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금융위원장이던 2016년 가계부채 대책을 발표하며 이같이 말했다. 가계부채 문제는 시장과 수요자의 불안감을 최소화한 꼼꼼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우리은행이 지난 1일 내놓은 ‘가계부채 효율화 방안’은 세밀함과는 거리가 멀다. 너무 거친 대출 규제에 “금융당국 눈치를 살피느라 소비자는 뒷전이 됐다”는 혹평이 쏟아지고 있다. 수요자는 외면한 채 당장 눈길을 끌 만한 대책을 찾는 데 몰두한 탓이다.
우리은행은 은행권에서 유일하게 1주택자의 대출 통로를 전면 차단했다. 주택을 한 채라도 보유하고 있으면 수도권에서 주택담보대출과 전세자금대출을 내주지 않기로 했다. ‘실수요자 중심 대책’이라는 포장지를 씌웠지만 부동산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선 “지방 빌라에서 시작한 사람은 수도권으로 오지 말라는 것” “똘똘한 한 채에 더 집착하라는 대책”이라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국토교통부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전국 자가 보유율은 61.3%다. 국민 10명 중 6명이 집을 보유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들이 소유한 집엔 저마다 사정이 있다. “집이 있으면 전세금 정도는 알아서 해야지”라는 소리를 들을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도 상당수다. 이삿짐 차가 지금 이 순간에도 저마다 각기 다른 사연을 싣고 전국을 오가는 이유다. 수도권에 집 한 채를 마련하기 위해 지방에서부터 재테크를 시작했거나, 근무지 발령이나 자녀 교육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집이 있어도 전세를 구해야 하는 실수요자도 적지 않다.
우리은행의 경영 실패 탓에 애먼 수요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우리은행이 금융당국에 보고한 올해 가계대출 증가액은 2000억원에 그친다. 국민(3조3000억원) 신한(3조원) 하나(2조8000억원) 등 주요 은행의 10%에도 못 미친다. 그럼에도 우리은행은 올 들어 지난달 21일까지 가계대출이 8000억원이나 불어났다. 애초에 지킬 수 없는 계획을 세우다 보니 무리한 대출 규제를 내놨다는 게 은행권의 중론이다.
손태승 전 우리금융 회장 친인척 관련 부당 대출로 당국의 칼끝이 우리은행을 향해 있는 상황에서 나온 대책이어서 뒷맛이 개운치 않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당국 눈치를 볼 수밖에 없어 당초 계획보다 강화된 대책이 포함됐다”고 털어놨다. 위기일수록 업(業)의 본질을 생각해야 할 시점이다. 은행의 업은 당국이 아니라 고객 만족에 있다. 우리은행이 임 회장의 말처럼 비눗물 묻은 접시를 세밀하게 다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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