썼다 하면 베스트셀러인 정유정 작가(58)는 독자들로부터 ‘정반대의 자아 두 명이 글을 쓰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하나는 연쇄살인마나 사이코패스의 악행을 그려 심장을 조이는 ‘무서운 언니’고, 다른 하나는 인간에 대한 연민과 애정을 담아 쓰는 ‘다정한 그녀’다. 정 작가를 지금의 스타 작가, 스릴러의 여왕으로 자리 잡게 한 건 <7년의 밤>과 <28> <종의 기원> 등을 쓴 ‘무서운 언니’지만 <내 심장을 쏴라>와 <진이, 지니> 등을 쓴 ‘다정한 언니’를 좋아하는 팬도 많다.
지난 28일 장편소설 <영원한 천국>을 발표한 정 작가를 출간 바로 다음날 서울 서교동에서 만났다. 이번 책은 3년 전 발간한 <완전한 행복>에 이은 ‘욕망 3부작’의 두 번째 작품이다. 정 작가는 “운명에 맞서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인간의 성취적 욕망을 그렸다”며 “긍정적 욕망을 다뤘다는 점에서 밝고 명랑한 실제 성격과 비슷한 ‘다정한 언니’로 쓴 셈”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책은 예약 판매 1주일 만에 준비한 4만5000부가 다 나가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소설에는 데이터로 저장돼 불멸의 삶을 살고, 원하는 건 뭐든지 할 수 있는 가상세계 ‘롤라’가 나온다. 하지만 소설 속 인물들은 죽음과 이별, 아픔 등이 기다리는 현실의 삶을 살기를 택한다. 정 작가는 “인생에서 시련과 고통을 맞닥뜨렸을 때 이겨내려고 하는 인간의 원초적 욕망, 야성을 잃지 말자는 메시지를 주고 싶다”고 말했다.
정 작가는 이번 스릴러에서 처음으로 로맨스를 시도했다. 공상과학(SF)과 함께 버무려진 소설 속엔 30대 초반 커플 두 쌍의 진한 로맨스가 펼쳐진다. 집필을 위해 취재차 이집트 바하리야 사막을 찾았을 때, 짙은 안개를 뚫고 사막여우의 까만 두 눈을 마주치자마자 번뜩 ‘사랑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정 작가는 “이집트에 다녀온 뒤 소설 속 ‘해상’과 ‘제이’의 남매 설정을 연인으로 바꿨다”고 밝혔다.
사랑의 힘으로 고통스러운 인생을 살아갈 용기를 얻는 소설 속 인물들처럼 정 작가는 인생의 파도에 맞서는 힘을 남편으로부터 얻었다고 했다. 간호사로 일하던 20대에 소방관 남편과 만나 결혼한 지 30년이 됐다. 정 작가는 “직장을 그만두고 등단을 준비할 때부터 남편의 뒷바라지가 큰 힘이 됐다”며 “글에 따라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하는데, 곁에 있는 남편 덕분에 중심을 잡아왔다”고 말했다.
베스트셀러 작가의 일상은 단순하다. 글 쓰는 상상력에 방해가 될까 봐 영화와 드라마는 보지 않는다고 한다. 이따금 캐릭터 연구를 위해 건달 출신 등 특이한 유튜버의 영상은 찾아본다고. 매일 오후 5시에 퇴근하듯 글쓰기를 마치고 웨이트 트레이닝을 위해 체육관을 찾는다. 이른바 ‘3대(스쿼트·벤치프레스·데드리프트) 150㎏’을 드는 운동 마니아기도 하다. 그 밖에 고양이 세 마리와 낚싯대 장난감을 들고 놀면서 하루를 마무리한다.
정 작가는 작품에 들어갈 때마다 꼭 새로운 시도를 하나씩 한다. 그는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기 위해 세운 원칙”이라며 “욕망 3부작의 마지막을 장식할 다음 소설에선 공포 스릴러에 도전해 보고 싶다”고 밝혔다. “다음엔 ‘무서운 언니’로 돌아오려고요. 이번 소설 마지막에 다음 작품에 대한 힌트가 들어 있으니 잘 찾아보세요(웃음).”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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