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의과대학의 원로 A교수는 정부가 최근 의료계에 내민 2026학년도 증원 규모 ‘원점 재검토’ 제안을 사실상 거부한 대한의사협회의 행보에 대해 9일 이렇게 말했다. A교수는 “의료계가 정부와 강 대 강 대치 국면만 이어갈 게 아니라 한 발 물러서 환자를 위한 선택을 하는 것이 의료계 전체적으로도 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공의 이탈이 7개월째 접어들면서 응급실 등 의료 현장의 어려움이 커지자 정부는 지난 6일 ‘여·야·의·정 협의체’를 제안하며 처음으로 의대 증원 규모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에 대해 의협은 이날 2025년과 2026년 의대 증원을 취소하고 2027년 정원부터 논의할 것을 협의체 참여 조건으로 제시했다. 의협은 “2025년을 포함한 의대 증원 취소가 없으면 전공의들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 주장했다. 정부의 2000명 증원 발표로 의정 간 갈등이 불거진 2월에 비해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은 모양새다.
하지만 이런 의협의 행보를 두고 의료계 안에서도 시각차가 감지되고 있다. 강희경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비상대책위원장은 6일 정부 제안에 대해 “이제는 뭐라도 해야 할 때”라며 “숫자(정원)에 매몰될 게 아니라 의료계 문제를 어떻게 풀지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대 비대위는 9일 성명을 내고 정부에 “합리적인 단일안을 내달라”고 역제안했다. 정부에 다시 ‘공’을 넘기는 모양새지만 그 속엔 지금의 교착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정부와 의료계가 공멸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담겨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의사들 스스로 어떤 안도 내놓을 수 없을 정도로 사분오열된 상황이 의료계가 강경 일변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근본 원인이라는 지적도 있다. 대형 상급종합병원의 B교수는 “가장 큰 문제는 지금의 의료계가 어떤 안이라도 제시할 역량이 없다는 것”이라며 “어떤 안도 합의될 수 없는 상황에서 괜히 나섰다 의료계 내부에서 공격만 받을 수 있어 강경한 목소리만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정부에 끊임없이 의대 증원의 과학적 근거를 요구해온 의료계가 7개월이 지나도록 증원 규모를 ‘0명’으로 해야 할 근거조차 제시하지 못하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안을 제시하지 못할 거면 협의체라도 참여해 당면한 응급실 문제부터 해결하자”는 합리적 목소리를 의료계 스스로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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