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국회에 따르면 전날 열린 정무위원회 법안심사 2소위에서 저소득 보훈대상자 생활조정 수당 부양 의무자 기준 폐지와 관련한 3개 법안(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등)을 심사할 계획이었으나 처리가 보류됐다. 법안엔 보훈 대상자에게 생활조정 수당을 지급할 경우 따로 사는 부양의무자의 소득과 재산을 고려하지 않고, 대상자 단독으로 심사해 결정하도록 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소위에는 정무위 소속 여야 의원들을 비롯해 국가보훈부 이희완 차관과 담당 국장 등이 참석했다. 야당도 해당 법안의 취지에 공감해 소위와 전체 회의를 통과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해당 안건은 처리되지 못해 이날 본회의에 오르지 못했다. 한 정무위 관계자는 "회의에 참석한 보훈부 고위 공무원들이 사안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했다"며 "여야가 합의처리할 수 있던 사안인데도 결국 의결을 하지 못한 것"이라고 전했다.
복수의 정무위 관계자들에 따르면 여당 소속 강민국 정무위 간사 등은 정부 측 관계자들에게 법안 내용과 관련해 질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가구원의 범위에 대한 대통령 위임 규정에 대한 질의에 이 차관 등은 "사무관을 통해 답변하겠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그러자 간사인 강 의원은 "입법을 하겠다면서 세부 내용을 몰라 사무관에게 묻는 게 말이 되느냐"며 해당 법안의 통과를 우선 보류했다. 부처가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법안을 통과시킬 수는 없다는 취지다.
이에 따라 이 법안은 다음 정무위 소위부터 재검토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다만 당장 이 법안을 논의하기 위해 잡힌 소위가 없는데다 조만간 국정감사 등이 예정된 만큼 법안 통과가 오랫동안 미뤄질 가능성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에 대해 보훈부 측은 입법 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절차라고 해명했다. 보훈부 관계자는 "동거 가구원의 정의에 '30세 미만'이라는 기준에 대한 질의가 있어서 대답했는데, 명쾌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 같다"며 "결국 미뤄졌으니 정부 측 준비 미흡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소위가 열린다고 법안이 다 통과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국회 일각에서는 국가보훈부가 입법부와의 조율 과정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전일 정무위 결산 심사에서는 "예산을 갖고 유관 단체들을 줄 세우기 하지 말라"는 취지의 지적도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보훈부 측은 이에 대해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다"는 취지로 답변, 정무위 소속 의원들은 '시정 요구' 대신 '주의'로 감경 조치했다.
그러나 이후 국가보훈부가 산하 공법단체인 광복회의 내년 지원 예산을 올해 32억보다 6억원 줄어든 26억원을 책정하면서 '보복성' 논란이 일었다. 정부 주관 광복절 경축식에 불참한 것을 이유로 예산이 삭감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그러자 정무위 의원들을 중심으로 전일 '주의' 조치를 다시 '시정 요구'로 상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같은 논란이 이어지면서 이날 통과 예정이던 국가보훈부의 올해 예산 결산안(2023 회계연도 예비비 지출 승인 건)은 의결되지 못했다. 한 정무위 관계자는 "법령 세부사항에 대해 정부 유관부처에 묻고 확인하는 건 입법 전 당연한 절차인데 제대로 공부도 해오지 않은 건 황당한 일"이라며 "결과적으로 보훈부의 미숙한 대처로 법안과 예산이 모두 통과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앞서 지난해 6.25 참전 용사인 80대 남성이 생활비가 없어 8만원어치 반찬 거리를 훔쳤다가 검거됐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정부는 대응책을 고심해 왔다. 이 남성은 국가유공자였지만, 국가로 받는 수당 등 지원금이 60만원에 불과한데다 가족과 연락이 끊겨 생활비가 부족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정부는 이같은 사각지대를 보완하기 위해 국가 유공자 본인의 소득과 재산 수준만 고려해 수당을 지급하리고 하는 내용의 입법을 추진해 왔다.
정소람/김동현 기자 ra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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