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 한 마리 없을 것이라 생각한 것과는 다른 분위기였다. “요즘 면세점 파리 날린다”는 말을 워낙 많이 들은 탓일까. 자녀와 함께 방문한 가족 단위의 관광객, 연인 또는 친구와 함께 명동을 찾은 이들이 면세점을 들러 옷을 입어보고 화장품을 테스트하는 모습은 나름 활기가 있어 보였다. 심지어 좁은 길을 갈 때는 지나가는 관광객을 피하기 위해 잠시 멈춰야 하는 순간도 있었다.
‘면세점이 살아나고 있다’라는 생각도 잠시. 10층으로 올라간 순간 공기는 180도 달라졌다. 에르메스, 샤넬, 루이비통 등 글로벌 명품 브랜드관이 들어선 이곳에서 관광객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매장마다 2~3명의 점원이 고객을 맞이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으나 이들의 일거리는 없었다.
1시 30분. 디올 2명, 루이비통 3명, 샤넬 0명, 에르메스 0명…. 10층은 말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했다. 가장 인기가 많은 곳은 한국 선글라스 브랜드 ‘젠틀몬스터’였다. 10층 한가운데 자리 잡은 젠틀몬스터 매장만 중국인 관광객들로 붐볐다.
향수와 주얼리 등을 판매하는 11층도 9층과 비슷했다. 특히 정샘물과 메디힐 매장에는 10명 내외의 아시아권 관광객들이 몰려 구매 상담을 받고 있었다. 라운지와 고가 뷰티 브랜드로 구성된 12층도 인기는 없었다.
예상보다 많은 관광객들이 매장을 찾지만 면세점 실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게 롯데 측 설명이다. 택스리펀 서비스를 지원하는 1층에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외국인들은 시내면세점에서 일정 금액 이상을 사용하면 일부 금액을 돌려받을 수 있다. 고객이 몰릴 경우를 대비해 번호표를 발급하고 있는데 대기인 수는 ‘0명’이었다. 택스리펀 장소에 3팀의 중국 관광객이 있었지만 대기하지 않고 바로 환급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었다. 과거 시내면세점이 인기를 얻을 때는 10~20분은 기본으로 기다려야 했던 곳이다.
업계 관계자는 “요즘 시내면세점도 어디든 사람은 좀 있다”며 “여전히 관광객들이 오지만 대부분은 ‘아이쇼핑’이다. 요즘 명품은 거의 안 산다. 구매해도 저렴한 브랜드 위주로만 산다. 객단가가 확실히 낮아졌다”고 설명했다.
신세계면세점 명동점은 8층부터 12층까지 총 5개 층을 사용하는데 명품관 중심으로 구성된 8층을 가장 먼저 찾았다. 매장 밖으로 지나다니는 1~2명이 8층을 이용하는 관광객의 전부였다. 매장 입구를 지키는 직원들이 고객보다 더 많았다.
9층으로 올라가자 다행히(?) 사람들이 보였다. 시계·럭셔리패션·잡화 등으로 구성된 9층에서 젊은 관광객들이 몰린 곳은 피아제·쇼파드 등 럭셔리관이 아닌 MLB, LEE, 휠라 등 중저가 패션브랜드가 모인 곳이었다.
화장품과 향수가 모인 10층도 생각보다 많은 관광객들이 있었다. 심지어 젊은 중국인 관광객 2명은 6개의 쇼핑백을 들고 10층 중앙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베이징에 사는 왕 씨는 지난 8월 23일 입국해 한국 여행을 하고 출국일이 가까워지자 면세점을 찾았다고 했다.
왕 씨는 “비싼 것들은 아니고 젠틀몬스터 선글라스 몇 개와 화장품 위주로 많이 샀다”며 “중국에서 인스타그램처럼 유행하는 SNS가 있는데 한국에서 구매해야 할 제품들을 알려줘서 그거 보고 왔다”고 말했다.
왕 씨처럼 4~5개의 쇼핑백을 들고 다니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빈손이었다. 젊은 관광객들은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떠났다.
시내면세점은 공항면세점보다 상황이 안 좋다. 공항은 입국과 출국 시 방문하기 때문에 관광객들이 쉽게 접할 수 있지만 시내면세점은 구매를 위해 직접 찾아가야 한다. 이로 인해 매출도 급감했다. 지난 7월 시내면세점의 매출은 7663억원으로 전년 동기(7882억원) 대비 2.8% 감소했다. 7~8월 여름 휴가 기간에도 모객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면세점의 부활은 당분간 요원해 보인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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