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조정의 시기가 왔다” 다가온 금리인하의 시간

입력 2024-09-04 09:03   수정 2024-09-04 09:04

[비즈니스 포커스 1-1] “때가 됐다” 다가온 금리인하의 시간



“정책 조정의 시기가 왔다(The time has come for policy to adjust).”

제롬 파월이 마침내 금리인하를 시사했다. 2022년 3월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을 위해 기준금리를 인상했던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정책이 중대한 전환점을 맞이한 것이다.

Fed의 방향이 사실상 확정된 지금 한국은행의 금리 결정은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

Fed는 물가안정과 최대 고용을 목표로 하지만 한은은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을 고려해야 한다. 서울 집값이 들썩이며 2분기에만 가계부채가 13조8000억원 증가한 지금 한은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두 나라의 목표 차이는 2024년 하반기 한·미 간 금리정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9월, 다시 금리의 시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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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서부에 자리한 와이오밍의 고요한 산간 마을 잭슨홀은 매년 8월이면 세계경제의 중심지로 바뀐다. 이곳은 전 세계 중앙은행가와 경제학자들이 모여 글로벌 경제의 미래를 논하는 자리다. 2010년 벤 버냉키 당시 Fed 의장이 양적 완화를 암시하며 세계 시장을 뒤흔든 발언도 바로 잭슨홀에서 나왔다.

2024년의 잭슨홀 회의 역시 시장 관계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미국 대선을 불과 70여 일 앞두고 모두가 파월 Fed 의장의 발언에 주목한 날이었다.

“정책을 조정할 시기가 왔습니다. 방향은 명확하며 금리인하의 시기와 속도는 들어오는 데이터, 변화하는 전망, 그리고 위험의 균형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우리는 물가안정을 향한 추가 진전을 이루면서 강력한 노동시장을 지원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시장 참여자 44.05%,
연내 1.0%p 인하할 것”
8월 24일 파월 의장의 기조연설은 ‘글로벌 피벗(통화정책 전환)’의 서막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지난 2022년 3월 시작된 Fed의 금리인상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정점에 달한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공격적으로 진행됐다. 당시 Fed는 0.25%였던 기준금리를 2023년 7월 5.50%까지 끌어올렸다. 1년 반 만에 기준금리가 5%포인트나 치솟았고 세계는 고금리 시대를 마주해야 했다.

그러나 급작스러운 고금리는 시장의 고통을 수반하는 일이었다. 시장 관계자들은 기준금리를 좌우하는 미국의 물가와 고용지표가 발표될 때마다 금리인하의 신호를 엿봤다.

특히 2023년 하반기와 2024년 상반기는 시장의 기대와 좌절이 거듭되는 시기였다. 시장은 오는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에 저울이 기울면 금리 동결을,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후보에 저울이 기울면 금리인하 기대감을 키워 왔다. 그리고 다가온 2024 잭슨홀 회의에서 파월의 발언은 시장의 기대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했다. “정책을 조정할 시기가 왔다”라니.

프린시펄애셋매니지먼트의 최고 글로벌 전략가인 세마 샤는 “파월은 금리인하 사이클의 시작을 알렸다”고 언급했다. 안예하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는 “파월이 9월 정책 금리 인하를 기정사실화했다”며 “경기 연착륙을 위한 금리 조정 필요성을 주장했다”고 말했다.

180도 달라진 분위기는 수치에서도 확인됐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가 선물시장 가격을 바탕으로 시장 참가자들의 정책 금리 전망을 집계한 페드워치 도구에 따르면 8월 28일(미 동부시간 기준) 시장에서는 오는 9월 18일 예정된 FOMC에서 65.5%의 확률로 현재 5.25~5.50%의 정책 금리가 5.00~5.25%로 인하될 것으로 예상했다. 1개월 전에는 88.4%의 확률이었다.

1개월 만에 확률이 낮아진 건 다른 가능성에 무게를 둔 시장 참가자의 선택 때문이었다. 이들은 빅스텝(0.50%포인트)에 기대를 걸었다. 현재 5.25~5.50%의 정책 금리가 4.75~5.00%로 인하될 것이란 시장 예상자들은 11.3%에서 34.5%로 1개월 새 확대됐다. 현재의 금리가 유지(동결)될 것이란 의견은 전무했다.

즉 시장 참여자의 100%가 9월 18일 금리인하를 예상했으며 이들 중 65.5%는 베이비스텝(0.25%포인트)을, 빅스텝을 예견한 이들도 34.5%에 달했다는 뜻이다.

9월 이후 올해 남은 2번의 FOMC에서도 금리인하를 기정 사실화 하는 분위기다. 12월까지 총 3번의 FOMC를 거쳐 미국 기준금리가 연말에 4.25~4.50%까지 내릴 확률은 44.05%로 가장 높았다. 이어 4.00~4.25%에 도달할 것이란 확률도 26.52%로 집계됐다.

이 경우 3회에 걸쳐 총 1.25%포인트의 인하가 이루어져야 하므로 연이은 빅스텝 또는 한 번의 빅컷(0.75%포인트 이상)을 예측한다는 뜻이다. 기준금리가 연말이면 4% 선에 도달할 것이라는 예상이 금융시장의 대세인 셈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파월 의장은 Fed의 목표를 명확하게 제시했지만 이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며 “최근 며칠 동안 일부 동료들이 전통적인 0.25%포인트 금리인하를 예상하면서 사용한 ‘점진적(gradual)’ 또는 ‘체계적(methodical)’ 같은 특정 코드화된 단어들을 파월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를 통해 파월은 앞으로 몇 주 동안 노동시장이 더 큰 약세를 보일 경우 더 큰 폭의 금리인하 가능성을 열어두었다”고 해석했다.

이 기사는 Fed의 ‘비공식 대변인’으로 통하는 닉 티미라오스 월스트리트저널 기자가 자신의 X에 인용함으로써 빅스텝 이상의 가능성에 대한 시장 관계자들의 확신을 더했다.

이날, 뉴욕증시 3대 지수는 모두 급등하며 최근 ‘경기침체(R)의 공포’로 인한 하락폭을 대부분 만회하는 등 시장은 일제히 축포를 쏘아 올렸다.(다만 이와는 전혀 반대로 파월이 ‘점진적’, ‘체계적’이란 단어를 전혀 언급하지 않은 것을 두고 9월 금리 동결을 예측하는 시장 관계자들도 극소수 등장했다.)

이제 시장의 관심은 미국 노동부가 9월의 첫째주 금요일에 발표하는 고용지표(8월 고용보고서)에 쏠려 있다.

파월 의장이 “물가안정을 추구하면서 강한 고용시장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다 하겠다(We will do everything)”고 언급한 만큼 8월 고용보고서가 금리 인하폭을 결정지을 것이란 분석이다.

임재균 KB증권 애널리스트는 “9월 FOMC에서의 인하는 기정사실화된 가운데 9월 금리인하의 폭은 8월 고용지표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며 “7월에 이어 8월 고용지표까지 부진한 모습을 보인다면 Fed는 9월 50bp 인하에 나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고용시장의 추가 냉각이 확인되면 빅컷도 불사할 것이란 의미다.
“3개월 내 인하 2인→4인,
부동산 상승 심리 자극해선 안 돼”
미국의 피벗이 기정사실화되면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방향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미국의 잭슨홀 회의에 앞서 지난 8월 22일 열린 한은의 하반기 두 번째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한은은 기준금리를 3.50%로 묶고 통화 긴축 기조를 유지했다. 2023년 2월 이후 13차례 연속 동결로 한은 설립 이래 횟수, 기간 모두 역대 최장 동결 기록이다.

그러나 달라진 부분은 있었다. 금융통화위원 6인 중 4인이 향후 3개월간 금리인하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지난 7월에는 이러한 의견이 6인 중 2인으로 소수였다면 한 달 새 금리인하 가능성에 의견을 둔 금통위원이 다수가 된 것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회의가 끝나고 연 기자간담회에서 “저를 제외한 금통위원 중 4인이 향후 3개월 이내에 기준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을 열어놨다”며 “4명의 위원은 기본적으로 물가가 목표 수준으로 수렴할 것으로 보이고 부동산 관련 정부 정책들도 시행될 것인 만큼 금리인하 가능성을 열어둔 채 거시경제 및 금융안정 상황을 지켜보면서 금리를 결정하자는 의견이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총재를 포함한) 나머지 2명 위원은 부동산 관련 대책의 효과를 확인하는 데까지 시차가 걸릴 것이며 향후 3개월 내인 11월까지는 금융안정에 보다 유의하는 게 안정적이라는 생각에서 3개월 내 인하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봤다”고 말했다.

3개월 내 금리인하 가능성을 내다본 위원들이 2인에서 4인으로 늘면서 ‘10월 인하설’은 힘을 받았다. 10월 인하에 무게가 실리면서 시장금리 또한 하락 압력을 받았다. 그러나 이 총재는 “미래 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 자체가 꼭 인하한다는 게 아니라 ‘조건부’”라며 “저희의 ‘3개월’은 10월과 11월을 모두 포함하고 있으며 11월에 결정할 수도 있고 어느 방향으로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10월 인하냐 11월 인하냐를 놓고 시장의 예측이 한창인 가운데 이제 한은 정책 방향의 키는 금융안정, 즉 가계부채가 쥐고 있다.

Fed가 물가안정과 최대 고용을 금리정책의 우선순위라면 한은은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이 목표다. Fed와 한은 모두 물가가 목표에 수렴한다는 확신을 가졌기에 이제 방향은 정책 목표의 차이가 가를 예정이다. Fed는 고용, 한은은 금융안정이다.


한은은 8월 금리 동결을 유지한 이유에 대해 “물가상승률 둔화 추세가 이어지고 내수 회복세가 더디지만 정부의 부동산 대책 및 글로벌 위험회피심리 변화가 수도권 주택가격 및 가계부채, 외환시장 상황 등 금융안정에 미치는 영향을 좀 더 점검해 볼 필요가 있는 만큼 현재의 긴축 기조를 유지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았다”고 밝혔다.

실제 한국의 금융 환경은 시한폭탄을 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첫째는 코로나19 당시 버블경제의 부동산 값을 넘어선 수도권의 부동산 가격이다. 한국부동산원의 ‘7월 전국 주택가격동향 조사’에 따르면 서울 주택 매매가격지수는 전월 대비 0.76% 상승했다. 2019년 12월(0.86%) 이래 최대 상승폭이다.

가계부채는 또 사상최고치를 찍었다. 언제는 사상 최고가 아니었냐고 반문한다면 지금의 상황은 심각하다. 금융감독원이 지난 4월부터 증가세로 전환한 가계부채가 최근 들어 적절한 관리 수준 범위를 벗어났다고 평가했을 정도다. 치솟는 수도권 집값과 위험 수준의 가계부채를 관리하기 위해 정부는 부랴부랴 각종 규제 카드를 총동원 중이다.

이러한 8월의 상황에서 한은은 금리인하는 시기상조란 평가를 내렸다.

이창용 총재는 “한은이 이자율을 낮춘다든지 유동성을 과잉 공급함으로써 부동산 가격 상승 심리를 자극하는 실수를 범해서는 안 된다”며 “정부의 거시건전성 정책 효과를 나타내는 데 (한은도) 공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정 지역의 부동산 가격이 통화정책의 목표가 될 수 없지만 그런데도 고민하는 것은 한은 책무 중 금융안정 목표가 너무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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