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통계적으로 보면 반일 선동은 점점 유통기간이 다해가고 있다. 전체 인구 5127만 명 가운데 일제강점기(1910~1945)를 직접 경험한 국민은 5.8%(297만 명)에 그친다. 이 가운데서도 일제강점기 당시 만 6세 이하 영유아였던 국민(168만 명)은 절반을 넘는다. 과거만큼 반일 프레임으로 국민의 마음을 움직이기가 쉽지 않은 요인이다. 이런 까닭에 야권이 그보다 더 센 ‘숭일 카드’를 들고나온 건가 싶었다.
한국인으로서 갖는 반일 감정은 있는 그대로 의미가 있다. 일본이 저지른 전쟁 범죄는 반인류적 만행이고 마땅히 분노할 일이다. 지난 정부에서 일본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수출 규제를 단행하자 ‘노 재팬(NO JAPAN)’ 운동이 일어났다. 죽창을 들고 반일 감정을 부추긴 전 정부의 행태는 비판받아야 했지만, 노 재팬 운동 자체는 순수한 애국심으로 이해할 여지가 있었다. 최근 ‘라인 사태’에서 일본 정부가 한발 물러선 것도 한국 내 반일 감정이 고조되는 것을 염려했기 때문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일본에 대한 미움과 분노, 반감만을 역사의 교훈으로 남겨 놓는 것이 진정으로 미래 세대를 위한 것인지 이제는 냉철한 고민이 필요하다. 역사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다시는 같은 비극을 겪지 않기 위해서다. 일본과 단 한 번의 전쟁도 치르지 않고 나라를 내준 것이 조선 왕조다. 국제 정세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외세를 무조건 배척한 결과 백성들은 지옥 속에서 헤매야 했다.
야권의 반일 선동은 그런 면에서 악질적이다. 야당은 지하철 역사 리모델링을 위해 독도 조형물을 철거한 것을 ‘독도 지우기’라거나 정부가 오는 10월 1일 국군의 날을 임시공휴일로 검토하는 걸 두고 ‘조선총독부 설치일과 일치한다’고 주장했다. 뼈아픈 국권 상실을 반복하지 않도록 태세를 점검하고 국가 생존을 위해 국민의 지혜를 모으려는 의도로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 선한 마음을 이용해 국가 안보를 위태롭게 할 수 있는 건 더 큰 문제다. 북한과의 분단, 미국과 중국의 첨예한 갈등 상황에서 일본과의 협력은 한국의 안보를 위해 검토해야 할 주요 변수다. 반일 감정으로 일본을 선택지에서 배제한다면 국가 안보 운신의 폭은 좁아질 수밖에 없다.
원자폭탄 공격을 받고도 미국의 제1 우방국을 자처하는 일본, 약 50년간 미국 식민지였지만 미 해군에 항구를 내주는 필리핀에 미국이 과거사를 사죄했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들 국가가 미국과 손을 잡은 건 현재의 국가 안보가 국가 생존과 미래 세대의 안전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한국 내 반일 감정이 커질수록 가장 이득을 보는 외부 세력은 누구이고, 우리 안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답을 찾다 보면 등골이 서늘하다.
대한민국은 일본의 식민 통치에서 벗어난 지 한 세기도 안 돼 일본과 견줄 정도로 성장했다. 순국선열의 희생을 바탕으로 전 세계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수호할 손꼽히는 국가로 발돋움했다. 다시는 아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을 힘이 우리에게 있다고 자부한다.
문명국가로서 일본에는 책임 있는 태도를 계속 촉구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일제 피해 어르신들의 뼛속 깊은 한(恨)을 다독이는 것은 우리 세대 몫이란 것도 자각해야 한다. 그들의 희생을 내세워 과거 정부가 일본으로부터 받은 배상금은 대한민국의 산업화와 성장의 밑천이 됐고, 그 혜택을 우리 세대가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자식들에게 어른이 해결하지 못한 갈등의 굴레를 물려주지 않아야 할 책임도 있다. 포켓몬 빵을 먹으며 기묘한 죄책감을 느끼고, 유니클로에서 옷을 사며 이상한 눈치를 봐야 하는 건 우리 세대로 충분하다.
시간이 지나면 무분별한 반일 감정은 과거보다 흐릿해질 수 있다. 역사를 잊어서가 아니라 각 세대가 기억하고 경험한 역사적 사건과 사회적, 정치적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일본에 대한 국민의 분별력도 계속 높아질 것이다. 야권의 비이성적인 ‘반일 난장(亂場)’을 보면 이런 생각에 더욱 확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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