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희생이 이끄는 위대한 승리

입력 2024-08-28 17:24   수정 2024-08-29 00:30

매년 7월 프랑스 전역을 달구는 세계 사이클대회 ‘투르 드 프랑스’. 바람·중력과의 싸움으로 불리는 지옥 같은 난도의 스포츠다. 3주간 21개 스테이지, 총 3500㎞를 달리는 데 단 하루의 휴일도 없다. 험준한 피레네산맥까지 넘어가며 매일 평균 170㎞의 거리를 평균 시속 40㎞ 안팎에 주파한다.

한 팀을 이루는 팀원은 8명. 한 명의 에이스 선수와 그를 호위하는 7명이 기본 구성이다. 백미는 도메스티크로 불리는 호위 선수들의 전략 플레이다. 프랑스어로 ‘하인’을 일컫는 도메스티크의 존재 이유는 오로지 에이스 한 명의 승리다.

팀 선두에서 바람의 저항을 막아 에이스가 힘을 비축하도록 돕는다. 다른 팀을 도발하며 대형을 흐트러뜨리고 심리적 압박을 가한다. 결승선 500m 앞까지 에이스를 끌어주며 마지막 완벽한 전력질주 타이밍을 만들어주곤 뒤로 물러난다. 조건 없는 희생이 이끄는 팀 전체의 승리다.
TSMC 키워낸 대만의 집념
세계 1위 반도체 파운드리(수탁생산) 업체 TSMC를 키워낸 대만 정부의 헌신은 도메스티크와 똑 닮았다. TSMC는 대만의 국력을 총결집한 국민기업이다. 30년 파운드리 한 우물만 판 이 기업의 성공비결 중 누구도 부정 못하는 건 앞뒤 가리지 않는 정부의 무조건적 지원이다. TSMC는 세제 지원 등을 토대로 연간 50조원에 달하는 투자금을 파운드리 관련 사업에 투입한다. 2021년 대가뭄 땐 대만 정부가 벼 재배에 필요한 농업용수까지 끌어다 TSMC 공장에 공급했을 정도다. 다른 경제활동을 희생하면서까지 지켜낸 게 지금의 TSMC인 것이다. “TSMC와 경쟁하는 건 대만 전체와 싸우는 것”이라는 말은 그래서 과장이 아니다.

이렇다 보니 TSMC의 해외 생산기지 구축은 대만의 국가 전략과 맞물려 있다. TSMC가 지난 20일 유럽 1호 생산기지가 될 독일 드레스덴에서 연 반도체 팹 기공식은 산업·안보 측면에서 상징적인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무엇보다 미국, 일본에 이어 유럽연합(EU)과 또 한 축의 실리콘 안보 동맹을 이뤄냈다는 데 의미가 크다는 분석이다. 공장 건설에 필요한 총 100억유로(약 14조8900억원) 비용 중 절반은 EU 보조금이다.
헌신적 산업 육성책 필요
조 단위 보조금에 압도돼 자칫 간과할 수 있는 게 있다. 대만 정부가 TSMC의 독일 공장과 연계해 자국 반도체 관련 소재·부품·장비 중소기업의 해외 진출을 꾀하고 있다는 점이다. 드레스덴과 인접한 체코에 소부장 전용 거점을 구축해 시너지를 내겠다는 야심 찬 구상이다.

대만의 반도체 굴기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가진 대한민국에 직접적인 위협이다. 반도체 산업은 이미 기업 차원을 넘어 국가 간 패권 경쟁 구도로 자리 잡았다. 기업들의 개인기에 기댄 섣부른 낙관론을 버리고 냉혹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정부·정치권·업계 모두 하나의 목표를 위해 뒤돌아보지 않고 내달리는 도메스티크의 헌신적 자세로 무장할 때다.

마침 여야가 반도체특별법 제정에 한목소리를 내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통 큰 보조금 지급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대안으로 투자세액공제율 인상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 머뭇거릴 여유가 없다. K반도체의 대반격을 위한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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