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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 가격이 지지부진합니다. 투자정보포털 인베스팅닷컴에 따르면 비트코인은 6일 밤(한국시간) 현재 5만6000달러 선에서 거래되고 있습니다. 사상 최고가인 7만2974달러(지난 3월 13일) 대비 20% 넘게 하락한 가격입니다. 이 때문에 관련 상장지수펀드(ETF) 주가도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국내 투자자가 2억9121만달러어치(이달 4일 기준)를 보유한 비트코인 선물 레버리지상품 '2X BITCOIN STRATEGY ETF'(BITX)는 지난 3월 13일부터 이달 5일까지 60.85% 떨어졌습니다. 네이버증권에 따르면 BITX를 주식 계좌에 담고 있는 국내 개인 투자자의 이 종목 평균 수익률은 이날 기준으로 약 -29%입니다.
올 상반기까지만 해도 비트코인 관련 전망은 긍정적 내용이 많았습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지난 1월에 11개의 비트코인 현물 ETF 상장을 승인했고, 4월에는 비트코인 공급이 반감기(채굴 보상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시기)를 맞았기 때문이죠. 현물 ETF로 인해 비트코인 수요가 늘지만, 반감기 때문에 공급은 줄어 '수요·공급 원리'에 따라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논리였습니다. 미국 중앙은행(Fed) 등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이 올해부터 기준금리를 내릴 것이라는 전망도 비트코인 강세 예측에 힘을 보탰습니다. 기준금리가 떨어져 시중 유동성이 많아지면 비트코인과 같은 위험 자산에 더 많은 돈이 공급돼 가격을 밀어 올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최근 상황은 이와 거리가 멉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사실 비트코인은 자산 자체의 기초체력(펀더멘탈)이라고 할만한 게 없어 가격 등락을 예측하기가 어렵습니다. 주식은 "기업 실적이 좋아지면 배당 등 주주환원 여력이 커지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이 그 주식 매수를 원하게 된다"는 식으로 펀더멘탈 분석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비트코인은 현금흐름이 나오는 자산이 아니어서 그런 분석이 불가능하죠. 금처럼 수요·공급 예측이 이 자산 가격을 전망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인데요. 이와 관련해 각국 정부가 마약, 성범죄 영상 등을 사고파는 '어둠의 거래' 단속을 강화하는 게 비트코인 가격 부진의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비트코인의 수요의 상당 부분이 어둠의 거래에서 비롯됐다"는 주장은 수년 전부터 계속 나왔습니다.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는 지난 1월 발표한 '카지노와 암호화폐 : 동아시아 및 동남아시아 지역에서의 돈세탁, 불법 송금, 온라인 사기를 이끄는 것들' 보고서에서 "주요 블록체인 분석 회사는 불법적인 거래에 활용되는 암호화폐가 전체의 1% 미만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크게 과소 평가된 것"이라며 "암호화폐는 불법 온라인 도박 산업에서 자금을 세탁하는 데 쓰이는 가장 인기 있는 수단 중 하나"라고 했습니다. 이어 "지난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딥페이크 사건은 전년 대비 1530% 증가했는데 이 중 88%는 암호화폐를 얻는 게 주요 목적이었다"고 했습니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달 게재한 칼럼 '시장에서 공포 심리가 확산됐을 때 암호화폐 가격도 함께 내려간다'에서 "암호화폐는 정부의 통제를 피해 돈을 해외로 반출하고, 랜섬웨어에 감염된 컴퓨터 주인에게 돈을 뜯는 데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했습니다.
비트코인 가격 상승에 베팅한 사람 입장에서 문제(?)는 이런 어둠의 거래에 대한 각국의 규제 노력이 조금씩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겁니다. 유럽연합마약청(EUDA)은 2022년 발표한 '암호화폐와 마약 : 유럽연합 및 주변국의 다크웹 시장 내 암호화폐 활용에 대한 분석' 보고서에서 다크웹 내 마약 거래와 암호화폐 사용 정도가 비례한다는 점을 지적하며 "암호화폐에 대한 규제 장치가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 보고서는 "암호화폐 금지 등의 조치가 국가 수준에서 다크웹 활성화 정도를 저해한다는 잠정적인 징후가 있다"며 "수요 측면에서 다크웹 시장의 활동은 지속적이며 계속 증가하고 있지만, (각국의 규제 노력으로 인해) 생태계 조성 초기에 비하면 증가 속도가 느려졌다"고 했습니다.
'국제 정보 관리 저널'은 지난해 발표한 '마약 단속과 암호화폐 시장 사이에 연관성이 있을까? 그렇다'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24건의 주요 마약 단속 발표가 글로벌 암호화폐 시장의 수익성에 미친 영향을 살펴봤다"며 "단속 소식이 시장의 위험(리스크)을 높인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했습니다. 또 유럽연합(EU)은 암호화폐 거래소가 이용자의 거래 내역(발신자와 수신자의 개인정보 포함)을 수집해 당국에 보고토록 하는 내용을 담은 가상자산규제법(MiCA)을 지난 6월 시행했습니다. 이밖에 암호화폐를 이용한 마약 거래 등을 대대적으로 적발하는 데 성공했다는 뉴스도 심심치 않게 들리고 있습니다.
텔레그램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인 파벨 두로프가 "텔레그램 내 성범죄, 사이버 폭력, 마약 밀매 등 각종 범죄 행위를 방치했다"는 이유로 지난달 24일 프랑스에서 체포된 것도 비트코인 가격 하락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텔레그램이 암호화폐 거래의 커뮤니케이션 허브로서 큰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텔레그램이 흔들리면 이 메신저로 의사소통을 하고 비트코인으로 대가를 주고받는 음성적 거래 생태계가 위태로워진다는 거죠. 그러나 텔레그램 기반의 암호화폐 '톤코인' 가격이 이번 체포로 급락했고, 이에 따라 비트코인은 반사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전망도 있습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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