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팀에서 일 못해" 갈등 피하려고 '육아휴직' 신청했는데… [김대영의 노무스쿨]

입력 2024-09-02 06:58   수정 2024-09-02 15:58


국방과학연구소 산하의 한 연구원 소속 팀장 A씨는 부하직원 B씨가 육아휴직을 신청하자 이를 반려했다. B씨는 배우자가 자녀를 양육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지만 "인수인계가 미흡하다"는 것이 A씨의 주장이었다.

B씨가 향한 곳은 감사실과 노동청. B씨는 A씨가 정신적 고통을 주는 직장 내 괴롭힘을 저질렀다고 신고했다. A씨는 연구원에서 근신 처분을 받자 부당징계를 주장했다. 그러나 노동위원회도, 법원도 A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갈등관계 상사 피하려 육휴 신청…인수인계에 발목
대략적인 사실관계는 이와 같지만 조금 더 들여다 보면 다른 배경이 있다. A씨와 B씨는 평소 갈등관계에 있었다. 그 와중에 A씨가 B씨 부서 팀장으로 인사이동을 하게 된 것.

B씨는 A씨가 팀장으로 오자 소내 공모 방식을 통해 다른 부서로 이동을 희망했다. A씨와 같은 팀에서 근무하기가 어려웠던 탓이다. 그러나 A씨의 반대 등으로 부서 이동이 어려울 것으로 보이자 약 2주 뒤를 기점으로 육아휴직에 들어가겠다고 신청했다. 육아휴직 직전 약 1주간은 연차휴가도 사용하겠다고 했다.

A씨는 이에 "육아휴직 개시 예정일 30일 전까지 부서장 확인을 받아야 하나 배우자의 부상·질병 등으로 인해 자녀 양육이 곤란한 경우 등 예외 사항에 해당하는 경우 근거 자료를 제출해 달라"고 했다. B씨는 진단일이 1년 전으로 표기된 배우자의 진단서를 긴급 육아휴직 근거로 제출했다.

A씨는 이를 보고 "진단일 등을 고려할 때 육아휴직 신청일로부터 30일 후 육아휴직이 가능할 것 같다"는 내용의 메일을 보냈다. B씨는 "규정과 진단서 내용을 임의로 해석해 육아휴직 개시 시점을 지정하겠다고 한 만큼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회신했다.

A씨는 당시 연구원장에게 "인수인계만 잘 됐으면 육아휴직을 시행할 수 있는데 인수인계가 된 것이 없다"고 보고했다. 연구원장은 연차휴가 기간에라도 나와 인수인계를 마치면 육아휴직을 시행할 수 있다고 전달하라고 지시했다.

그 사이 B씨는 배우자의 진단일이 당시 연도로 기재된 진단서를 첨부해 육아휴직을 다시 신청했다. A씨는 이 진단서가 기존과 같은 것으로 판단해 신청을 반려했다.
부서 옮겼는데 '육휴' 통보…직장 괴롭힘 징계 처분
이 과정에서 국방과학연구소 감사관은 B씨를 원하는 부서로 이동시켜 분리 조치할 것을 요청했고 연구원은 이를 이행했다. A씨는 B씨가 옮겨간 부서 팀장에게 당초 육아휴직 신청일보다 2주 뒤인 시점을 휴직 개시일로 적은 공문을 발송했다. B씨는 당초 희망했던 일자를 지나 아직 근무하고 있는데도 임의로 휴직일을 지정해 안내하는 것은 직장 내 괴롭힘 추가 가해라고 반발했다.

A씨는 국방과학연구소 감사실 조사와 징계위원회를 거쳐 근신 처분을 받게 됐다. A씨가 부당징계 구제 신청을 낸 노동위원회 판단도 같았다.

법원도 마찬가지였다. 서울행정법원 제13부(재판장 박정대)는 A씨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징계 구제 재심판정 취소 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A씨가 B씨에게 육아휴직 공문을 보낸 행위는 정신적 고통을 가한 행위이고 이는 징계사유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다만, B씨가 희망한 일자에 육아휴직을 승인하지 않은 행위에 대해선 괴롭힘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실제로 인수인계가 완료되지 않았고 필요성도 있었다는 이유에서다.
법원 "부서 옮긴 후 육휴 통지는 괴롭힘" 판단
반면, B씨가 부서를 옮긴 이후 육아휴직을 시행한다는 공문을 보낸 행위는 괴롭힘으로 인정됐다.

재판부는 "B씨가 당초 육아휴직을 신청한 것은 갈등관계에 있는 A씨와 같은 팀에서 근무하기 어려웠기 때문인데 인사이동을 통해 문제가 해결돼 육아휴직을 시행할 동기가 사라졌고 A씨도 이와 같은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며 "그런데도 육아휴직을 시행하겠다는 취지의 공문을 발송했고 이로 인해 B씨가 정신적 고통을 호소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B씨에게 확인했으면 족했을 것인데도 해당 팀장을 수신자로 하여 '육아휴직 예정'이란 취지의 공문을 보낸 것은 적절한 의사 확인 방법이었다고 하기 어렵고 조직 내에서 B씨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한 의도로 보이기도 한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근신 처분이 과중하다고 할 수 없고 (중노위의) 재심 판정은 위법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이 사안은 아직 한창 진행 중이다. A씨는 법원 판결에 불복해 최근 항소장을 제출했다. 2심은 서울고법에서 진행된다. 변론기일은 잡히지 않은 상태다.

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kd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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