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 느낌 나네"…심심한 요양원 질색이라면 [집코노미-집 100세 시대]

입력 2024-09-19 07:00   수정 2024-09-19 08:50

"지하철 역과 버스정류장이 앞에 있다 보니 어르신이 1층 창가를 참 좋아하세요. 출퇴근 시간에 젊은 사람이 다니는 걸 보면 살아있는 느낌이 든다네요. 그래서 '길멍' 공간이라고 이름도 붙여줬죠."

서울 강동구 고덕동과 경기 하남 미사신도시 중간쯤인 5호선 강일역. 2번 출구로 나오자 바로 앞에 요양원 '종근당산업 벨포레스트'가 아담하게 들어서 있다. 고덕에서 미사로 관통하는 고덕로 변에 지어져 요양원에서 버스정류장이 보인다. 벌말근린공원이 인접해 녹지로 둘러싸여 있다.


요양원으로 들어서면 왼쪽에 '문지기'처럼 원장실과 사무실이 있다. 기자가 벨포레스트를 찾은 12일은 추석을 앞둔 만큼 직원은 한창 바빠 보였다. 외박을 하는 어르신의 자녀에게 조심해야 할 음식을 알리고, 시설에 머무르는 어르신을 위한 프로그램을 짜기 위해서다.

오른쪽 '길멍공간'에선 어르신이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나누면서 창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미숙 벨포레스트 원장은 "어르신과 자녀가 원하는 것은 세 가지"라며 "병원이 가깝고 보호자가 자주 올 수 있는 도심, 생동감 있게 살 수 있고 외롭지 않은 공간"이라고 말했다. 벨포레스트의 지향점이다.
의료진 전원 간호사..."어르신 증상 미리 캐치"
지어진 지는 겨우 3년째다. 그사이에 운영 경험이 쌓여 성공모델로 자리 잡았다. 노인요양시설을 지으려는 금융사, 대기업이 자주 방문한다고 한다. 안착하기까지 20년 넘게 대학병원 중환자실과 요양원에서 일한 이 원장의 공이 컸다. 이 원장과 함께 일하다 옮겨온 황문영 사무국장도 요양원에서 오랜 기간 경력을 쌓았다.


이 원장을 포함해 벨포레스트 의료진은 간호조무사 없이 9명 전원 간호사다. 양원희 벨포레스트 간호부장은 응급실 경력이 있다. 이 원장은 "어르신의 증상을 빨리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며 "적기에 치료해야 응급상황으로 가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집에서 머무르면 일반인인 보호자는 응급상황에 대한 판단이 쉽지 않다. 오랜 시간 성인 질환과 응급실 경험을 쌓은 간호사에게 이런 판단을 맡기는 것도 요양원을 이용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대형병원은 강동경희대병원과 중앙보훈병원, 한림대강동성심병원 등이 가까워 빠른 조치가 가능하다. 한 달에 두 번 의사가 방문해 진료를 돌고 있다.
"가장 즐거운 오늘을 만든다"
'가장 즐거운 오늘을 만드는 것'이 벨포레스트의 목표다. 일주일만 누워있으면 어르신은 근손실로 이동이 불편해지고, 기력 저하로 인지 기능이 떨어진다. 그렇게 되면 하루를 평소 집에서 사는 것처럼 즐겁게 지낼 수 없게 된다. 이 원장은 "이곳에선 모든 어르신이 프로그램에 참여한다"며 "프로그램을 즐기면서 어르신의 잔존기능을 유지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본적으로 벨포레스트에 입주한 어르신은 하루 최소 5번 활동이 필수다. 식사 세 번, 재활치료와 프로그램 한 번씩이다.

요양원에서 지내다 보면 계절이 지나고 명절이 다가온 걸 잊을 수 있다. 벨포레스트는 이를 환기하기 위해 모형으로 '전 부치기' 같은 프로그램을 연다. 이 원장은 "원예 프로그램은 모든 어르신이 좋아한다"며 "손을 뻗어 만지는 등의 활동을 하면 인지기능도 좋아진다"고 말했다. 쿠킹 테라피에서 제철 음식을 만들며 어르신에게 계절을 알리기도 한다.


재활 프로그램도 이 요양원의 장점이다. 가령 손으로 공을 돌리는 기본적인 활동부터 어르신들이 둥글게 모여 공을 주고받는 공놀이도 이뤄진다. 중간중간엔 등근육 스트레칭하면서 운동을 돕는다. 다트나 풍선, 컵 쌓기 등 간단하게 어르신이 즐길 수 있는 활동도 매일 마련돼 있다. 봄과 가을엔 직원이 1명씩 붙어서 단체로 공원에 나들이를 간다.
집 같은 공간으로 구성
'집과 같은 공간'을 구성한 게 벨포레스트 설계의 특징이다. 4개 층, 84실이 모두 화장실을 갖춘 1인실이다. 층마다 '2개의 집'이 있다. 12명 혹은 16명 단위로 구분된다. 어르신이 지내는 1인실들이 거실을 둘러싼 구조가 층마다 2개씩 배치됐다는 설명이다.

거실 중간 통로엔 의자가 놓여있어 창밖으로 자동차와 젊은 직장인이 오가는 모습을 내려다볼 수 있다. 거실엔 전담 직원이 3~4명씩 머무르면서 어르신을 돌본다. 기자가 시설을 찾은 오후 5시엔 저녁 식사를 앞두고 어르신들이 거실에 모여 옹기종기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어르신을 케어할 수 있도록 방의 문은 열려있다. 하루의 프로그램을 마친 만큼 1인실마다 어르신이 누워 쉬고 있었다. 이 원장은 "코로나19 팬데믹을 지나면서 1인실에 대한 니즈가 크게 늘었다"며 "지금의 어르신은 모두 '자기만의 방'을 가져본 것도 10년 전과는 많이 달라진 점"이라고 설명했다.

벨포레스트에선 일반실과 치매전담실이 따로 운영된다. 치매전담실은 신체 인지 활동을 더 강화해 치매를 지연시키는 게 목적이다. 본인부담금은 다른 요양원과 비슷하다. 월 310만~330만원 정도다.

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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