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정부에 남은 것은 이미 입시전형이 시작돼 되돌릴 수 없는 1500여 명 규모의 내년도 증원뿐이다. 필수·지방의료와 전공의 지원 확대, 의료 소송 부담 완화 등 의료계 요구사항은 모조리 들어줬다. 2026학년도 증원도 ‘원점 재검토’라고 물러섰다. 그럼에도 의사들은 대화 조건으로 내년도 증원마저 백지화를 주장하고 있다.
이쯤 되면 막 가자는 것을 넘어 면허 발급 사무를 자신들에게 넘기라는 것과 다름없다. 정부는 의사들이 이렇게까지 막무가내로 나올 것을 예상하지 못한 것 같다. 의사 집단의 저항은 생각 이상으로 교묘하고 강력했다. 민노총처럼 대규모 조직 동원이나 세 과시를 하지도 않았다. 직역의 모든 구성원들이 마치 사전 모의를 한 것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전공의가 먼저 의료현장을 떠나자 학생들이 수업 거부를 하고 교수들이 그런 제자들을 감쌌다. 의료계 지도부에 탁월한 활동가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각자 알아서 국민에 무한책임을 져야 하는 정부를 효과적으로 타격하고 압박했다. 정부 권능이 아무리 세더라도 이렇게 개인화된 움직임 하나하나를 제어하거나 처벌할 수는 없는 일이다.
전공의들의 이탈이나 대학가의 집단 유급 사태는 충분히 자해적이었다. 본인들 경력에 최소 1년의 공백이나 진로 변경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었다. 내년 초로 예정된 의사면허시험 응시율이 10% 남짓에 그친 것은 더 충격적이다. 자신이 단기적으로 손해를 보더라도 윤 정부는 용서할 수 없다는 보복심리의 발로가 아니면 설명할 길이 없다. 이 대목이 일반적 노동쟁의나 파업과 다른 지점이다. 근로자들의 사업장 이탈은 한계가 있다. 소득 감소나 일자리 불안에 따른 생계 우려를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의료계는 다르다. 의사는 여전히 모자라고 지방엔 고액 연봉을 약속하는 곳이 널려 있다. 1년쯤 늦어진다고 미래 보장된 삶의 질이 달라지지도 않는다. 변호사는 노력과 능력에 따라 소득 편차가 천양지차지만, 의사들 소득은 그렇지 않다. 지난 30년 가까이 의사 공급을 꽁꽁 묶어둔 덕분이다.
의료개혁을 하겠다는 정부가 증원 문제를 놓고 당사자들과의 협상에 내몰린 것은 뼈아픈 실착이다. 당연히 대통령에게도 지휘 책임이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의사들이 챙기는 전리품보다 훨씬 더 큰 비용을 떠안아야 한다. 가장 많이 배우고, 가장 잘사는 직역의 밥그릇 투쟁이 먹힌다는 것은 구조개혁에 저항하는 모든 기득권 세력의 발호를 조장할 게 분명하다. 앞서 우버와 타다를 물리친 택시기사들이 그랬고 로톡과 돌봄교실을 거부하는 변호사와 교사들도 눈을 부릅뜨고 있다. 연금 혜택 삭감에 반대하는 중장년층은 또 어떡할 텐가.
의사 집단의 승리는 역설적으로 그들의 패배이기도 하다. 존경받아 마땅한 직업윤리와 수련적 가치가 허망하게 무너졌다. 묵묵히 의료현장을 지킨 의사들의 분투와 헌신도 거친 탁류에 떠내려갔다. 전공의들은 장차 의료 서비스의 질 저하를 우려하면서도 정작 본인들은 환자들 곁을 떠났다. 교수와 학생은 증원에 따른 교육의 질 악화를 떠들면서도 막상 수업과 시험은 거부했다. 그러고선 돈 잘 벌고 존경도 받고, 수틀리면 몽니도 부릴 수 있는 지위를 꿈꾼다. 자신들의 기득권에 도전했다는 이유로 대통령과 정부를 향해 무릎을 꿇으라고 한다. 스스로 괴물이 되어 희생양을 제물로 바치라고 요구한다. 실로 나라 꼴이 우습게 됐다. 그래서 이런 제안을 떠올려 본다. 국민 세금으로 원하는 보수를 아예 약정해줄 테니 의사 증원에 반대하지 말아달라…. 자유주의 경제학의 거장인 밀턴 프리드먼이 1970년대 사사건건 행정당국의 면허발급을 방해한 미국의사협회(AMA)를 향해 던진 조롱이기도 하다. 그들의 비뚤어진 특권의식과 직업윤리를 바로잡으려면 마땅히 지불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