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관치 금리'의 역습, 가계빚 전쟁

입력 2024-09-10 17:41   수정 2024-09-11 00:22

2012년 7월 26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열린 금융위원회 업무현황 보고. 당시 한 국회의원이 보고자로 나선 김석동 금융위원장을 세게 몰아붙였다. 얼어붙은 부동산 시장을 정상화하기 위해 금융당국이 전가의 보도처럼 쥐고 있는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김 위원장은 담담하게 답했다. “가계부채 문제는 심각한 사안으로, 최우선 정책 순위에 두고 있습니다. 날씨가 아무리 춥더라도 집 기둥을 뽑아 불을 땔 수는 없습니다.” 일부 불합리한 부분은 보완할 수 있어도 전면적인 규제 완화는 곤란하다는 입장을 에둘러 밝힌 것이다. 표심이나 정치 논리와 상관없이 정책의 근간을 유지해야 한다는 소신이기도 했다.
관치의 업보, 가계빚 폭증
10여 년이 흐른 지금, 집값 급등과 가계 빚 폭증으로 나라가 들썩이고 있다. 어쩌면 작년 초 ‘둔촌주공 일병 구하기’ 당시 부동산 규제를 대폭 완화한 업보(業報)일지도 모른다. 이후 금융당국은 위축된 부동산 시장을 떠받치기 위해 주택담보대출 금리도 억지로 끌어내렸다. 국토교통부는 서민을 위한 것이라며 디딤돌·버팀목 등 저리의 정책 대출 상품을 쏟아냈다. 가계 빚이 빠르게 불어난 이유다. ‘화룡점정’은 지난 6월 말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2단계 규제 시행 시기를 돌연 두 달 미룬 것이다. 홈쇼핑의 ‘마감 임박’ 문구 역할을 하면서 ‘영끌 빚투’(영혼까지 끌어모아 빚내서 투자)를 부추겼다.

‘정책 호위무사’를 자처해온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매번 총대를 멨다. 하지만 가계대출 급증세는 잡히지 않았다. 이 원장의 좌충우돌에는 가속도가 붙었다. 지난달 25일 한 방송사에 나가 한 말이 걸작이다. “대출 금리 상승은 당국이 바란 게 아니었다.” 한 달 넘게 당국 눈치를 보며 20번 넘게 대출 금리를 올려온 주요 은행들은 뜨악해했다.
정책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 중요
어쩔 수 없이 은행들은 태세를 전환했다. 금리 인상 카드를 접고 주담대 최장 만기(30년) 축소와 1주택자 주담대·전세대출 중단 등 비가격 대책을 쏟아냈다. 후폭풍은 거셌다. 주담대를 받으려는 금융 소비자들은 ‘오픈런’ 경쟁에 내몰렸다. 입주를 앞둔 신규 분양 아파트 단지에선 ‘전세대출 소동’이 벌어졌다. 보다 못한 김병환 금융위원장이 지난 6일 긴급 브리핑을 통해 직접 등판했지만, “은행들이 책임감을 갖고 자율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모호한 말만 남겼다.

정부의 거친 생각과 불안한 시장.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국민들. 그야말로 가계 빚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정부가 은행을 앞세워 금리와 대출 수요를 통제할 수 있다고 여기는 건 ‘오만한 착각’에 불과하다. 오락가락, 엇박자 정책에 따른 관리 실패의 책임을 은행에 떠넘기는 건 더 볼썽사납다.

‘입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기존 중장기 주택 공급 계획과 DSR 등 관련 정책을 다시 정교하게 가다듬고 선명한 메시지를 신중하게 내야 한다. 부동산 및 가계 빚 대책은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시장을 뒤트는 섣부른 규제 완화나 즉흥적 규제 강화를 경계해야 한다. 손에 쥔 땔감이 ‘정책의 불’을 잘 지필 수 있는 장작인지, 집 기둥인지 판단하는 건 늘 당국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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