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전 총리는 한국에 미운털이 단단히 박혔지만, 일본에선 2001년 이후 취임한 9명의 총리 중 호감도 1위로 꼽힌다. 그는 ‘성역 없는 구조 개혁’을 내걸고 우정(郵政) 사업 민영화 등을 관철했다. 자민당 비주류 출신인 그는 당의 파벌 정치를 깨부수는 데도 앞장섰다.
그러나 일본 정계에선 아들 고이즈미에게 아버지의 모습이 보인다며 일찌감치 미래 총리감으로 점찍었다. 2015년 자민당 농림부 회장을 맡은 그가 일본 농협(JA)의 독점적 사업 구조를 손질하는 농업 개혁 ‘행동대장’ 임무를 완수하면서다. 기득권의 저항이 컸지만, 강경 돌파하는 모습에 일본인은 환호했다.
아들 고이즈미는 매년 일본의 패전일인 8월 15일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고 있다. 그가 당선되면 한국에선 또 ‘반성과 사과’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올 것이다. 그럼에도 아버지처럼 계속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할 가능성이 크다. 그는 과거 일본 정치인처럼 속으로는 우월적 위치에서 한국을 내려다보면서 겉으로는 배려하는 척하는 세대가 아니다.
아들 고이즈미는 철이 들 무렵부터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겪었다. 그사이 한국은 수출에서 일본을 따라잡고 5대 강국 자리를 노리고 있다. 작년 1인당 국민소득(GNI)은 처음으로 일본을 넘어섰다. 이제 주요 7개국(G7) 자리를 바라보고 있다.
아들 고이즈미에게 한국은 대등한 입장에서 경쟁하고 협력해야 할 이웃 선진국일 뿐이다. 그의 중의원 의원회관 사무실에는 자신이 태어난 해인 1981년부터 100년 뒤인 2080년까지 날짜를 기록한 ‘인생 100년 달력’이 있다. 일본의 미래에 필요한 모든 개혁을 실행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겠다는 다짐을 담았다.
과거사 해결 없인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는 식의 접근은 한계에 다다랐다. 과거사와 경제, 안보, 문화 등을 수평으로 놓고 보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분야가 무궁무진하다. 한국은 세계를 리드하는 국가로서 일본을 바라볼 때가 됐다.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