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준비를 하다가 부모님께 손 벌리기 싫어 "잠시만 일해보자"는 생각으로 카페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30대 여성 서 모 씨는 2년째 이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최저시급도 보장되고 주휴수당도 받으며 생각보다 소득이 적지 않다 보니 어느 순간 취업 준비와 알바 생활의 주객이 전도됐다. 서 씨는 "중소기업에서도 잠깐 일 했지만 하는 일과 월급에 비해 업무강도가 너무 셌다"며 "알바를 언제 그만둘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고용 불안과 양질의 일자리 부족, 경기 악화,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해 알바로 생계를 유지하는 '프리터족'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프리터족은 '프리(Free)+아르바이트(Arbeiter)'의 합성어로 일본에서 유래한 단어로 특정 직업 없이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는 사람을 말한다. 특히 중장년층에서도 프리터족의 비중과 긍정적인 인식이 늘어나면서 '생에 알바 시대'가 열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1일 아르바이트 구인·구직 전문 포털 알바천국이 한국경제의 의뢰로 지난달 8일부터 14일까지 개인회원 325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알바 구인·구직자 중 자신이 ‘프리터족’이라는 응답자는 전체 28.5%에 달했다. 특히 한창 일해야 하는 '30대'에서는 37.6%에 달해 10명 중 4명꼴로 가장 많았다. 40대도 30.2%, 50대가 26.2%로 뒤를 이었다.
특히 전체 응답자 중 프리터족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이라는 비율은 75.4%로 크게 높았다. 특히 30대 82.3%, 40대 79.2%, 50대 이상 68.9%가 '긍정적'이라고 응답해 중장년 연령대에서 '프리터족'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는 점도 밝혀졌다.
실제로 2024년 상반기 알바 지원량은 5년 전인 2019년 상반기보다 35.4% 늘었다. 연령별로는 40대에서 166.7%, 50대 이상에서 443.2% 폭증했다는 게 알바천국 측의 설명이다.
자신이 '프리터족'이라고 응답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프리터족이 된 이유로는 30, 40, 50대 모두 ‘경력단절 등으로 정규직 취업이 어려워서’라는 응답이 각각 34.9%, 41.7%, 33.3%로 1위를 차지했다. 그밖에 ‘취업난으로 선택지가 없어서’, ‘취업 대신 일단 시작한 아르바이트를 지속’이라는 응답 순으로 뒤이었다.
자신이 프리터족이 아니라고 응답한 사람 중 상당수도 “프리터족이 될 수 있다”고 응답했다. 30대 55.8%, 40대 59.3%. 50대 이상 52.6%는 "언젠가는 프리터족이 될 의향이 있다"고 응답했다. 그 이유로는 ‘취업난과 경력단절로 인한 재취업 어려움’이라는 응답이 가장 높았다. 불경기와 취업 경쟁력에 대한 불안감도 확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는 게 알바천국의 설명이다.
다만 예전처럼 알바를 여러 개 하는 N잡 형식보다는 한가지 알바만 하는 프리터족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자신이 프리터족이라고 응답한 사람 중 58.8%는 1가지, 32.7%는 두가지 알바를 하고 있었다. 3가지 이상 한다는 응답은 8.6%에 그쳤다. 30대에서는 57.3%, 40대에서는 50.9%의 비율로 1가지 잡(Job) 프리터족의 비중이 가장 높았다. 알바천국은 "최저임금 등 급여가 인상된 데다 취업 여건 자체는 좋지 않아진 탓"이라며 "워라밸을 중시하는 문화의 영향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분석했다.
프리터족이 알바로 벌어들이는 월수입은 100~200만원 미만이 가장 많았다. 30대 32.5%, 40대 34.4%, 50대 이상 42.7%가 100~200만원 받는다고 응답했다. 50~100만원이 각각 28.2%와 27.6%. 32.0%로 뒤를 이었다.
20대를 제외하면 전 세대에서 '매장관리, 캐셔, 주방보조 등 서비스업종'에 종사한다는 응답이 가장 높았고, '외식 음료업'이 두 번째로 많이 종사하는 업종에 해당했다.
프리터족의 가장 큰 단점은 ‘불확실한 미래’ 39.9%, 적은 소득이 34.9%, 사회적 편견이 17.0%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30대의 19.2%, 40대의 22.7%는 "프리터족 생활을 그만둘 계획이 없다"고 응답했다. 프리터족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는 뜻이다. 반면 절반 이상(각각 57.3%, 45%)는 향후 1년 안에 그만둘 예정이라고 응답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비정규직 중 시간제 근로자 수는 지난해 8월 기준 387만3000명으로 이는 전년 동월 대비 18만6000명 증가한 수치다. 또 국내 시간제 근로자(주 36시간 미만 근로) 비율은 지난 2003년(6.5%)부터 꾸준히 상승해 지난해(17.6%)로 3배 가까이 상승했다.
고용안정성과 임금 수준이 높은 '질 좋은' 정규직 일자리가 부족해지면서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삶을 선택하는 근로자가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과거에는 한국의 최저임금이 일본보다 훨씬 낮아 프리터족은 일본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이 있었지만, 한국의 최저임금이 급등하면서 일본의 '프리터 문화'가 한국에서도 급속도로 확산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처럼 40대 이상 중장년층 알바 구직자가 늘어나면서 알바천국은 아예 '중장년 채용관'을 별도로 만들었다. 알바천국 관계자는 "알바가 20대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은 사라지고 있다"며 "30·40 배우를 모델로 고용하고 '모든 생애 모든 알바' 캠페인을 펼쳐 단기 일자리 시장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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