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고등학교 3학년인데 딥페이크 성 착취물 피해를 본 것 같아요. 수능이 두 달 남았는데 걱정이 큽니다. 최대한 빨리 피해 여부를 파악하고 삭제 조치해주세요." (딥페이크 피해자 자녀를 둔 50대 여성)
최근 텔레그램을 기반으로 불특정 다수 여성 얼굴에 음란물을 합성하는 '딥페이크' 성범죄가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디지털 흔적 지우기'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이미 제작된 사진과 영상으로 피해를 본 이들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후속 조치가 '흔적 지우기'이기 때문이다.
전문적으로 불법 영상물 삭제를 지원하는 사설 '디지털 세탁소'도 때아닌 호황을 맞았다. 여성가족부가 운영하는 공식 센터에 우선 연락을 취해야 하지만, 워낙 문의량이 많다 보니 사설 업체를 찾아가는 이들도 많아진 것으로 분석된다.
센터 개원 초기에는 몰래카메라를 이용해 촬영된 불법 영상물에 대한 삭제 의뢰가 대부분이었다. 최근엔 이번에 논란이 된 '딥페이크 봇'을 통해 만들어진 성 착취 영상물을 삭제해달란 요청이 증가하고 있다.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 관계자는 "구체적인 수치를 언급하긴 어렵다"면서도 "딥페이크 사태가 터진 뒤 관련 상담 문의가 매일 전일 대비 늘어나는 추세"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유포된 불법 영상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퍼진다"며 "피해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부터 발 빠르게 초기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 디지털 세탁소 소속 김호진 디지털 장의사는 "딥페이크가 불법 합성에 자주 활용돼 이번 사태가 터지기 이전에도 하루에 10~15건의 딥페이크 합성물 삭제 의뢰가 들어왔었다"며 "최근 4~5일 사이엔 하루 평균 문의량이 두 배 가까이 늘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업체 최태운 대표는 "피해자의 어머니가 울면서 삭제를 요청하기도 하고, 피해자가 속한 학교의 교사로부터 문의를 받은 적도 있다"며 "현재 피해자 건은 비용을 받지 않고 디지털 세탁을 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피해자뿐만 아니라 많은 가해자 역시 디지털 세탁을 의뢰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호진 장의사는 "현재 딥페이크 영상물 관련 문의의 70%가 가해자 부모"라며 "이들은 인터넷에서 공유되고 있는 자녀의 사진 등 개인 정보와 범행 사실을 삭제해달라고 요청한다"고 설명했다.
최 대표도 "가해자나 그 부모와 상담할 때면, 그들의 태도가 너무 당당해 화가 난다"며 "가해자의 경우, 피해자와 합의를 한 뒤 동의를 받아왔을 때만 개인 정보를 삭제해준다"고 말했다.
이들은 '크롤링'(수집) 프로그램을 활용해 온라인상에 유포된 사진과 영상 등 콘텐츠를 수집해 그 사이트에 직접 삭제를 요청하거나 때에 따라 서버를 직접 해킹한다. 그러나 텔레그램은 대부분의 삭제 요청을 반려하고, 보안성이 높아 서버 접근도 쉽지 않다.
최 대표는 "지금으로선 텔레그램 내에서 돌던 영상이 외부로 유출됐을 때만 수집, 삭제 등 디지털 세탁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 관계자는 "사설 디지털 세탁소와 달리, 우리는 사이트가 요청에 응하지 않을 경우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통해 접속을 차단하거나 경찰에 즉각 수사를 의뢰할 수 있다"며 "국가 기관과 긴밀한 협력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더 실효성 있는 대처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여성학 박사인 허민숙 국회 입법 조사관은 "확실한 제재를 통한 사전 예방이 실패한 지금 시점에서 피해자에게 디지털 세탁은 후속적인 조치로는 거의 유일한 대안"이라고 말했다.
허민숙 조사관은 "사설 업체는 디지털 세탁 과정에서 영상이 2차로 유출될 우려가 있다"며 "과도하게 의지하는 건 위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식 지원 센터에서도 지난해 진행된 삭제 지원 건수만 25만건에 가깝다"며 "보안과 실력 모두 믿을만하므로 주저하지 말고 피해 사실에 대해 상담받길 권한다"고 강조했다.
성진우 한경닷컴 기자 politpe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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