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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튬 니켈 코발트 등 배터리 광물 가격이 계속 내려가 2021년 수준으로 돌아갔다. 탄산리튬 가격은 2022년 최고가에서 90% 가까이 하락했고, 니켈 가격도 3분의 1토막 수준이다. 광물 가격이 하늘을 찌르던 시절 착수한 광물 자원 개발 프로젝트들을 중간에 그만둘 수도 없어 공급은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도요타 자동차가 2026년 전기차(EV) 생산 계획을 3분의 1 축소하고 볼보는 2030년 전기차 완전 전환 계획을 폐기하는 등 지금 분위기로는 광물 가격이 약세를 벗어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광물 가격의 향방은 중국의 전기차 공세와 세계 각국의 대응이 관건이 될 전망이다. 전기차 가격 인하 여력이 높아진 중국 BYD 등이 공격적으로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한 번 충전하면 305㎞를 가는 BYD의 전기 경차 가격이 천 만원대에 불과해 가솔린 경차인 기아 모닝보다 더 싸다. 중국 전기차가 빠르게 각국의 국경을 넘을 경우 자동차 메이커들의 전기차 전환 속도는 빨라지고 광물 가격도 반등할 전망이다.
배터리 광물 3년전 수준으로 하락
지난 6일 중국 상하이 금속거래소에서 탄산리튬 현물은 톤(t) 당 7만2500위안(약 1369만원)으로 최고가를 기록한 2022년 11월 t당 59만7500위안에 비해 87.9% 하락했다. 중국의 리튬 채굴·생산업체들은 남미와 아프리카 등 전 세계를 돌며 생산 능력을 확대하고 새로운 매장지를 찾고 있다. 시장에선 올해 글로벌 리튬 공급량이 50% 가까이 급증할 것으로 예상한다. 자원을 국유화한 칠레는 향후 10년간 생산량을 두 배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니켈 선물도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이날 t당 1만5960달러까지 하락했다. 니켈 선물은 2022년 3월 4만8226달러까지 갔었다. 현재 전 세계 니켈의 절반 이상을 생산하고 있는 인도네시아가 최근 몇 년간 생산량을 크게 늘린 여파다. 향후 3년 동안에도 전기차 배터리용 니켈 생산량이 연간 92만8000t가량 더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코발트 역시 이날 t당 2만4300달러까지 내려갔다. 코발트값은 2018년 9만5250달러까지 올랐었고 2022년에도 8만달러를 넘었다.
자동차 배터리값 내려간다
S&P글로벌의 분석에 따르면 자동차 배터리의 가장 비싼 파트인 양극재에 쓰이는 금속 가격이 크게 하락하면서 지난해 배터리 셀 가격은 1년 전보다 약 30% 감소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에서 만든 리튬·인산철(LFP) 배터리의 경우 원가 하락으로 배터리 셀당 비용이 ㎾h 당 28.6달러 감소해 ㎾h 당 67달러 정도로 내려왔다. 저가형 전기차에 장착하는 30㎾h 정도의 작은 배터리는 제작비가 2010달러(약 270만원) 정도에 불과해졌다는 얘기다. 전해질 재료와 분리막 가격 역시 지속해서 하락하고 있다. 향후 추가적인 배터리 가격 하락도 기대된다. 리튬 가격 하락만으로 테슬라 모델3 기본형에 들어가는 60㎾h 정도 용량의 배터리 팩이 장착된 전기차 한 대 당 가격이 최대 1300달러가량 추가로 내릴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샤비르 아메드 미국 아르곤내셔널 연구소 수석 화학엔지니어는 "자동차 기업은 일반적으로 공급업체와 장기 계약을 맺기 때문에 이러한 변화가 EV 가격에 반영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배터리 광물 가격, 중국 전기차와 무역장벽의 싸움
가장 공격적으로 전기차 가격을 낮추고 있는 곳은 중국이다. 중국 전기차가 무역장벽을 뚫고 국경을 넘는다면 소비자의 접근성이 좋아지면서 전기차가 확산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 배터리 광물 가격도 반등할 수 있을 전망이다. 그러나 자국 자동차 산업 생태계가 황폐해질 위기에 몰린 미국 유럽 한국 일본 등 주요국들은 중국 전기차를 막기 위해 애쓰고 있다. 중국 자동차 기업들은 이미 2025년형 모델의 가격을 낮추고 있다. 중국 내 판매 1위를 차지한 BYD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송 플러스(Song plus, 해외 : Sealion)가 대표적이다. 중국 내 기본형 가격이 14만9800위안(약 2829만원)이며, 플래그십 트림은 17만5800위안(3320만원)부터 시작한다. 기본형은 가격을 동결했고, 플래그십은 1만4000위안(7.38%)을 인하했다. 비슷한 크기의 테슬라 모델Y는 한국 판매가격이 5299만~7199만원이다.
회사측에 따르면 기본형의 배터리 용량이 71.8㎾h로 완충시 520㎞(중국 기준)를 주행할 수 있고, 87㎾h 대형 LFP 배터리를 탑재한 플래그십 모델은 주행거리가 605㎞에 달한다. 7000만원이 넘는 테슬라 모델Y 듀얼모터AWD의 배터리 용량이 75㎾h고 주행거리는 훨씬 못미친다.
중국 내수 전기차 판매 2위인 BYD의 소형 해치백 돌핀(Dolphin)과 4위인 경차 BYD의 씨걸(Seagull) 등도 위협적이다. 돌핀은 유럽 충돌테스트에서 상위 등급을 받았고 수출도 한다. 60.45㎾h짜리 배터리를 탑재한 모델은 주행거리가 426㎞에 달한다. 44.9㎾h 배터리 모델도 한 번 충전하고 310~340㎞를 달릴 수 있다. 2025년형은 업그레이드로 연비를 개선해 중국 기준으로 주행거리가 420~520㎞라고 주장한다. 중국 내 가격(트림별 기본형)은 9만9800위안(약 1884만원)~12만9800위안(약 2451만원)에 불과하다.
영국 BBC의 자동차 리뷰 프로그램 톱 기어는 영국 도로에서 돌핀을 테스트한 뒤 부족한 디테일에 대해 혹평하면서도 "적당한 속도로만 달리는 일반 운전자라면 이 차를 멋진 외관과 뛰어난 하드웨어, 창의적이고 즐거운 실내, 인상적인 주행 공간을 갖춘 차로 볼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영국에선 관세 등 각종 비용이 붙어 이 차가 2만6195파운드(약 4607만원)~3만1695파운드(약 5575만원)에 팔리며 르노 메간EV, 폭스바겐 ID3 등과 경쟁하고 있다.
경차 씨걸은 7만2000위안(약 1340만원)~8만7000위안(약 1643만원)에 불과하다. BYD는 내년부터 이 차의 유럽 판매를 시작할 예정이다. 상위 모델에는 에어백 6개, 전자 안정 제어장치 등도 갖춰져 있다. 미국 GM의 테리 보이초프스키 전 대형 픽업트럭 수석 엔지니어는 AP통신에 "BYD는 전기 모터, 대시보드, 차체는 물론 심지어 헤드라이트까지 많은 부품을 자체 생산한다"며 "수직 통합 사업모델로 혜택을 볼 뿐만 아니라 비용과 효율성을 최우선으로 차를 설계한다"고 평가했다. 이어 "저가형 EV 설계 부문에서 중국보다 뒤처진 미국 자동차 산업에 대한 경고"라고 덧붙였다.
이렇다 보니 주요국 정부는 중국 전기차를 막아내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앞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솔직히 무역 장벽이 없다면 (중국이) 세계의 다른 자동차 회사들 대부분을 무너뜨릴(demolish) 것"이라고 우려했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오는 11월 대선에서 당선될 경우 중국산 전기차 수입을 아예 금지할 수 있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유럽연합(EU)도 지난 7월부터 중국산 전기차에 기존 10% 관세에 더해 9~36.3%의 임시 관세를 부과하고 있고, 관세 인상 절차를 진행 중이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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