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가을의 한국국제아트페어(KIAF)와 프리즈 서울은 그야말로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닷새 남짓의 행사 기간 둘러봐야 할 부스만 300여 개. 15만 명의 구름 인파를 헤치고 원하는 작품을 꼼꼼히 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올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우물쭈물하다가는 걸작들의 향연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다. 시간을 쪼개서라도 반드시 봐야 할 부스를 정리했다.
눈길을 끄는 건 국내 화랑의 변화한 모양새다. 2~3년 전까지만 해도 이우환 박서보 등 유명 작가 위주로 부스를 꾸린 반면 이번 행사에선 개성 넘치는 각양각색의 ‘간판 작가’를 내세웠다. 지난 몇 년간 신진 및 중견 작가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등 다변화를 꾀한 국내 미술계의 움직임이 반영된 결과다.
김윤신의 솔로 부스를 준비한 국제갤러리가 그 중심에 있다. 1980년대부터 라틴아메리카에서 활동한 김윤신은 올해 베네치아비엔날레 본전시에 참여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떠올랐다. 갤러리현대 부스는 이강소 이건용 정상화 김창열 이우환 등 거장 위주로 구성된다. 가나아트 역시 박석원 심문섭 등의 이름을 올렸다.
KIAF에선 한 곳의 갤러리와 오랫동안 합을 맞춰온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김택상 이건용 남춘모 이강소의 작품을 내세운 리안갤러리와 권오상 노상호 이정배를 소개한 아라리오갤러리가 단적인 예다. 학고재도 지난해 광주비엔날레에서 박서보미술상을 받은 엄정순을 비롯해 박광수 김길후 강요배 등을 선보인다.
가장 눈에 띄는 건 막강한 체급을 자랑하는 해외 명문 화랑이다. 가고시안은 데릭 애덤스를 비롯해 마우리치오 카텔란, 백남준 등 광범위한 작품을 들고 온다. 페이스갤러리는 엘름그린&드라그셋, 카일리 매닝 등의 작품과 이우환의 1980년대 회화를 선보인다. 하우저&워스의 니콜라스 파티와 루이스 부르주아, 화이트큐브의 가브리엘 오로즈코와 게오르그 바젤리츠 등도 놓쳐선 안 된다.
물밑 작업은 이미 시작됐다. 서울 용산구 한강로 아모레퍼시픽 본사 건물에선 나란히 개막하는 데릭 애덤스와 엘름그린&드라그셋의 전시가 대표적이다. 경기 용인 호암미술관은 니콜라스 파티와 국보급 유물을 협업(컬래버레이션)한 전시를 마련했다. 서울 삼성동 화이트큐브갤러리에선 가브리엘 오로즈코의 신작 회화를 만나볼 수 있다.
한국 작가 작품을 들고 온 해외 갤러리들도 주목할 만하다. 도쿄 갤러리 +BTAP에선 박서보 최명영 이진우 등의 주요작을 통해 1960년대 아방가르드 운동을 조명한다. 리만머핀은 김윤신 이불 서도호 성능경 등 한국 작가 네 명의 작품을 들고나온다.
갤러리현대는 전준호 작가의 솔로 부스를 마련했다. 작가가 10년 만에 여는 개인전이기도 한 이번 전시에선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통한 신작을 공개한다. 국제갤러리는 단색화 거장인 박서보 하종현과 더불어 이광호 양혜규 강서경 등 동시대 작가를 소개한다. 아라리오갤러리는 사진작가 박영숙을 조명한다.
고미술품부터 근현대에 이르는 걸작을 소개하는 ‘프리즈 마스터스’ 섹션은 아시아 갤러리에 집중했다. 우손갤러리는 여성 작가 이명미의 개인전을, 학고재는 변월룡 정창섭 김환기 이준 백남준 박영하 류경채 등 한국 작가 7명을 소개한다. 가나아트는 장욱진 최종태 오수환 등의 작품을 목록에 올렸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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