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이번엔 대주단이 복병…SK이노·E&S 합병 '쉽지 않네'

입력 2024-09-03 14:54   수정 2024-09-05 11:52

이 기사는 09월 03일 14:54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 절차가 암초에 직면했다. SK E&S가 발행한 3조원 규모 전환상환우선주(RCPS)를 인수한 KKR이 투자를 위해 시중은행 등으로부터 빌린 인수금융이 트리거가 됐다. SK E&S의 자산과 신용도를 바탕으로 KKR에 인수금융을 제공한 금융권이 SK그룹의 지배구조 변동을 이유로 기한이익상실(EOD)를 검토하기 시작하면서다.

SK그룹이 KKR의 동의 없이 합병 절차를 시작하면서 상환 압박이 커진 만큼 RCPS의 해결이 전제되지 않으면 합병 절차도 삐걱거릴 가능성이 크다. 현재로선 KKR에 약속했던 도시가스 사업을 현물로 넘기는 방안이 유일한 선택지다. 다만 주주들에 약속했던 합병 시너지가 대폭 줄어드는 점은 SK 측의 고민으로 남았다.
"RCPS 상환밖에 답 없어"...KKR 대주단 난색
3일 금융권에 따르면 KKR이 SK E&S에 총 3조1350억원 규모의 전환상환우선주(RCPS)를 투자할 때 인수금융을 댔던 국민은행, DB손보, KDB생명, 현대해상, 교보생명 등 대주단은 SK E&S와 KKR이 제시한 RCPS 승계안에 동의할 지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SK E&S는 SK이노베이션과의 합병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KKR의 동의를 받아 기존 RPCS를 소멸하고, 새로운 조건의 RCPS를 발행하기로 했다. 합병 법인 아래 중간지주사를 만들고 도시가스 자회사를 지주사 아래로 넣은 뒤, 중간지주사와 KKR 사이에 RCPS 계약을 다시 맺는 방식이다.

RCPS 승계안은 SK그룹과 KKR이 머리를 맞대고 내놓은 아이디어다. SK E&S와 SK이노베이션의 합병이라는 회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특수한 상황이 발생하면서 계약에 따라 KKR 동의 없이는 합병을 진행할 수 없다. KKR은 당장 상환 여력이 없는 SK E&S의 상황을 고려해 신설법인이 RCPS를 승계하는 새로운 계약을 맺기로 했다. KKR은 상환 일정을 2026년부터 시작되도록 미뤄주는 대신 기존 7.5~9.5%였던 RCPS 보장 수익률을 9.9%로 올리고, 1500억원의 중간 배당을 받기로 했다.

문제는 KKR 대주단이 양측이 합의한 RCPS 계약 변경에 난색을 보이면서다. KKR에 인수금융을 제공한 대주단 입장에선 RCPS 계약 주체가 19조원 자산을 보유한 SK E&S에서 도시가스 자회사만 분할한 페이퍼컴퍼니로 바뀌게 된다. 기존 계약 자체가 소멸되고, 새로운 계약을 다시 맺는 만큼 인수금융을 그대로 유지해줄 의무도 없다. SK그룹이 직접 나서 대주단을 설득하고 있지만 계약의 근본이 바뀌는 만큼 대출심사에서부터 담보 산정 등 모든 절차를 새로 밟아야한다는 게 금융권의 입장이다.

IB업계 관계자는 "대주단이 한 두곳이면 SK그룹 차원에서 압박을 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신디케이션으로 차주가 10여곳에 달하는 상황"이라며 "각사의 투자심의위원회를 다시 통과하는 절차도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SK E&S와 SK이노베이션의 합병 일정을 고려하면 SK E&S와 KKR은 추석 연휴 전까지는 인수금융 대주단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합병 기일인 11월 1일 전까지 SK E&S와 KKR의 RCPS 계약을 다시 맺을 준비를 마치려면 이마저도 시간이 촉박하다. 기존 대주단이 동의하지 않을 경우도 대비해야 한다.


도시가스 넘기면 합병 가능하지만...주주 고지 여부도 관건
대주단이 RCPS 승계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SK E&S와 SK이노베이션의 합병은 강행될 수 있다. SK E&S가 KKR의 RCPS를 상환해 계약을 끝내면 되기 때문이다. 4조원에 달하는 상환 자금을 현금으로 마련할 여력이 없는 SK E&S는 KKR과 합의에 따라 도시가스 자회사 7곳으로 현물 상환하는 방법이 유일하다. 이미 SK이노베이션과 SK E&S간 합병비율 등이 정해져 절차를 밟는 상황에서 추가 외부 차입으로 현금을 끌어오는 방안도 불가능하다.

RCPS를 도시가스 사업으로 현물 상환하면 합병 비율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SK E&S는 합병 추진 과정에서 순자산가치를 평가할 때부터 도시가스 자회사 7곳을 제외하고 가치를 산출했다. 외부평가 업무를 맡은 한영회계법인이 RCPS의 현물 상환 가능성을 높게 보고 이런 방식으로 가치 평가를 진행했다.

문제는 SK E&S의 캐시카우인 도시가스 사업을 KKR에 내주면 SK E&S와 SK이노베이션의 합병 취지 자체가 퇴색된다는 점이다. 도시가스 사업은 상반기 기준 SK E&S 매출의 47%를 차지하는 핵심 사업이다. SK E&S는 지난해 도시가스 사업으로 5조1892억원의 매출을 거뒀다. 매 년 영업이익도 1400억원 내외를 안정적으로 기록해왔다. 도시가스 사업은 사실상 과점 사업으로 SK E&S는 시장 점유율이 22.7%에 달하는 1위 사업자다.

IB업계 관계자는 "SK E&S와 SK이노베이션의 합병을 추진하는 목적은 SK온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이라며 "유동성 공급 재원인 SK E&S의 도시가스 사업을 내주면 합병을 하는 이유 자체가 사라지는 셈"이라고 말했다.

SK그룹이 시장에 당장 도시가스 사업 매각이 없을 것이란 메시지를 준 점도 변수로 남았다. SK 측은 "KKR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기존 발행 취지를 이어가겠다"고 합병 이후 계획을 밝혔지만 합병과 관련한 기본적인 변수를 미리 가늠하지 못했다는 비판에 설 수 있다. 특히 두산그룹의 사례처럼 금융감독원 등 금융당국이 합병 등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기존 주주들에 위험을 사전에 면밀히 고지했는 지 여부를 꼼꼼히 따지기 시작한만큼 향후 양사 합병 승인 여부에도 변수가 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차준호 / 박종관 기자 chacha@hankyung.com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