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열풍으로 반도체가 복잡해지면서 기술 개발 속도도 빨라지고 있습니다. 더 중요한 건 이 반도체들을 제대로 작동시키려면 TSMC 없이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
지난 6일 막 내린 대만의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전시회 '세미콘차이나'에서 기조연설에 나선 TSMC의 고위 관계자가 청중을 대상으로 한 말이다. 반도체 기업들이 아무리 성능이 뛰어난 반도체를 개발해도 제대로 생산을 못하면 원래의 성능을 낼 수 없다는 의미로, TSCM의 패키징 기술에 대한 자신감으로 들렸다. 이 관계자는 그러면서 "우리는 고객사와 협력해 그들이 필요로하는 모든 것을 해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반도체 기업 수장이 모인 자리에서 '고객사와 경쟁하지 않는다'는 기조를 재차 강조하면서도 '슈퍼을'의 위상을 재확인하는 자리였다.
대만에서 글로벌 파운드리 1위 TSMC의 존재감은 듣던대로 놀라운 수준이었다. 기조연설 이후 청중 사이에서 글로벌 각지에서 모여든 관람객으로부터 다양한 질문이 쏟아지면서 원래 예정된 시간보다 5분 이상 지나 마무리됐다.
눈여겨볼만한 점은 TSMC의 낙수효과로 성장한 대만의 ASE, SPIL 등 후공정 기업들이 TSMC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는 점이다. 세미콘 타이완에서 처음 성사된 이벤트인 삼성전자 메모리반도체 수장인 이정배 사장과 TSMC 부사장간 노변담화에서 사회를 맡은 인물은 티엔 우 ASE 최고경영자(CES)다. 우 CEO는 이들을 상대로 AI 기술 트렌트와 관련해 활발한 토론을 이끌어내며 노련한 모습을 보여줬다. ASE가 TSMC의 일감을 받아 일하는 하청업체라기 보다는 글로벌 반도체 기업과 대등한 협력 관계로 느껴지는 한 단면이었다.
이같은 비결은 TSMC가 후공정 기업과 '진정한' 원팀 체제를 구축한 영향으로 해석된다. TSMC는 후공정 기업을 보유하고 있진 않지만, 이들과 'TSMC 턴키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해 공동의 목표를 설정해 달성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TSM의 목표= ASE, SPIL의 목표'인 셈이다. 예를 들어 엔비디아의 AI 반도체를 생산하기 위해 TSMC의 독자 패키징 기술인 Info 및 칩 온 웨이퍼 온 서브스트레이트(CoWoS)기술로 제조한 뒤 ASE의 가오슝 공장, SPIL의 중산 공장에서 최종 패키징이 마무리는 식이다.
종합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가 추구하는 설계부터 생산, 제조, 패키징까지 한꺼번에 제공하는 턴키 비즈니스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TSMC는 각 분야 최고 기업과 한 몸처럼 협력해 같은 목표를 추구하면서 최고의 결과를 만들어내겠다는 것이다. AI반도체 성능 수준이 고도화되고 기술 난도도 높아지고 있는 만큼 TSMC의 이같은 공동 협력 체제는 빛을 발할 것이란 분석이다.
후공정 기업들도 우수 인재들에게 걸맞는 최상의 대우를 하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한 현지 관계자는 "ASE가 TSMC보다 연봉 등 처우가 더 좋아 인재들이 서로 들어가려고 한다"고 말했을 정도다. ASE 등 후공정 기업엔 미국 등 반도체 선진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자국으로 돌아와 일하는 젊은 인재들이 수두룩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국내에서 삼성, SK에서 고위직을 지낸 임원이 은퇴 이후 코스로 소부장 기업으로 가는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외부와의 협력에도 적극적이다. 세미콘 타이완에선 대만과 반도체 장비 강국으로 꼽히는 일본과 깊어진 밀월관계를 고스란히 보여줬다. 양국은 '대만-일본간 반도체 기술 심포지엄' 별도 세션을 만들어 그간 성과를 공유하고 미래 비전을 공유했다. TSMC가 고객사와 협력하기 위해 '오픈 이노베이션'을 강조하는 것처럼 소부장 생태계 역시 배움과 협력에 열려있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에서 삼성전자와 어깨를 나란히할 소부장 기업이 나오려면 우수 인재 확보가 가장 중요해보인다"며 "기업 혼자 힘으로는 불가능하고, 정부 지원 뿐 아니라 삼성, SK와 협력 등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채연 기자 why2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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