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파파존스는 최근 ‘치킨’으로 사엽영역을 확대했다. 지난해 7월 자체 치킨 브랜드 ‘마마치킨’을 선보이면서 치킨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지난 8월엔 서울에 2호점도 열었다. 본업인 피자 사업이 부진한 흐름에서 벗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새로운 사업을 찾아나선 것이다. 그 선택지는 한국에서 지속해서 성장 중인 치킨 시장이다.
국내 피자 업계 1위인 도미노피자는 최근 1인용 ‘싱글 피자’를 개발해 저렴한 가격에 선보이고 있다. 스몰 사이즈 피자의 경우 6900원에 판매 중이다. 보통 도미노 피자 한판이 3만원대에 육박했던 것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가격이다. 갈수록 거세지는 ‘가성비 흐름’에 맞춰 가격 부담을 낮춘 소용량 제품을 앞세워 소비자들을 유인하겠다는 전략이다.
국내 대형 프랜차이즈 피자 업계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대부분의 피자 업체들이 저조한 성적표를 받아들며 ‘성장’이 아닌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지속되는 고물가와 외식 트렌드 변화가 이들이 경영난에 빠진 주된 요인으로 분석된다. 식품 업계가 경쟁적으로 저렴한 냉동 피자를 선보이는 것도 갈수록 이들이 설 자리를 점차 좁아지게 만드는 배경으로 꼽힌다. 파파존스, 도미노피자 등이 신사업 확대와 적극적인 신메뉴 개발에 열을 올리는 것도 어떻게든 부진한 실적을 끌어올리기 위한 몸부림이다.
주요 피자 업체들이 위기라는 사실은 여러 수치를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우선 한국의 피자 시장 규모를 보자. 흔히들 치킨과 햄버거, 피자를 ‘패스트푸드 3대장’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갈수록 시장 규모가 커지는 치킨, 햄버거와 달리 피자 시장은 사실상 최근 들어 급격한 정체 흐름을 보인다.
지난해 수치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전년과 비슷한 흐름을 보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인기 외식 메뉴이자 배달 대표 음식이었던 피자가 과거의 명성을 잃어가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업황이 좋지 않은데 관련 업체들 실적이 좋을 리 만무하다. 작년 주요 피자 프랜차이즈 5개사(도미노피자·한국파파존스·피자헛·피자알볼로·미스터피자) 중 영업이익이 흑자를 낸 곳은 도미노피자와 한국파파존스 두 곳에 불과하다. 심지어 손실을 피한 두 업체 조차도 속살을 뜯어보면 상황이 녹록하지 않음을 엿볼 수 있다.
도미노피자의 운영사 청오디피케이의 작년 영업이익은 51억원으로 2021년(약 160억)과 비교하면 3분의 1토막이 났다. 한국파파존스의 작년 영업이익(42억원)도 2021년(63억원) 대비 약 34%나 감소했다. 피자헛(-45억원), 피자알볼로(-29억원), 미스터피자(-16억원) 등은 영업손실이 이어지고 있다.
매출이 꺾이면서 문을 닫는 피자 브랜드 가맹점들도 급증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2020년의 경우 주요 피자 브랜드들의 폐점 가맹점 수는 580여 개였다. 2022년에는 그 수가 급증해 무려 두 배(약 1000곳)가 넘는 피자 가맹점들이 영업을 종료했다. 불과 2년 사이 벌어진 일이다.
업계 관계자는 “2020년까지만 하더라도 이 정도로 피자 시장의 사정이 나쁘지 않았는데 최근 3년 사이 빠르게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 실적이 추락하고 있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2020년만 해도 주요 5개 브랜드 중 적자를 낸 곳은 미스터피자가 유일했다. 4개 브랜드는 모두 영업이익이 흑자였다.
그렇다면 대형 피자 프랜차이즈가 빠르게 쇠락의 길을 걷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배경으로는 너무 비싸진 피자 가격이 첫손에 꼽힌다. 공정위가 조사한 결과 지난해 피자 가격 인상률은 11.2%로 치킨(5.1%), 햄버거(9.8) 등을 뛰어넘었다.
여기엔 다 이유가 있다. 피자의 주재료인 밀가루 가격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2022년부터 치솟았다. 이 외에도 치즈 가격 등을 비롯해 인건비, 배달료가 지속 상승하면서 대형 피자 프랜차이즈들도 연이어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이제는 각종 토핑을 추가할 경우 4만원가량을 내야 집에서 피자 한 판을 시켜 먹을 수 있게 됐다. 치킨(약 3만원), 햄버거(약 1만원)와 비교해도 큰 차이가 난다. 소비자들 입장에선 가볍게 한 끼 때우기에는 피자가 부담스러운 음식이 됐다.
냉동 피자는 과거엔 식감이 부드럽지 않고 토핑도 부족해 많은 인기를 얻지 못했다. 그러나 코로나19를 계기로 완전히 달라졌다. HMR이 주목받으면서 CJ제일제당, 오뚜기, 풀무원 등 주요 식품기업들이 냉동 피자 연구개발(R&D)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부족했던 점들을 보완해나가며 배달 피자에 견줘도 손색없을 만큼의 퀄리티를 가진 냉동 피자를 싼값에 내놨다.
소비자들도 달라진 냉동 피자 맛에 즉각 반응했다. 식품업계에 따르면 2019년 900억원 수준이던 냉동 피자 시장 규모는 지난해 1685억원으로 4년 새 90% 가까이 커졌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튀겨서 만드는 제품 특성상 치킨은 냉동제품과 배달시켜 먹는 치킨의 맛 차이가 여전히 크지만 최근 출시된 냉동 피자는 배달 피자와 식감이나 맛에서 뚜렷한 차이가 없다”며 “게다가 가격까지 저렴해 점점 많은 이들이 이를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1인 가구의 증가도 빼놓을 수 없다. 통계청 인구 총조사에 따르면 국내 1인 가구 비중은 전체 가구의 34.5%에 달한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햄버거, 치킨과 달리 피자 한 판의 양은 혼자 먹기 버겁다. 이런 측면에서 피자 배달 수요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물론 피자 업계의 침체 속에서도 요 몇 년 새 점포 수를 크게 늘리며 성장한 피자 프랜차이즈들도 있다. 이들의 공통점을 보면 기존 업체들의 틈새를 노린 전략이 돋보인다는 평가다. 피자몰과 고피자 등이 대표 격이다.
이랜드이츠가 운영하는 피자몰은 피자 한 판을 9900원에 선보이며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랜드이츠에 따르면 가성비 트렌드가 거세게 일며 피자몰의 영업이익도 3년 전부터 꾸준히 우상향하고 있다. 이랜드이츠 관계자는 “소비자들의 뜨거운 반응에 힘입어 올해 10개 이상 점포 수를 늘릴 계획”이라고 했다.
2016년 푸드트럭으로 시작한 ‘고피자’는 1인 가구를 겨냥한 전략이 주효했다. 피자 한 판 가격(1만원대)도 저렴하지만 혼자서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사이즈로 판매 중인 것이 특징이다. 향후에도 빠른 성장이 기대된다. 고피자는 올해부터 GS25와 손잡고 편의점 내부에서 직접 구운 피자 판매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8월 기준 800여 개의 GS25에서 고피자를 판매 중이며 연내 1000점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상황이 이렇자 대형 피자 프랜차이즈들도 급변한 시장 흐름에 맞춰 새로운 전략을 내세워 반등을 노리고 있다. 피자헛은 최근 1인 피자를 출시했으며 미스터피자는 1인 피자 ‘만원 런치 세트’ 메뉴를 선보였다. 피자알볼로는 피자 크기를 줄이고 가격을 평균 4000원씩 내리기도 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가성비 피자가 소비자들에게 인기를 끄는 만큼 앞으로 대형 프랜차이즈들의 할인 쿠폰 제공과 같은 프로모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과도한 출혈경쟁이 펼쳐질 경우 안 그래도 좋지 않은 각 업체의 수익성이 더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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