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조선업 호황은 10년짜리…주가 '이 지표'에 달렸다" [인터뷰+]

입력 2024-09-18 07:32   수정 2024-09-18 07:33


“중동 전쟁으로 인한 수에즈운하 봉쇄로 갑자기 컨테이너선 발주가 쏟아졌다고 보지 않습니다. 이번 조선사 발주 호황은 컨테이너선사들이 코로나19 팬데믹 시절부터 이어진 해운 호황기에 쌓은 막대한 현금으로 환경규제에 대응하고 있는 차원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올해로 17년째 증권사 리서치센터에서 조선·해운 섹터를 분석하며 담당 산업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드러내 ‘조선의 국모’라는 별명을 얻은 엄경아 신영증권 연구원은 최근 한경닷컴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조선업 호황은 10년은 이어질 것”이라며 이 같이 말했다.

엄 연구원이 조선업 호황 장기화를 전망하는 근거는 수요와 공급 양측에 다 있다.

우선 수요 측면에선 국제해사기구(IMO)의 환경규제 여파로 컨테이너선사가 최근 발주해 인도받은 물량을 제외하면 선박 대부분을 교체해야 할 것으로 엄 연구원은 분석한다. 노후 선박을 바꾸지 않고 선박의 탄소배출량을 측정해 단속하는 탄소집약도지수(CII) 규제에 대응할 방법은 있다. 느리게 운항하는 것이다. 하지만 버스노선처럼 움직이며 각 항구에서 컨테이너를 싣고 내리는 컨테이너선의 경우 약속된 시간에 항구에 도착하는 ‘정시 운항’이 중요하다. 운항 속도를 조절해 규제에 대응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올해 쏟아진 컨테이너선 발주가 예상 밖이 아니라고 평가하는 이유다.

결국 노후 선박을 모두 바꿔야 하지만, 과거 조선업 호황기와 비교하면 선박을 지을 조선소가 많이 줄어든 상태다. 실제 최근 국내 조선사들이 수주하는 컨테이너선의 경우 인도시기가 2027년이다. 건조할 선박이 밀려 있는 것이다.

엄 연구원은 “앞선 조선업 호황기인 2007~2008년과 비교하면 전 세계의 선박 건조 능력은 35~40% 수준으로 떨어져 있는 상황”이라며 “이번 호황기에는 공급 능력을 웃도는 수요가 4년 연속 이어지고 있어서 지속성이 그때보다 훨씬 낫다”고 말했다.

업황과 달리 최근 들어 조선사들 주가는 가파르게 하락했다. 7월 말에서 8월 초 고점 대비 낙폭이 20% 내외에 달한다. 올해 들어 워낙 주가가 급하게 오른 상태에서 원·달러 환율이 급락한 게 조정의 빌미가 됐다.

큰 폭의 조정을 받았지만 작년 말과 비교하면 조선주 주가는 여전히 20% 이상 오른 상태다. 엄 연구원은 “올해 연말까지는 수익을 내기가 쉽지 않다”며 “내년을 노려라”고 조언한다. 내년에는 실적에서 이익률이 높아지는 게 확인돼 주가 상승의 모멘텀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아울러 시간이 지날수록 조선사들의 이익률은 개선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높은 선가로 수주한 일감들이 실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확대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직후 조선사들은 일감을 확보하기 위해 저가에 선박 건조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하지만 선박 신조 수요가 이어지면서 선가가 상승했고, 2022년께부터는 선가를 비싸게 쳐주는 프로젝트를 골라 수주했다. 이후로도 선가는 피크아웃(정점 통과) 우려 속에서 계속 고점을 높여나갔다.

조선주 매도 타이밍을 가늠할 지표로 엄 연구원은 수주잔고를 꼽았다. 수주잔고가 줄어들기 시작하면 주식을 팔라는 조언이다. 수주잔고가 감소한다는 것은 선박 인도량보다 수주량이 적다는 뜻이다. 엄 연구원은 “내년에 국내 조선사들의 인도량이 최대치로 올라 2026년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인도량이 최대치를 찍는다는 건 공장으로 치면 가동률이 최대라는 뜻이다.

갑자기 업황이 꺾이면서 주가가 곤두박질쳐 아직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2011년의 전철을 밟은 가능성에 대해 엄 연구원은 선을 그었다. 유례없는 해운호황으로 선사들이 막대한 돈을 쌓았기 때문이다.

과거부터 회자된 중국 조선업계의 추격도 엄 연구원은 큰 위협이 되지는 않을 것으로 봤다. 작년까지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발주가 쏟아지면서 중국 조선업체들도 일부 물량을 수주했다. 이를 두고 한국 조선업계의 LNG운반선 독점이 깨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이에 대해 엄 연구원은 “중국의 LNG운반선 건조 능력은 자국의 수요도 다 충당하지 못한다”며 “이 시장에서 한국 조선업계의 우위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경우 한경닷컴 기자 ca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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