국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설상가상 국민의 반기업 정서는 깊어만 가고 있다. 사업보국을 위해 힘쓰는 모든 ‘기업가’에게 좋은 것은 한국에도 좋다는 사실을 바로 인식해서 할 수 있는 모든 방편을 사용해 기업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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