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 수백억 혈세로 막고 점유율 1%…세금 녹이는 배달앱 [혈세 누수 탐지기⑩]

입력 2024-09-13 08:00   수정 2024-09-20 14:03

"그냥 쿠팡이츠나 배달의민족으로 시키세요."

팬데믹을 계기로 지자체가 너도나도 공공 배달앱을 개발했습니다. 각 지자체별로 연간 적게는 수억원, 많게는 수십억원의 혈세가 투입됐으나, 이용자 손길이 뚝 끊기면서 하나둘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일부 지자체에서는 저조한 사용률과 큰 적자 폭에도 계속 사업이 운영되면서 '밑 빠진 앱에 혈세 붓기'라는 말이 나옵니다. 수많은 지자체에서 실패 사례가 나왔지만, 또 유사한 서비스를 만들겠다는 지자체도 나오고 있습니다. 혈누탐팀은 이번에는 추석 연휴에 더 싸게 치킨을 먹을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며, 공공 배달앱을 파헤쳐 봤습니다.
수수료도 1~2%, 점유율도 1%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리테일·굿즈에 따르면 지난달 이용자 점유율은 배달의 민족(이하 배민) 58.7%, 쿠팡이츠 22.7%, 요기요 15.1% 순입니다. 중개수수료가 10%에 가까운 3사는 그간 수수료 인상 등을 두고 자영업자와 소비자들에게 뭇매를 맞았으나 여전히 견고한 시장 지배력을 보여줍니다. 중개수수료가 1~2%에 그치는 공공 배달앱들의 점유율은 1%에 불과합니다. "그게 어때서"라고 할 수 있지만, 투입된 세금을 계산해보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2022년까지만 해도 35개 광역·기초단체가 공공 배달앱을 운영할 정도로 지자체들이 적극 육성해왔지만 최근 1~2년간 대전 '휘파람', 전남 여수 '씽씽여수', 경남 거제 '배달올거제', 충남 '소문난샵', 부산 '동백통', 전북 남원시 '월매요' 등 10여개 이상의 공공 배달앱이 운영을 종료했습니다. 공공 배달앱이 '혈세 먹는 하마' 취급받으면서 하나둘 철수한 겁니다.

이는 이미 예견된 수순이었습니다. 원래 배달앱 시장 자체가 변화도 빨라 고효율 마케팅이 필요하고, 서버 유지 관리 비용도 많이 드는 데다 이해관계자도 복잡하게 얽혀 있어 '돈 많이 들고 까다로운 사업'으로 정평이 나있는 사업입니다. 가뜩이나 낮은 수수료에 자영업자 단체들은 "수수료를 더 내려라"고 요구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빅데이터 플랫폼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지난 8월 경기도의 '배달특급', 대구 '대구로', 경북 '먹깨비'의 월간 활성 사용자 수(MAU)는 전년 동월 대비 각각 21%, 19%, 7% 빠졌습니다. 2022년 이후 MAU 추이를 보면 대구로와 먹깨비는 엎치락뒤치락 20만명 선에서 비슷한 수준을 유지 중이고, 50만명을 넘어섰던 배달특급은 반토막이 나 20만명 선 중후반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혈세 수십~수백억 쓰고도 '적자'인데…"없앨 생각 없다"
경기도는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배달특급에 예산 300억원을 투입했습니다. 이 사업은 현 더불어민주당 대표인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가 추진한 사업입니다. 경기도는 배달특급 중개수수료 부문에서만 2021년 127억원, 2022년 67억원, 지난해 62억원으로 총 256억원의 적자를 냈으니 투입한 예산이 대부분 중개수수료 보전에 쓰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앱의 자생력을 완전히 상실한 상황임에도 경기도는 올해 62억원의 시 예산을 또 투입했습니다. 지난 7월께 경기도는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배달특급의 운영 방식을 전면 재검토하기로 한 바 있으나 아직 존폐는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TF 관계자는 "앱 폐지에 대한 논의는 따로 없다"고 전했습니다.

이 대표만 무리한 혈세 낭비 사업을 진행한 게 아닙니다. 대구시는 2021년에 '대구로'를 출범시킨 후 매년 20억원가량의 예산을 투입해왔습니다. 대구시 관계자는 "수수료가 너무 낮아 적자가 쌓이는 구조라 매년 30억~40억원의 손실이 난다"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아예 앱을 직접 개발해서 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신한은행이 출시한 '땡겨요'와 위메프의 '위메프오' 등 민간과 함께 협약을 맺어 지역화폐를 연계한 곳들도 많습니다. 앞선 사례들과 달리 사업 리스크는 떨어지지만, 홍보비 등 비용에는 여전히 수십억 원이 들고 있습니다. 예컨대 서울시는 배달 전용 상품권 발행, 프로모션 추진, 홍보 강화, 자치구 밀착 서비스 구축을 위해 지난해만 약 30억원의 예산을 투입했습니다.

실효성에 대한 의구심이 이어지는 가운데, 동작구는 가칭 '동작e마켓'이라는 공공배달플랫폼을 올해 안에 시범 운영할 계획을 밝혔습니다. 박일하 구청장의 아이디어로 시작된 것입니다. 동작구는 중개수수료를 없애, 전통시장이나 지역 상점의 마감 임박 상품을 판매할 수 있게 하겠다는 계획을 앞서 밝혔습니다. 동작구 한 관계자는 "현재 개발비로 예산 1억5000만원이 편성됐고, 사업 검토 중인 단계"라고 설명했습니다.

정부도 최근 공공 배달 앱에 예산 지원을 해주겠답니다. 최근 농림축산식품부는 외식업 경쟁력 강화 패키지 사업 시행 지침을 변경하고 사업 분야에 '공공 배달 앱 활성화'를 추가해, 관련 사업을 추진하는 시도에는 1억원, 시군구에는 최대 5000만원을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전국 지자체가 226곳인데 그러면 도대체 얼마입니까.
소비자·자영업자 왜 안 쓸까 봤더니
혈누탐팀은 정부나 지자체가 근본적인 원인부터 따져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소비자도 자영업자도 "왜 안 쓸까"입니다. 원인을 알아야 문제 해결점을 모색해 볼 수 있으니까요.

한국과 오만의 북중미 월드컵 3차 예선 경기를 앞둔 10일 오후. 혈누탐팀은 직접 '배달특급'을 통해 치킨을 주문을 해봤습니다. 한 치킨집에 배달특급으로 주문을 요청하자 돌아온 답은 "다른 앱으로 주문해야 빨리 치킨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배달앱 중에서는 그나마 인기가 있는 곳인데, 가게에서 다른 앱 사용을 독려한다니 어리둥절했습니다. 직원은 배달특급으로 주문이 들어오는 건수는 최근 한 달간 9건에 불과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날 배달특급을 이용해 근처의 한 디저트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주문하려고 하자, 배달 예상 소요 시간이 94~104분으로 제시됐습니다. 다행히도 생각보다 빠른 38분 만에 아이스크림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배달이 늦은 이유가 무엇일까. 최근 서울 중구 중림동에서 만난 배민 라이더 A씨에게서 답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A씨는 "원칙적으로 배민커넥트나 쿠팡이츠 플러스(플랫폼 전용 배달·배차앱) 이용 중 다른 배달대행업체로부터 중복 배차를 받으면 안 된다. 대행업체서 근무하던 라이더들이 주문량이 많은 배민이나 쿠팡이츠 전담 라이더로 많이 넘어왔다"며 "배민과 쿠팡이츠 말고는 빠른 배달이 어려운 구조"라고 설명했습니다.

문제는 배달만 아니었습니다. 배민, 쿠팡이츠, 배달특급으로 같은 치킨집에서 주문서를 작성해보니 배달특급이 가장 비싼 상황도 있었습니다. 민간 플랫폼들이 무료 배달 경쟁을 벌이고 있어 배달특급의 배달비가 가장 비싸진 탓입니다. 게다가 지자체 재원으로 운영되는 공공 배달앱들은 자본력이 필요한 쿠폰 할인 행사를 민간 앱보다 자주 열지도 못합니다. 배달도 느려, 가격도 비싼데 소비자들이 굳이 공공 배달앱을 이용할 이유가 없어 보입니다.


소비자 만족도가 떨어지다 보니, 낮은 중개수수료에도 소상공인조차 공공 배달앱을 외면하는 실정인 셈입니다. 경기연구원이 지난해 4월 발간한 '배달서비스 확산에 따른 외식업 변화 특성 연구'에 따르면, 배달특급 이용 가능 권역에서 배달서비스 취급 외식업체 중 44.6%만 배달특급에 입점해 있었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 입점 업체들이 배달특급으로 내는 매출은 전체 배달 매출의 3%에 불과합니다.

한 자영업자 커뮤니티에도 최근 배달특급 사용 현황과 관련된 글에 "한 달에 1건 들어온다", "배달특급은 진짜 망했다", "요기요 주문도 1~2개일 정도라 배달특급 주문은 없다"는 후기가 게재됐습니다. 자영업자 입장에서 마진이 커도 발생하는 매출 규모가 워낙 미미하니 굳이 공공 배달앱에 입점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가게 선택의 폭이 좁아져 소비자들의 앱 이용 만족도도 감소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겁니다.

그렇다고 홍보비를 과도하게 들여 키우자니 유지관리비만 더 들고 사용자가 늘라는 보장도 없으니 딜레마가 아닐 수 없습니다.
달은 차오르는데
공공 배달앱의 원래 취지는 ▲낮은 수수료를 통한 자영업자 부담 해소 ▲지역 화폐 육성을 통한 상생 소비 ▲배달 플랫폼 사업자 견제 등입니다.

취지 안 좋은 공공사업이 어딨겠냐마는, 첫째 '이게 세금까지 들여야 할 공공의 영역인가', 둘째로 '적자가 이렇게 큰 데 계속 혹은 새로 해야만 하는가'에 대한 의구심이 도저히 지워지지 않습니다. 만약 이용자가 많고, 수익성도 있어서 혈성비('혈세 대비 성능')가 좋았다면 혈누탐팀을 비롯해 아무도 이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공공의 역할이 시장 경쟁 활성화를 위해 공정한 게임 규칙을 만드는 심판인데, 왜 이미 포화 상태에 다다른 시장에 참여자가 되려 하는 것인지 이해가 안 간다는 시선이 나옵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지자체가 잘 할 수 있는 일과 민간 사업자가 잘 할 수 있는 일이 따로 있다"며 "공공 배달앱을 운영할 예산이 있다면 차라리 불공정행위를 검토하는 등 시장의 지배적 사업자를 규제하는 방법을 마련하는 게 낫다"고 지적했습니다.

독자 여러분은 이번 추석 때 어떤 배달 앱으로 음식 시키실 예정이신가요. 세금만 낭비할 것 같으면 하루빨리 접고, 발상의 전환을 모색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요.

김영리/신현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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