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분조위 유명무실?"…올해 회부율 겨우 '0.026%' [신민경의 여의도발]

입력 2024-09-06 07:00  

[신민경의 여의도발] 여의도발(發) 소식을 여러 각도에서 다룹니다. 금융 정책·감독당국 사람들의 '복도통신'을 전하는가 하면 업계인의 '도발'과 '제언'을 담습니다.
금융투자업계에서 금융감독원 핵심 금융분쟁 갈등 해결기구인 '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등 손실위험이 큰 금융상품들의 판매가 늘면서 소비자 민원이 급증하는데도 오히려 분조위 회부 건수는 줄고 있어서다. 운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분조위를 현행 금감원 산하에서 별도의 비영리법인이나 준정부기관으로 분리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제기된다.

4일 <한경닷컴>이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강훈식(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금감원 분조위 현황' 자료에 따르면 금감원에 접수된 분쟁민원 건수는 2021년 3만495건에서 2023년 3만5595건으로 16.7% 증가했지만 분조위에 회부된 민원 건수는 2021년 29건에서 지난해 13건으로 절반 넘게 줄었다.

당초 매년 0.1% 미만으로 극히 적었던 회부율(접수 건수 대비 회부 건수)은 그마저도 하락세다. 2021년 0.095%, 2022년 0.049%, 2023년 0.036%으로 줄며 '제로'에 수렴하고 있다.

올해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상반기 민원 접수건수(2만3154건)는 지난해 연간(3만5595건)의 65%에 달하는 수준으로 급증했지만 회부 건수는 6건에 불과했다. 은행·중소서민(6212건)과 금융투자(1070건), 보험(1만5872건) 가운데 은행·중소서민 5건과 보험 1건만 회부된 것이다. 금융투자 분야 민원은 한 건도 다뤄지지 않았다. 회부율은 최근 4년래 최저인 0.026%로 떨어졌다.


금감원 분조위는 금융소비자보호법에 근거한 법적 기구다. 금감원은 분쟁조정 신청이 접수되면 사실조사를 거쳐 분조위에 안건으로 올릴 사안인지, 당사자 간 합의를 권고할 사안인지 판단한다. 한 달 내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분조위에 민원을 회부해야 한다. 하지만 전담 인력이 제한적이고 민원 건수가 많아 대부분 조정 권고를 통해 처리된다. 분조위에서 전문적인 판단을 받는 민원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불완전판매 사건과 관련해 집단분쟁조정제도가 도입돼 있지 않은 점이 낮은 회부율의 배경으로 지적된다. 금감원 분조위에 집단 피해자들을 위한 구제책이 없는 탓에, 소비자들은 금융에 특화하지 않은 공정위 산하 한국소비자원 등을 통하는 등 한계가 있었다. 동양그룹 기업어음(CP), 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라임펀드, 옵티머스펀드 사태 등 불완전판매 사건은 피해자가 많게는 수천명에 달하는데도 개별 금융민원 신청은 사실상 일대일로 접수돼 처리됐다.

금융감독원 분쟁조정부서가 겪는 문제도 다르지 않다. 유사한 불완전판매 사건과 관련한 민원이 쏟아져도 사건의 유사성을 판단하는 게 어렵다보니 처리 속도가 더뎌 조정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게 시장 전문가들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분조위를 금감원에서 떼어 내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분조위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높이려면 분조위를 별도 비영리법인으로 세우거나, 공정거래위원회 산하 한국소비자원을 모델로 삼아 준정부기관으로 확대해야 한다"며 "현재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인 금융투자협회의 '분쟁조정위원회'와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회의 '분쟁조정' 기능도 이 기구에 통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 분조위원을 지낸 한 관계자는 "분조위에 오른 민원만 조정 과정이 기록되기 때문에 안건으로 오르지 못한 수많은 민원들은 어떤 판단에 의해 어떻게 해결되는지 알 길이 없다. 말이 조정이지 사실상 금융회사들에 민원을 떠넘기는 격"이라며 "분조위도 조정관들에 의해 민원이 전문적으로 해결될 수 있도록 역할과 기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분조위 독립은 금융정책 당국인 금융위원회에서도 공감대가 형성된 사안이다. 특히 윤석열 정부가 2022년 인수위원회 때 '110대 국정과제'에 분조위의 독립성 강화를 포함하기도 했다.

강훈식 의원은 "금감원의 금융분쟁 대응 능력 부족으로 인해 일반 소비자들의 피해 구제의 길이 막히고 있는 것은 아닌지 종합적인 점검과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면서 "다가오는 국정감사에서 금융당국을 상대로 금융 소비자들의 민원을 보다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대책 마련을 촉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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