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베르트는 독일 가곡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주인공이다. 모차르트보다 더 짧은 31세 인생에서 무려 603곡의 리트를 남겼다. ‘가곡왕’이 그의 별칭일 정도이니. 세 편의 연가곡집이 ①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 ②겨울 나그네 ③백조의 노래다. 이 중에서 죽기 1년 전인 1827년 30세 때 작품 ‘겨울 나그네(Winterreise)’가 가장 유명하다. 사실 독일어 ‘디 라이제(Die Reise)’는 ‘나그네’가 아니라 ‘여행’인데 일본인들이 멋들어지게 의역한 것이다. 따지고 보면 ‘여행’도 아니고 ‘정처 없는 방랑길·유랑길’에 가깝다. 24곡으로 이뤄진 이 노래책에서 대중에게 제일 많이 알려진 건 당연히 제5곡 ‘보리수(Der Lindenbaum)’다.
“성문 앞 우물 곁에 서 있는 보리수/ 나는 그 그늘 아래서 단꿈을 꾸었네/ 수많은 사랑의 말들을 가지에 새기고/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그곳을 찾았었지/ 오늘도 밤이 깊도록 헤매고 다녔다네/ 캄캄한 어둠 속에서 눈을 감았지/ 그러자 가지가 바스락거렸네, 마치 나를 부르듯이/ 내게로 오게나, 친구여/ 여기서 이제 안식을 찾게나/ 차가운 바람이 자꾸만 내 뺨을 때리고 있네.”
안식을 찾으라는 의미는 동사(凍死), 곧 죽음이다. 밖은 춥고 얼얼한 겨울바람이 분다. 정해진 거처가 없는 이 노정은 이대로라면 생의 마지막이다. 길을 나선 이 청년은 누구며 왜 이 고행길을 가야만 하는 것일까. 가사 중 ‘내게로 오게나, 친구여(Komm her zu mir, Geselle)’ 대목. ‘친구’로 번역된 ‘게젤레(Geselle)’에서 답을 짐작할 수 있다. 독어로 친구는 프로인트(Freund)인데 여기선 왜 게젤레일까.
독일은 예나 지금이나 장인, 마이스터의 나라다. 쇠, 나무, 돌, 유리 등을 기막히게 다루는 고수가 전국에 산재해 있었다. 한 청년이 기술을 배우러 고향을 등지고 떠난다. 마이스터 밑에서 처음엔 도제가 돼 열심히 배우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직인(職人)의 위치에 오르는데 이게 게젤레다.
그러나 여기서 더 발전이 없으면 다른 곳으로 떠나야 한다. 연정을 품은 스승의 딸, 혹은 이웃집 처녀를 뒤로하고 말이다. 보리수의 주인공은 바로 이 애틋한 스토리의 당사자인 것이다. 무능을 심판받고 실연까지 당한 존재들. 그러니 우울한 정조를 띨 수밖에 없다.
왜 하필 보리수일까. 보리수는 독일인에게 우리의 소나무 격이다. 신전의 제사는 보리수 아래에서 이뤄졌다. 옛 독일사람들은 마을 한가운데 큰 린덴바움, 즉 보리수에서 만나 대소사를 결정했다.
바리톤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Dietrich Fischer-Dieskau·1925~2012)의 1972년 녹음은 최고일 것이다. 시인이나 철학자가 노래를 기막히게 잘한다면 피셔디스카우 같을 터. ‘가장 지적이고 분석적인 가수’ ‘독일 가곡에 숙명적인 존재’ ‘위대한 권위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바리톤’. 그를 향한 수식어의 찬사는 당최 끝이 없다.
강성곤 음악 칼럼니스트·전 KBS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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